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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4. 시골마을 제남리음악회

꿈꾸는 세상살이 2017. 10. 1. 20:10

4. 시골마을 제남리음악회

 

익산에 가면 제남리음악회를 보고 와야 한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 말은 글자 그대로 익산에 가면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것도 반드시 익산시 여산면 제남리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이 음악회는 이미 전국적인 입소문을 탔다.

고층건물도 없고 그렇다고 인구가 많은 번화가 도심도 아닌 농촌 한 가운데의 들판에서 벌어지는 제남리음악회를 보려면 순번을 타야 한다. 그것도 그냥 내일 모레 하는 일자별 순번이 아니라, 적어도 10년 혹은 20년이 걸리는 긴 시간동안 벼르고 별러야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관람료는 무료이니 비싸서 그런 것도 아니며, 아는 사람을 통해 부탁한다거나 미리 예약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곳은 오직 초청받은 사람만이 관람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초청장은 시장이라서 두 장 주고 국회의원이라서 세 장 주는 그런 초청장이 아니다.

제남리음악회의 초청장은 단 한 장만 있으면 온 가족이 관람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된다. 그것은 육군 부사관으로 임관하는 자녀를 둔 가족이라는 조건이 붙는 금테 두른 초청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동원하지 않아도, 혹은 홍보하지 않아도 모이는 관객으로 음악회의 효과는 충분하다. 거기다가 익산 시민이 아닌 타 지역 사람들에게 익산의 문화를 선보일 수 있는 황금기회인 것이다. 그리고 참여한 관객들은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멋있는 공연을 관람한 것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익산시는 익산을 알리는 방법으로 익산의 문화를 나누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 음악회가 열리게 된 배경을 찾아보면 대략 1년 전쯤으로 되돌아간다.

당시 나는 짧은 한 편의 글로 익산에 있는 육군부사관학교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아무렴 우리나라에서 운영하는 학교로 단 하나뿐이니 국가에서 살릴 것은 당연하겠지만, 지자체인 익산에서도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익산을 홍보하자고 말했던 것이다.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돈 들여 홍보하지 않더라도, 이미 자기 발로 찾아온 손님에게도 홍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홍보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었다. 최소한 비가 오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익산을 찾은 외지인에게 저렴하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무엇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익산의 후한 인심을 보여주고, 익산사람들의 손님을 맞이하는 따뜻한 사람다움을 보여주자고 말했었다.

이런 내용이 신문으로 나갔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글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보고 연락이 온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육군부사관학교장이었다. 그는 신문사에 전화하여 어렵게 어렵게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했다. 그 역시 익산출신이 아닌 다른 지역사람으로 잠시 학교장으로 있었을 뿐인데, 그런 사람이 짧은 글을 보고 감동하였다는 연락이었다. 자신 역시 임기만 채우고 떠나면 그만일 사람인데, 이처럼 자기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자신이 고맙다며 만나자고 하였었다. 그리하여 학교장을 만났지만, 얼마 후 임기가 끝나자 정말로 익산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익산에 대한 한 가닥 추억은 남아 있을 것으로 믿어 확신한다.

이렇게 하여 추진 된 것이 제남리음악회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익산을 방문하여야만 했던 사람들과, 내키든 내키지 않았든 부사관을 자녀로 둔 가족 친지들이 찾아와야 했던 학교연병장에서 음악회가 열린 것이다.

따라서 익산시가 주최하지만 언제 어떻게 열릴지를 알지 못하며, 주관하는 학교측이 임관하는 후보생 가족을 상대로 홍보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행사 여부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시민조차 돈 주고도 관람할 수 없는 음악회가 바로 제남리음악회다. 1년에 몇 번이나 열리는지 한 번에 몇 명이나 참석하는 지도 모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군사 기밀이기 때문이라는 것에 수긍이 간다.

 

익산시는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제남리음악회에 열정을 쏟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먼 곳 익산에 놀러오라고 홍보하지 않아도 좋을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에 한 번 익산을 찾을지 안 찾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앉아서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남쪽 변방 작은 마을 익산을 알리는 방법으로 이것 말고 더 좋은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선 제남리음악회는 먼 곳에서 훠이훠이 달려온 사람들에게 지루하지 않도록 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우선 익산시립합창단이그리운 금강산으로 그 막을 열고, 심금을 울리는 육군가,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인근 황등역을 주제로 한고향역이라는 가요도 빠지지 않는다. 잠시 목을 가다듬는 사이에운초 오정숙판소리보존회에서 익산아리랑을 선보인다. 이때의 익산아리랑은 내가 작사한 것으로 한씨조선으로부터 백제에 이르기까지 익산의 역사와 전통을 가장 잘 나타낸 아리랑으로 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은호남가로 지역의 특색을 소개하는 나름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노래로만 구성되는 것보다 약간의 율동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무렵에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인 이리농악이 출연한다. 이리농악은 다른 지역의 농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적이며 얌전한 것이 특색이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이런 지역마다의 특색을 잘 모르기 때문에 좀 더 빠르고 역동적인 농악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획일적인 농악만 생각한다면, 각 고장의 생업과 경작하는 작물의 종류에 따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편견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육군부사관학교의 행사에 익산시의 공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육군 홍보부대에서 나온 가수가 출연하여 신세대 음악을 들려주는가 하면, 의장대의 퍼레이드 시범은 고정출연으로 되어 있다. 어떤 때에는 시내 학생들이 펼치는 브라스밴드와 군악대의 협연도 있다. 또 초등학생과 유아원 아이들의 태권도 시범이 열리기도 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민과 군의 환상적인 축제가 되는 것이다.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익산시립무용단의 화려한 무대가 이어지고, 사전 협의에 따라 전라북도무형문화재인익산목발노래의 가무악이나익산기세배’, 그리고 익산오케스트라가 출연하여 연주하기도 한다. 주민지원센터에서 활동 중인 오카리나, 대금, 난타, 스포츠댄스와 같은 취미 문화 활동반이 출연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어떤 공연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열정과 노력을 앞세워 양념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무엇이든 조연인 양념이 들어가야 더 풍부한 김장김치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연을 하는 출연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 역시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생전 처음 보는 공연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공연을 관람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관람을 위하여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일부러 익산까지 와서 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익산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기는 19771111일 이리역 화약폭발사고 이후부터다. 요즘이야 교통과 매스컴의 발달로 전국 일일생활권이 되었지만, 아직도 덜 알려진 곳이 작은 도시 익산인 것은 사실이다. 일주일 혹은 열흘 행사에 몇 억 원을 사용하면서도 전국 구석구석의 손님을 끌어오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한 차례의 행사에 겨우 1천만 원 정도의 경비로 전국 각 지역의 손님을 초청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효과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기존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식인데, 보이지 않는 익산의 저력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제남리음악회에서 걸림돌이 된 것이 무대장치였다. 원래 임관식을 거행하는 연병장이다 보니 공간이 넓은 것은 물론이며, 바로 이어서 벌어질 행사에 대비하여 무대를 설치하고 철거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방청석은 연병장 주위의 스탠드인데 공연은 한 가운데의 열병식장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익산시는 이것을 일거에 해소하였다. 무대를 설치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20분이면 족하며, 해체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20분이면 된다. 따라서 공연이 끝나고 잠시 허리를 펴는 사이에 무대를 철거하고, 바로 이어서 본 행사인 임관식이 거행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주관자인 학교에서도 더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첫 회 제남리음악회의 반응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시도되지 않은 음악회가 벌어졌던 만큼 집행부의 관심도 끌었다. 선택받은 장소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한 특별공연이었으니 관람객의 호응은 절대적이었다. 열린음악회가 전국적으로 방영되며 전 국민이 즐겨보는 프로라고 하지만, 그 음악회는 공연하는 출연자와 집에서 시청하는 시청자 사이의 교감일 뿐이다. 지역과 관람객 사이의 교감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익산을 생각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현장에서 공연하고 객석에서 직접 관람하는 방식 외에 더 이상 좋은 것은 없는 것이다.

 

최근에 익산시민을 위한 음악회 초청제도가 마련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아직 시작 단계라서 부사관학교 출신자와 그 가족 그리고 전에 부사관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군인과 그 가족에게 허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이 나오면 익산 시민에게도 확대하는 방안이 강구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하더라도 모든 시민이 참석하는 그런 공연은 되지 못할 것이다. 행사 자체가 특수 목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제남리음악회가 익산을 홍보하는 것은 물론이며, 전 국민에게 작지만 아름다운 음악축제로 기억될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막 3년을 넘긴 제남리음악회의 역사가 짧지만, 그 효과의 입소문은 이미 전국 대명사가 되었다. 다른 축제가 1년 중 정해진 한 번의 기회밖에 없지만 제남리음악회는 미리 날짜를 정하지 않아도, 관객 동원을 위한 별도의 홍보가 없어도 성공적으로 치러지는 아름다운 축제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