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비를 쓸어라
눈이 내리면 대체로 쓸어야한다. 그러나 눈이라 모두 쓸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쓸고 싶어도 쓸지 못하는 눈도 있다. 그것이 바로 젖은 눈이며 진눈깨비다. 또 내린 눈이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눈이라면 쓸어내지 않고 두고두고 보고 싶으며, 간혹 특정인에게 필요한 눈이라 유효할 수도 있다. 다만 일반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거나 인적이 드문 산속에 내리는 자연 풍경으로 남고 싶은 눈에 속한다.
올 소설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 내릴 눈이 적어서 모았다가 대설에는 내리 만큼 내리겠다고 참은 눈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설에도 눈이 내리지 않았다. 혹시 작년에 내린 눈이 너무 많아서 미안했다며 올해는 생략했을 수도 있겠고, 게을러서 눈 내리는 시간까지 늦잠을 잔 탓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낮은 산 즉 뒷산에 난 공원에 갔다. 이름은 도시생태공원이니 게으른 나와는 반가우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지 않는 사이였다. 아침에 한번 저녁에도 한번 가로질러갈 때도 수시로 찾는 곳이다.
그런데 아직 첫눈도 내리지 않은 공원길이 말끔히 정리되었다. 누군가 싸리비를 들고 눈 내리지 않은 길을 누가 쓸 것이냐고 묻겠지만 비질 흔적이 남았다. 솔밭에 내리는 눈은 멀리서 부리나케 달려왔다며 으시대지만 땅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나뭇가지 위에 만족하는 법이다. 간밤에 어떤 눈이란 말인가.
솔밭에는 솔숲이 있고 그 아래에는 솔가루가 내리는 솔비도 있다. 보릿고개에는 솔눈이 마중 나오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눈이 멀리서 오듯 멀리까지도 모인다. 그러나 힐끗 눈치를 보면서 넘본다. 오늘 쓴 눈은 솔눈이었다. 한때는 반갑고 귀한 솔눈이었었지만 지금은 푸석푸석한 가루눈이 날리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너는 낙엽을 밟는 소리를 들어보았느냐가 회자되었지만 지금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조금 지나자 산유화를 즈려밟고 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다르다. 고이 밟고 갈 길이 아니라 굉음에 편승하여 휘돌아나가는 사람 분들과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는 공중예절 에티켓맨에게 항명하여 대뜸 지껄이는 개분도 자주 만나는 길이다.
그래도 묵묵히 솔뿌리를 치우는 사람, 솔눈을 쓸어내는 사람을 보면 나는 즉시 ‘엄지 척’을 보내며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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