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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6. 파전칠미거리

꿈꾸는 세상살이 2017. 10. 1. 20:12

6. 파전칠미거리

 

그럼 파전거리에도 가보셨어요?”

 

익산에 오면 파전거리를 둘러보아야 한다. 그곳에서는 세상에 다시없는 아주 맛있는 파전들이, 그것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무한리필 되기 때문이다. 원래 파전이라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밥상머리에 올라올 정도로 우리 입맛에 길들여져 있었다. 식사 시간이 지나 출출할 때도 먹었지만 밥하기가 어중간할 때에는 처음부터 한 끼의 식사대용으로 먹기도 하였다. 또 비가 오고 할 일이 없어 심심하면 생각나는 것이 파전일 정도로 허전함을 채워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익산의 파전거리는 그 유명한 피맛골 옆에 있어서 찾기도 쉬운 곳이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다른 지방의 파전이 특정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만, 여기 익산의 파전거리는 그만큼 잘 알려진 한 개의 유명브랜드가 아니라 파전거리 자체가 유명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익산 파전거리의 특징은 어느 특정 형태를 내세우기 보다는 내가 먹고 싶은 파전을 골라먹는 점에 있으므로 파전거리 자체를 브랜드화 한 것이라면 비교가 될 것이다.

파전거리는 여느 식당과 달리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작 파전을 파는 시간은 오전 11시부터다. 파전에 쓰일 재료들은 하나같이 그날 새로 들여온 싱싱한 재료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가게를 막론하고 부지런을 떨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그날그날 합당한 가격으로 경매를 거친 재료들은 곧바로 파전거리로 모여든다. 주재료인 쪽파를 비롯하여 대파와 양파, 그리고 파프리카와 마늘, 강황, 생강, 달래, 고사리, 홍합, 바지락, 미역 등 다른 파전에서 상상할 수 없는 재료들이 포함된다. 그런데 이런 재료들을 모든 파전에서 경쟁적으로 사가는 것은 아니다. 그들만의 방식에 따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재료는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익산의 파전거리에서 운영하는 점포는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중간 소매상을 거치지 않고 경매시장에서 직접 사오는 저렴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점포가 있으며, 다른 하나는 중도매인이 직접 운영하여 원재료 마진과 파전 판매 마진 중 어느 한 쪽의 이익을 손님에게 돌려주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곳 파전거리에 입주한 점주들 사이에서는 처음부터 원칙으로 정해져 있는 규약이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중도매인 직영이 저렴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어쨌든 다른 점포들도 계속하여 운영되는 것을 보면 가격 외에 또 다른 어떤 이유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아마도 별미라는 이름을 빌린 기능성 파전의 장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익산의 파전거리는 마치 전국의 유명한 파전을 한 군데 모아 놓은 것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칠미파전거리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조선 팔도의 파전을 다 모아 놓은 것과 같고, 일곱 가지 맛을 내는 파전거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파전은 전국의 유명 특산지를 다 돌아다녀도 맛보기 어려울 정도인데 익산에서는 한 걸음에 맛볼 수 있어 파전마니아에게 새로운 명소로 꼽힌다.

 

1). 함라파전

함라파전은 함라라는 지명에서 파생된 파전으로, 한 마디로 말하면 부드러워 먹기 쉬운 파전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른 지방의 파전이 두툼하고 푸짐한 것에 비해 반대로 얇은 것으로 차별화되는데, 한 입에 넣고 먹기가 쉽다. 조금 뜨겁다하더라도 호호 불어 먹으면 금새 식어버릴 정도로 얇은 것이 특징인 함라파전이다. 거기에 참기름을 발랐으니 먹기 전부터 향긋한 냄새와 함께 느끼는 맛도 일품이다.

원래 익산이 평야지대로 먹을거리에 대한 근심은 없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된 조선시대부터는 자기 농토가 없어 소작을 하더라도 품을 팔면 그런대로 먹고 살아갈 수는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우리 옛 말에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타고 태어난다고 하였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어서,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서 먹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그 중에서도 익산은 그래도 살만한 고장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익산에서도 함라는 옛 양반고을이라는 대명사가 붙어 다닌다. 강점기시절 호남선 철도를 놓을 적에 원래는 함라를 거쳐 가도록 계획되어 있었으나, 당시 유생들은 괴상한 물체로 인하여 고을이 황폐화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하여 부득이 노선을 함열로 바꿨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었기에 다른 데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그런지 함라에는 삼부자집을 중심으로 하는 자그마한 한옥마을이 있다. 이때의 삼부자는 세 명의 부자라는 뜻이며, 조선시대에 만석꾼 세 명이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살았을 정도로 풍요로웠던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농사는 머슴을 두고 일을 시킬 수밖에 없었으며, 일하는 시간에 비해 음식을 차려 먹는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하는 것이 아깝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질척한 파전이라는 말도 있으나, 이것은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영양가가 적은 파전을 그것도 질척한 상태로 먹고 나면, 아무리 배가 부른다 한들 힘든 농사일을 하는 데 쉬 피로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첨가한 것이 영양가가 풍부한 참기름이다. 이런 말을 곱씹어 보면 내용인 즉은 그럴듯해 보인다.

한참 일하다가 손도 제대로 씻지 못하고 먹는 음식에 체하는 것이 두렵고, 쉬는 시간이 아까워 빨리 먹어야 하기 때문에 잘 넘어가는 파전과, 그런 단점을 보완하는 부재료로 곁들인 참기름은 그야 말로 환상의 짝꿍으로 탄생된 것이다. 이것이 함라파전의 유래라면 유래라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양반들이 함라파전을 먹을 때는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먹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어쩌면, 과거보러 한양에 올라갈 때 아무도 모르게 살짝 돌아서서 요기하던 음식이 함라파전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하인이나 머슴이 먹었음직한 파전을 양반이 먹었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소한 냄새가 폴폴 나는 파전을 두고 그냥 지나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니, 아무리 양반이라도 먹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함라파전은 만들기도 쉽고 먹기도 쉬운데, 이런 뜻을 생각하면서 자기 손으로 직접 쭉쭉 찢어 먹는다면 나름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대 이런 파전을 먹고 나면 반드시 일을 해야 하는, 뭔가 부지런히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심리적 충족감을 준다. 선인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하였지만, 일이 우선인지 먹는 것이 우선인지 잘 몰라도 뭔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담긴 파전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뭔가 큰 결심을 하고 일을 시작할 때, 그런 때 생각나는 음식이 바로 함라파전이다. 거기에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은 함라막거리를 한 사발 곁들인다면 옛 선조들과 만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2). 춘포파전

춘포파전은 춘포면에서 많이 생산되는 파프리카를 기존의 파전에 접목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원래 파프리카는 아열대식물로 우리나라에서 재배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특용식물이다. 현재도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파프리카는 원래 가진 색깔이 여러 가지로, 붉은색 파프리카를 넣으면 붉은색파프리카파전이 되듯이 파란색파프리카파전과 노란색파프리카파전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오방색 음식을 먹어야 좋다는 말을 하는데, 여기에서 적색과 녹색 그리고 황색의 파프리카로 일거삼득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밀가루가 가지는 흰색까지 더하면 벌써 네 가지 색을 먹는 것이니 먹기 전부터 배가 부른 음식이라 말할 수 있다.

 

파프리카는 원래 날것으로 먹어도 즙이 많으면서 식감이 좋은데다 맛까지 좋은데, 살짝 익혀서 먹어도 파프리카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파전의 파는 잘 익지 않으면 매운 맛이 있지만, 파프리카는 익지 않은 생것도 단 맛이 돌기 때문에 조리하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파와 파프리카를 같이 넣고 파가 익도록 기다린다면 파프리카는 식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파가 어느 정도 익으면 파프리카를 넣는 것이 기술이다. 그런데 둘 다 특성을 살리는 것이 어려우므로 한 쪽은 파가 익도록 하고 한 쪽은 파프리카를 넣어 익히는 방법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좀 더 세련된 조리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한 쪽에는 파를 넣고 다시 반대쪽에 파프리카를 넣은 다음, 덮개로는 원재료인 파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열을 직접 받는 겉의 파는 잘 익으면서도 안에 있는 파프리카는 더디 익도록 만드는 것이다.

 

식재료를 가지고 조리하는 것이야 기술자들이 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먹기에는 파프리카의 바삭바삭하는 씹히는 맛이 살아있으면 더 좋게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춘포에서 생산되는 파프리카는 수출을 주로 하는데, 일부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으므로 미리 주문하면 필요한 때에 적당한 양을 구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파전에 들어가는 파프리카는 일정한 크기와 모양이 둥글고 보기 좋은 것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맛에는 영향이 없으나 겉모양이 적합하지 않은 것은 잘게 썰어서 넣기도 하니 굳이 값비싼 상품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대중적인 간식으로 파전을 만드는데, 소비자를 생각하지 않고 원재료가 비싸다고 하여 생산단가를 무작정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파프리카가 귀한 식재료이기는 하지만, 인근에서 대량으로 재배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춘포의 파프리카파전을 개발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파프리카를 생산하는 농장에서도 기초 단계인 생산품 그대로 수출하는 것 외에 여러 가지 부산품 판매를 위하여 2차 산업인 가공을 하고 있으니, 그런 취지에서는 서로 잘 어울리는 요리가 되고 있다.

 

3). 왕궁파전

왕궁파전은 글자 그대로 왕이 궁에서 먹었던 파전을 의미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지명인 왕궁면에서 그 옛날의 파전의 의미를 되살려 개발한 파전으로 통한다. 그러니 사실은 왕이 먹었던 파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단지 왕궁이 있었던 왕궁면에서 개발된 파전으로 이름만 붙인 것이다.

그런데 이 파전의 특징을 들자면 파와 밀가루 외에 대파와 양파가 들어간다. 말하자면 쪽파만 들어가는 다른 파전에 더해 왕처럼 굵은 의미의 대파가 들어가는데, 대파는 가늘게 쪼개어 넣으므로 마치 쪽파와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전을 부치는 과정이나 먹는 방법에서 별다른 차이점은 없다.

이 대파는 다른 곳에서 사오는 것이 아니라 파전을 만드는 가게에서 직영하는 농장이나 텃밭에서 재배한 것만 사용한다. 왕이 먹을 음식을 여기저기 사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품종에 원하는 조건으로 자신이 직접 정성을 들여 가꾸고 있는 것이다. 왕궁에서 왕이 살았을 예전 같았으면 모두가 친환경으로 재배하기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요즘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병해충이 많은데다가 다량 생산을 위하여 비료를 사용함에 따른 천연 먹을거리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 파가 다른 작물에 비해 화학비료나 농약을 많이 사용하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연농법과 유기농을 고집하여 만든 식재료를 사용하겠다는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는 식재료가 있다. 과실 중의 어른인 대추가 들어가는데, 가을이면 풋대추도 사용되지만 대체로 마른 대추를 잘게 썰어 넣고 있다. 대파와 대추, 이 둘은 뭔가 조금은 다른 느낌을 주는 식재료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더하여 양파를 사용하는데, 많은 양은 아니지만 양파를 갈아 즙을 낸 후 밀가루를 반죽하는 물에 넣어 준다. 원래 양파는 맵고 달지만, 불에 익힌 양파는 매운 맛이 사라지고 단맛만 남기 때문에 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달아서 먹기에 좋은 파전으로 통한다. 덕분에 아이들도 쉽게 먹을 수 있는 파전으로 통한다.

아이들이 익산의 피맛골에서 미처 만족하지 못하였다면 어린이용 왕궁파전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대추가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맛 또한 단맛이 강하므로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없다는 장점도 있다. 원재료인 파와 양파도 따뜻한 성질을 가진 식품으로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돕기 때문에 겨울에 먹어도 좋은 음식이다.

 

왕궁파전은 익산의 다른 파전에 비해 비교적 늦게 개발된 파전인데, 왕이 정말로 파전을 먹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많은 토론 끝에 만들어졌다. 설사 왕이 간식으로 파전을 먹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인들과 궁에 있던 다른 신하들은 먹지 않았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왕궁파전이 탄생된 것이다.

그런데 왕궁파전은 전통적인 깻잎파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한 쪽에 반죽을 깔고 먹기 좋도록 중간쯤 칼집을 한 번 낸 쪽파를 넣은 다음, 어느 정도 익어서 형태를 갖추면 뒤집어서 다시 밀가루 반죽을 얇게 뿌린 다음 그 위에 잘게 썬 대추를 넣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한 쪽에는 쪽파가 보이고 다른 한 쪽에는 대추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가느다란 쪽파에 칼집을 내는 이유는 왕이 파전을 먹을 때 길게 늘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 되면 곤란할까봐 미리 칼집을 내어 잘 끊어지게 만든 것이다. 파전은 길게 찢어 먹어야 제 맛이라지만, 그래도 파전을 먹을 때 쪽파만 고스란히 삐져나오면 민망하고 볼썽사나운 것은 왕이나 신하나 매 한가지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왕궁파전의 특징은 다른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이른바 파전을 찍어 먹는 간장인데, 그 간장의 수명이 아주 오래 된 것으로써 말하자면 10년 이상 된 진장만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오래 된 진장은 이른바 씨간장이라고도 하며 오래 묵으면 간장독 바닥에 소금이 엉기는데, 오래 묵으면 묵을수록 소금 외의 간장은 검어지면서 단 맛이 돌기 때문에 약간장이라는 말로도 표현한다.

원래 간장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발효시킨 것이지만, 진장은 벌써 2차 발효가 일어난 진짜 발효식품이라 할 것이다. 예로부터 그 집 음식 맛을 알려면 장맛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요리에 간장으로 음식의 간을 조절하였기 때문에 이때의 장은 간장을 의미한다.

이런 파전을 한두 장 먹었다고 몸이 금방 좋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왠지 왕궁파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벌써 건강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파전이다.

 

4). 웅포파전

웅포는 배가 드나들던 포구다. 요즘이야 강바닥에 토사가 쌓이고 금강 하구둑이 생기면서 선박의 통행이 불가능해졌지만, 예전에는 조운선이 다닐 정도로 유명했던 곳이다. 따라서 조운선의 선원들이 혹은 일꾼들이 먼 거리로 나갈 때 준비하던 음식 중의 하나가 파전이었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 웅포파전이다.

 

웅포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곰이 드나드는 포구 혹은 곰이 사는 포구다. 어째서 곰과 연관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충청도 공주가 예전에 웅진이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평야지대의 순박한 농부에 비해 거친 바다와 싸워야 하는 어부들은 좀 더 억세고 강해야 했던 것에서 유래되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이때 어부들이 들고 나가서 먹던 음식 중에 파전이 있었는데, 일정한 취사도구를 갖추어 나가는 대신 두툼하고 푸짐하게 조리된 파전을 준비하였다.

따라서 일정 시간 동안 보관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물기가 적은 즉 투박하면서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한 끼 밥으로 충분하도록 영양이 풍부한 파전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른바 해물파전이다.

 

웅포파전은 다른 지역의 해물파전과 비슷하게 홍합을 비롯하여 각종 해산물을 넣는데,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돼지고기다. 원래 돼지고기는 고온다습하면 잘 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단점을 보완한 것이 바로 물기가 적고 보관하기 쉽도록 하는 모양으로 만들게 되었다.

되게 반죽한 밀가루에 쪽파를 편 다음 그 위에 홍합과 돼지고기를 썰어놓고, 다시 밀가루와 쪽파를 덧붙이는 방식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홍합이 웅포에서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바다로 나가는 파전인지라 바다의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며, 대합이나 바지락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넣으면 푸짐한 해물파전 즉 웅포파전이 된다.

따라서 웅포파전은 센 불에 빨리 구워내는 것이 아니라 은근한 불에 천천히 조리하여야 속까지 골고루 익는다. 이것은 조리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는 하지만 멀리 나가는 사람에게는 아주 유용한 음식이 된다.

 

한편, 웅포파전에 사용되는 돼지고기는 한 번 푹 삶아서 기름기를 제거한 수육을 사용하므로 비계에서 나오는 포화지방에 대한 우려를 덜어준다. 이렇게 먹는 웅포파전은 일부러 돼지고기 수육을 먹고 다시 깻잎이나 상치 등 야채를 먹을 필요가 없이, 쪽파 외에도 강황과 생강, 마늘 등을 한꺼번에 넣어 풍부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영양만점의 파전이다.

돼지고기는 소고기에 비해 값도 저렴하면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였다. 따라서 서민음식의 대명사였던 것이 지금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구분

1일권장

개고기

닭고기

닭가슴살

오리고기

돼지고기

삼겹살

살코기

갈비

에너지

kcal

2500

523

359

416

635

482

416

662

탄수화물

g

328

1.5

1.9

1.3

2.1

2.1

2.0

1.5

단백질

g

60

38.1

38.0

37.6

31.9

35.6

37.1

34.4

지방

g

65

40.3

21.2

27.1

55.1

35.0

28.8

56.8

콜레스테롤

mg

300

72.6

150.0

155.6

159.7

?

138.1

128.0

칼슘

mg

700

18.2

20.0

20.0

30.0

8.9

24

16.0

mg

15

5.4

1.9

1.7

3.4

4.3

0.8

1.4

나트륨

mg

2000

145

132

115.5

169.4

33.8

121.7

126.4

비타민 A

μg

700

24.0

99.8

95.8

12.0

8.0

12.0

12.0

비타민 B

mg

3.7

0.36

0.4

0.6

0.6

0.37

0.32

0.6

비타민 C

mg

100

6.2

 

 

4.0

0.6

4

2.1

 

5). 황등파전

황등파전은 고구마파전이라고도 불리는데, 본래의 파전에 황등과 인근 삼기에서 나는 고구마를 섞어 만든 파전이다. 이때 고구마는 채 썰어 말리면 잘게 부러지기 때문에 생것을 사용한다. 고구마파전처럼 일반 파전과 달리 씹는 맛을 내는 종류로는 여산파전의 옥수수를 들 수 있지만, 옥수수는 반쯤 터진 것으로 이미 육즙이 배어 나온 상태이지만 여기의 고구마는 순수한 씹는 맛을 더해준다.

이름하여 고구마파전에서 푹 익힌 경우는 고구마의 씹히는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없지만, 반쯤 덜 익은 고구마에서는 마치 생고구마를 먹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들은 덜 익은 고구마가 혹시 소화장애라도 불러오지 않을까 염려할 수도 있겠으나 원래 고구마는 생으로도 먹는 것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파전 한두 장 정도 더 많게는 하루 종일 먹었다고 하여도 고구마로 인하여 소화불량에 걸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먹는 사람을 배려하여, 반쯤 익힌 고구마파전은 특별히 원하는 사람들의 주문에만 대응하고 있다.

 

고구마가 본디 저장에 어려움이 많은 식품인 점을 감안하여, 제철이 아닌 경우를 대비한 말린 고구마가 등장하였다. 생것을 썰어 말리면 쉽게 부러지지만 고구마를 찐 후 가늘게 썰어 말리면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이것을 필요한 때에 물에 불렸다가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일 년 내내 고구마파전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생고구마와 찐 고구마를 사용하는 것에는 맛의 차이가 있다. 찐 고구마는 생것에 비해 더 질기므로 오래 씹어야 하며, 원래 고구마의 맛은 좀 덜한 것이 사실이다.

 

고구마 100g당 성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1일 권장량

감자

고구마

에너지

kcal

2500

66.2

129

탄수화물

g

328

14.6

31.2

단백질

g

60

2.8

1.43

지방

g

65

0

0.14

콜레스테롤

mg

300

0

0

섬유질

g

25

0.2

0.9

칼슘

mg

700

4.0

24.0

mg

15

0.6

0.6

나트륨

mg

2000

3.1

15.7

비타민 A

μg

700

0

19.0

비타민 B

mg

3.7

0.06

0.06

비타민 C

mg

100

36.0

25.0

비타민 E

mg

10

0

0.64

 

 

6). 여산파전

여산파전은 옥수수파전 혹은 고사리파전이라고도 불리는데, 주재료인 파 외에 옥수수 알갱이와 고사리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밀가루 반죽에 반쯤 터진 옥수수 그리고 고사리를 넣으면 점점이 노란색과 적갈색이 나와 먹는 재미와 보는 재미도 제공한다.

이때의 옥수수는 여산에서 나는 것으로 반쯤 터뜨려서 액즙이 나올 수 있는 정도로 만들어 사용한다. 다른 파전과 달리 씹히는 자극이 맛을 더해준다. 여름이면 옥수수자루를 포대에 담아 전통시장으로 팔러 다니던 아낙들이 심심찮게 부쳐 먹었던 파전을 보완하여 하나의 특산품으로 만들어낸 경우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고사리 역시 천호산에서 나는 것을 사용한다. 천호산은 해발 502m밖에 되지 않지만 익산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익산은 그만큼 평야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산은 밭이 논보다 많아 옥수수를 비롯하여 조와 수수, 기장 등이 많이 생산되며, 야생 고사리도 채취된다. 그런데 요즘에는 고사리가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자연산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어 작목반을 중심으로 재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참에 고사리를 응용하여 또 다른 지역 특산품으로 개발한 경우에 속한다.

 

주 식품군에서 100g당 성분을 비교해보면 옥수수는 쌀과 밀가루에 비해 영양학적으로는 뒤지지 않는 식품이면서, 기타 지방이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섬유질도 부족하지 않은 편이다.

서양에서 옥수수가 주식에 포함되는 것도 나름 이유가 있는 듯하다.

구분

열량

kcal

단백질

%

지방

%

비질소물

%

섬유질

%

회분

%

티아민

mg

리보플라빈mg

나이아신

mg

현미

360

7.5

1.9

77.4

0.9

1.2

0.34

0.05

4.7

백미

363

6.7

0.4

80.4

0.3

0.5

0.07

0.03

1.6

보리

349

8.2

1.0

78.8

0.5

0.9

0.12

0.06

3.1

330

12.3

1.8

71.7

2.3

1.7

0.52

0.13

4.3

옥수수

348

8.9

3.9

72.2

2.0

1.2

0.37

0.12

2.2

 

 

7). 목천포파전

목천포파전은 일반적인 파전에 바다에서 나는 홍합이나 바지락 등을 넣은 것으로 일명 해물파전과 같다. 이곳의 목천포라는 지명 역시 바다와 연결된 포구라는 뜻으로 전에는 배가 들어왔음은 물론이며, 최근까지도 장어구이집으로 성황을 이루었던 곳이다.

다른 해물파전에 장어와 관련된 상품을 만들어 특화시킨 것이다. 남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별반 다르지 않은 해물파전이지만, 밀가루에 장어 뼛가루를 섞어 반죽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물에도 뼈를 우려 낸 국물을 첨가한다. 따라서 목천포파전을 먹으면 해물파전과 장어를 동시에 먹는 셈이 된다.

최근 목천포파전에 들어가는 장어는 바다와 민물 사이를 오가는 양이 적어 부득이 양식 장어를 사용한다. 다행히도 인근에서 다량으로 양식하는 곳이 있어 수급에는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장어 양식장에서는 손님들에게 장어관련 요리를 선보이고 있지만, 장어에 대한 수요가 예전보다 적어서 양식 농가 입장에서는 파전에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판로에 도움이 되니 일거양득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장어뼈를 저렴하게 확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차별화된 파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다른 지역의 파전골목 혹은 파전골과 비교하여 뒤지지 않는 특색은 식당의 이름에 사용된 곳에서 생산된 막걸리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함라파전집에서는 함라막걸리를 내고, 춘포파전집에서는 춘포막걸리를 낸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막걸리를 판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별다른 주문이 없으면 으레 파전 이름에 붙어있는 막걸리가 따라오는 것이다.

다만, 목천포파전은 목천포막걸리가 없어서 목천포막걸리를 내놓을 수 없지만 그 대신 장어술을 낸다. 장어술은 장어의 뼈를 담금용 소주에 넣어 숙성시킨 것인데, 장어뼈는 젖어있는 상태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름에 살짝 볶아서 넣는다. 다른 집의 막걸리와 비교하여 운치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소주와 파전이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니 별도로 문제가 되지는 않고 있다.

 

한때는 장어술 즉 장어쓸개주가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많이 찾지 않는 관계로 장어쓸개주 대신 인삼주나 두견주처럼 장어뼈를 우려내는 장어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전국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다른 곳의 막걸리집은 막걸리를 주문하면 안주가 나오는 것이 상례인데, 이곳에서는 파전을 주문하면 막걸리가 곁들여 나온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막걸리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파전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익산의 파전거리가 유명해졌으며, 그 이름도 흔한 막걸리 골목이 아니라 파전거리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파전집의 이름답게 그 고장을 홍보하는 내용물이 가득하다. 벽 어디를 보아도 멋있는 풍경이 있고, 그 지역 출신 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벽지를 대신하기도 한다. 오래 된 주민들의 생활상이 있고, 어릴 적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연상시키는 사진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그 고장 출신 문인들의 작품 구절이 적힌 시화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이곳에 가면 예술인의 족보를 꿸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다못해 거리 사진을 찍어 놓기도 하며, 벽화로 새로 단장한 모습을 옮겨놓은 곳도 있다. 이렇게 채우다 채우다가 다 못 채우면 이전에 유명했던 마을 출신 인물의 행적을 소개하는 것도 색다른 볼거리에 속한다. 요즘 인문학 특히 역사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거론되고 있지만 여기 파전골목에서는 앞서가는 세상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익산의 파전칠미거리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골목이 아니다. 매일 일정시간이 되면 거리를 울리는 풍류 문화의 거리다. 서양 음악을 들고 거리로 나서니 거리음악이 되었듯이, 우리 소리를 들고 거리로 나서니 풍류문화가 되었다. 예전의 주막이나 가진 자들이 누렸던 은폐된 술 문화와 달리 트인 공간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거리문화로 탈바꿈한 것이다.

익산이 예로부터 걸출한 국창을 배출한 고장으로 가히 국악의 고장으로 불리는 것에서 비롯된 문화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판소리를 비롯하여 우리 전통 민요를 들을 수 있는데, 무명 신인부터 시작하여 명창으로 불리는 전문가까지 동원되는 수준 높은 공연이 펼쳐진다. 노래는 농촌의 뿌리를 간직한 도농복합도시로 농부가를 비롯하여 호남 지방을 주제로 한 호남가 등 우리 일상에 잘 알려진 곡들이 선보인다.

이들은 칠미거리 중심에서 펼쳐지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등 기상의 영향을 받을 때에는 당일 해당하는 파전집에 들어가서 공연을 한다. 이것은 미리 정해진 순번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오늘 공연을 어디서 할 것인지 아니면 취소할 것인지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 없다. 칠미거리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주선하여 실시하는 공연인 만큼 다른 요소에 의해 방해를 받는 일도 없다. 그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서 실시하면 되는 것이다. 시민들도 일부러 이런 공연을 보러오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제 익산의 칠미거리가 전국적인 명성은 물론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국인 관광의 명소로 소문날 일만 남았다. 마르세이유광장이나 몽마르뜨언덕에 비해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으로, 여행 패키지에 넣어도 훌륭한 곳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