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근황은 어떤가 하면
공병 한한철
임관 후 군 생활은 어떤가! 이것은 이야기 할 것이 많지 않다.
그러면 지금 상황은 어떤가? 그래보았자 인생이 얼마이며 어떤 인생인지 따져보아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길고 긴 세상, 허구한 세상을 재 보아도 짧고 짧은 내 생애이며 내세울 것도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인가 생각난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기행 4기 동기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나마도 이야기할 것이 있을 것이다. 넋두리라도 해보고, 오다가다 들어볼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 든다.
가르치는 직업이라면 자신이 생각할 때에도 사명감이 있고 자만심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국어과목이라면 말을 하고, 말을 듣고, 말을 해석하고, 말을 전달하고, 말을 꾸며내는 기술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국어국문학과 교수라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행위 즉 작가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리고 국어과목 교사 혹은 교수들도 한가락 늘어놓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아직 등단하지 안한 사람들이 더 많은 상황이다. 어쩌다 등단하지 못한 것인지, 두려워 도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인지...
나는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말하자면 등단 작가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는 등단하기 전에 벌써 한 권을 발행하였다. 그 후 작가 추천시에 무투표와 무심사로 등단에 올랐다.
그리고 훗날 진짜 등단 작가가 되었으니 공부 좀 해야 된다고 하여 통신대학의 국문학과를 편입하였는데, 졸업 논문의 제출조차 생략되었다. 졸업 논문에 준하는 등단을 하였거나 책을 냈으면 이미 졸업 능력이 있다는 규정이다. 이중 거듭하여 필요충분을 갖춘 것이다.
그랬으니 꿈을 꾸었으니 꿈을 실현해보자!
많은 작품을 쓰고 싶어서 여기저기 소재를 뒤적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관건은 바로 수필집을 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겠는가! 내가 수필집을 내면 되지!
나는 4집까지 발행하였다.
동인(同人)들은 모두 감탄하며 부러워하였다. 내가 아직 한 권도 상재(上梓)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단기간에 4권까지 상재하였다니...
게다가 인터넷 페이스북에 작품이라는 글을 올리고,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올리고, 독도와 위안부에 관련된 기사를 복사하여 올리고, 교회의 설교를 편집하여 올리고, 동인들의 모임인 문학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나도 작가’라면서, 자신이 초라하다고... 극치 중의 극치 칭찬일색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있었다. 다른 작가는 상재하지 못했다는데 왜 이리 늦을까, 작품을 구상하고 다듬는다고 시간과 싸움을 벌이는 것인가. 진정 작품 능력이 부족하여 상재할 수 없는 것일까!
내가 쓴 작품, 아니 내가 펴낸 수필집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허풍으로, 자만심으로, 과장 허세로, 작품을 쓰는 것이 바로 습작이며 보여주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제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 심사위원장격인 좌장에게 말을 내놓았다. 절필 선언이다.
그러나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니 더 많은 작품을 쓰고, 상재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충고가 빗발쳤다.
그래도 계속하여 써야 된다는 수필 작품은 접어두고, 잠시 잊기로 하였다. 대신 이어줄 것은 칼럼이며, 사회과학이다. 개인사보다 대중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들이 내가 쓴 책을 보고 좋다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좋다고 판단해주면 좋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좋은 책을 쓰기가 얼마나 쉬운가? 아니면 매우 어려운가!
나는 새로운 장르 작품에 매진하였다.
칼럼이야 자신의 의지를 담은 것이니 어렵지는 않다. 논리와 주장하는 사고를 담으면 된다. 칼럼은 많이 작성하였으나, 같이 공조하는 사람이 펴낼 원고가 부족하다고 하여 내가 자원하여 투고로 지원하였다. 탄생한 『블루코드』가 공저다.
그러나 사회과학이라면 어떨까.
또한 내가 사는 익산의 문화에 대한 정리와 논리가 필요하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익산의 문화재를 찾아서』가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익산이 백제의 성읍이라면, 도읍지라면, 왕궁지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백제 30대 왕인 무왕이 부여에서 익산으로 천도하여 발전을 꾀한 곳이다.
그런 지역의 문화재를 찾아보며 상세히 설명하는 작업에 장장 3년을 요구받았다. 내 고향, 익산이니 90여 곳의 문화재를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찍은 풍부한 사진을 실었다. 무려 900장 남짓 칼라로.
최소한 한 곳에 3번 이상 중복 탐방한 실사였다. 직접 역사 정리와 현대적 감각을 곁들인 작업은 물론 지방지에 2년에 걸쳐 소개하는 것이 중노동이었다.
보람이 있었다.
나도 기독교에 나가고 있는데, 방문한 교회의 목사가 바빠서 출타 중이라서 만날 수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게다가 불교 소속의 절에 가서도 일부 비구승과는 면담을 하고 뒷담화도 나누었으나 비구니승으로부터는 모두 면담커녕 문전박대를 받았다.
아! 그럴 수가!
수고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오고가는 차량의 수리비와 연료비는 어떻게 보충할 것인가.
그러자 후속품을 위하여 5년의 각고가 따랐다. 각 지역의 문화 그리고 세시풍속 등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현실적인 칼라사진을 얻어 내는 것도 문제였다. 내가 직접 쫓아가서 사진을 찍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전국 각 지역별 행사와 풍속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내가 혼자 나서는 것이 마음뿐이며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펴낸 책은『선조들의 삶, 세시풍속이야기』이다. 처음에는 4*6배판으로 냈으나, 2016년 추후에 국판으로 개정하였다. (전에 구매한 동기들이 연락을 하면 정가 29,000원인 신판을 무료 지급할 예정이다. 수취인이 부담하는 후불택배로.)
그리고 2016년『선조들의 삶, 24절기이야기』가 신간으로 등장한 초판이다. 두 권이 어울리는 한질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방대한 다량의 칼라사진을 첨부하였다. 또한 사진을 전국에서 지원해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보답을 하지 못하였으나 일일이 50명 남짓 이름을 적어 가면서 잊지 않겠다는 뜻을 기록한 것이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최근인 2017년 1월에는『익산프로젝트』를 발행하였다.
내가 사는 익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해서 떠오르는 책 제목이다. 이 책은 분량이 적고 내용도 평이(平易) 하지만 내가 아파서 펴내기가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앞서 지적한『익산의 문화재를 찾아서』와『세시풍속 이야기』그리고『24절기 이야기』가 바로 심근경색과 부정맥을 비롯하여 갑상선 그리고 대상포진까지 이르러 내 생명의 위험 중대기로였다고 여겨진다. 또 하나, 원인불명의 뇌경색이 드러나자 이미 전초병을 잉태한 과로와 안타까운 마음의 피로가 겹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자책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 생명과 바꿔가면서 지은 책이라는 자평(自評)이다. 그리고 지금 한참 쉬어가면서 재충전하라고 지시하신 것인가 여겨진다. 말을 듣지 않으니 사랑하고 사랑하신 분이 그렇게 작전을 펼치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살아가는 현실을 적는 것이 아니라, 향후 벌어지는 세상 혹은 집중해야 할 사안과 개선하거나 특정 사안을 권유하는 책이다.
이른바 다음 지자체 선거를 대비하여 반영한다거나 짐작하고 방향을 제시할 것을 명심하라는 미래형 책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2018년 익산에서 전국체육대회를 개회한다고 결정하였으니, 그때 전국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면서, 당시 익산이 빚어낸 엉망 이미지를 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6개월 앞이 바로 코앞인데, 아직도 분위기는 냉랭하다. 내가 시장과 부시장, 시의원, 도의원은 물론 기자들까지 직접 전달하면서 설명하였는데도 묵묵부답이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주장한 것은 비유와 은유를 빗댔는데, 지금 닥친 말이 아니라고 먼 산을 바라보는 격이다. 가장 중요한 현안이 ‘바로 다가오는 선거에서 당선을!’이라는 명제였나 보다. 지금도 안타깝고 애석하다.
그래서 다시 심기일전하여 성격을 달리한 또 다른 새 책을 냈다.
『행복을 짓는 사랑』이다.
내가 얻은 행복이 없고 얻은 사랑이 없어서, 내가 얻은 행운이 없고 보상을 얻은 배려가 없어서, 참고 참으며 써내고 싶은 책이었다. 작년 닥친 뇌경색과 올해 깁스를 한 손가락 골절을 안고 마음속으로 울고 울면서 썼다.
300쪽을 넘는 분량으로도 보기 쉽고, 읽었다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다. 들고 있어도 책을 들고 있다는 값어치가 보이는 책을 만들자고 노력하였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시합을 하였다.’ 이것은 다 아는데...
그러면 2편과 3편은 아는가? 왜 이들이 다시 재경기를 하였는가. 토끼와 거북이가 이기고 지는 설욕전 그리고 상생(相生)을 펼치는 경기가 들어있다.
펼치고 보면 인생이 바로 수지부모(受之父母)로부터 죽마고우(竹馬故友), 아전인수(我田引水), 노심초사(勞心焦思), 권토중래(捲土重來), 와신상담(臥薪嘗膽), 전화위복(轉禍爲福), 새옹지마(塞翁之馬), 반포지효(反哺之孝), 분골쇄신(粉骨碎身), 그리고 토사구팽(兎死拘烹)까지 이어지는 파란만장의 연속극이다.
나에게 행운이 없으니 차라리 행복을 만들어 누리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결론이다. 그리고 흔하디흔한 교훈, 자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2017년 11월, 대미에 낸 책,『행복을 짓는 사랑』이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나를 다스리고, 조심하고, 조심하자고 다짐하였다. 결과적으로 근신(謹愼)하고 있는 중이다. 내 성격이 불이고 불화와 같은 편이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꾸 쓰다가 느끼고 반성하는 중이다.
앞에서 언급하듯이 시장, 부시장, 시의원, 도의원들이 자기중심으로 움직인다면, 아예 (마음 속으로만) 익산 시민으로 취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이니, 나는 지금도 자중하고 노력해야 할 사람이다.
토끼와 거북이가 어떻게 재대결을 하였는가 보면 누구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책에 그런 내용을 삽입한 사람이라면 어련히 알지 않겠는가. 그러면 나에게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이다.
기술행정사관 4기생들의 임관 40주년을 맞이하여 원고 모집이 도착하였으니, 나도 참여하여 한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지역에서 생업에 매달리니 서울에 가면서 편집할 수 없다고 핑계를 둘려댔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연거푸 4시간 만에 한 편씩을 써냈다. 작품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동기애를 위하여 같이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또 다른 임무이리라.
기행 4기 동기들이여, 행복을 짓는 사랑이 좋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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