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독후감, 독서

마라나타

꿈꾸는 세상살이 2017. 11. 26. 11:22



마라나타

 

손계문/ 생애의 빛/ 2011.12.20./ 376

 

생애의 빛은 진리의 말씀과 성경을 연구하면서 월간지를 내며, TV 방송설교를 송출하기도 한다. 또한 각종 세미나를 비롯하여 요한계시록과 다니엘 연구 동영상까지 구비해놓고 있다. 복음과 거짓교리를 혼돈 그리고 오염시켜 그릇된 상태에 빠트리는 마귀 즉 사단을 찾아 가려내는데도 열성을 보이고 있다.

 

흔히 선입관을 가진 단어가 바로 마라나타일 것이다. 우리 한국어에 대한 단어가 불교적인 냄새를 풍긴다. 정확히 모르지만 막연하나마 티베트어 혹은 인도어 같은 생각도 든다. 어쩌면 한 발음으로 통하는 한 가지 명사라고 착각도 든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니 기독교의 어원인 헬라어로 주께서 다시 오신다는 뜻이란다. 그러니 마라나타가 바로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나는 이 책을 받았을 때에 불교적 인상을 받아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그러다가 기독교 책을 다수 읽은 후 찾아보았고, 불교 책이 무슨 내용인지 펼쳐보았다. 그러나 이 책이 불교서적이 아니라 기독교서적이란다.

 

그러면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덤벼들었다. 그러나 분량이 365가지 주제를 정하여 1년 동안에 한 번이라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책을 만들었나보다. 설교라면 딱딱하고 지루한 것이 당연하다. 종교에 심취한 사람이면 무조건 흥미롭고 재미를 느끼며 절대자와의 대화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일반인 사람이라면 설교를 접하면 바로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무조건 읽겠다고 생각하였다. 365가지 주제가 한 페이지에 담겨있으니 바쁘고 한눈을 팔 여력도 없다. 읽다보면 눈이 아프기도 하면서, 비몽사몽간에 읽은 부분을 돌아가서 다시 읽기도 한다. 힘든 상황이었다. 무려 주 5일 동안 2주간에 걸쳐 읽었고, 하루에 4시간 이상을 할애하였다.

빨리 읽는 묵독이나 속독이 아니라 큰 소리를 내면서 읽어야 하는 음독이니 책을 읽어내기에 힘든 고역이었다. 그런데, 내용이 바로 마라나타이다.

 

요즘 그러니 예수님이 성탄절을 맞아 구주로 오셨다가, 우리의 죄를 맡아 가시관을 쓰시고 죄악의 대상인 강도보다 더 악랄한 죄인이라는 누명을 다 뒤집어 쓰셔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 후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데, 헬라어로 마라나타가 적혀있다고 한다. 오늘 읽은 책은 그런 마라나타를 기억하고, 각성하여, 분투하며, 원 성품을 따라 마귀와 투쟁하여 승리하여야 한다는 본론이다.

그래야만 창조주 즉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 올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교훈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언제 오실 것인지 명확한 기록이 있는데, 그때가 언제냐고 따진다면 사람의 기한대로 언제인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의 달력에 따라 정해진 날짜다. 그러니 사람의 달력과 달라 몇 년 몇 월 며칠인지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 달력은 정해진 몇 년 몇 월 며칠인지 숫자 달력이 아니라, 어느 때가 되면 이룰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그 일이 이루는 날을 보시고 자 이제 때가 되었다고 판정할 사람도 없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아시는 때가 바로 그때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혹시 오늘일까 내일일까 하는 시간이 다 되었다는 해석이다. 요한계시록에 쓰인 전개상황을 맞춰보면 그런 상황이 지금의 상황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해석이 주류다.

 

정말, 오늘이 바로 때가 되었다면, 내가 천국에 올라갈 수 있는 상급을 받아 통과할 수 있는 이력서를 써놓았느냐가 문건이다. 만약 내가 써놓은 이력서라면 그냥 거짓과 조작을 통하여 꾸미면 된다. 그러나 이력서는 내가 써들고 갈 필요도 없이 하늘나라에서 매일매일 보면서 이력서를 쓰고 있으니 거짓이 들통이 나고 말 것이다.

요한과 베드로처럼 자기 목숨을 버리고 오직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감수하신 예수님을 사모하며 따른다면 하늘나라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성스러운 삶, 속죄함의 삶,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충성스런 삶, 나보다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삶이어야 한다.

기독교의 삶은 어렵고 힘든 삶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며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니 바꿔 생각해보면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요구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것들 > 독후감,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화사   (0) 2017.11.27
금수회의록  (0) 2017.11.27
세계의 장례의식   (0) 2017.11.21
기면증, 졸음에 대한 모든 것  (0) 2017.11.21
동포사랑   (0) 2017.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