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산
김동인 :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를 졸업하고,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1919년 주요섭, 전영택 등 문학 동인지를 ‘창조’라고 발간하였으며,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였다.
배따라기, 감자, 태형,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 젊은 그들, 대수양, 운현궁의 봄 등 작품을 냈고, 춘원 연구라는 평론에도 일가견을 보였다.
주인공의 이름은 정익호다. 정의를 살다 죽어가는 사람이라면서 의로움에 일익을 더한다는 좋은 말이다. 그런데 붉은 산은 한국전쟁의 주범인 붉은 무리 즉 공산당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 책을 지었던 시대는 1932년이므로 전쟁을 일으킨 배경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예 미리 정해진 붉은 색을 예견이었는가.
만주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헐벗고 살아가는 지역이 바로 붉은 토양이란다. 지금 보더라도 지역 주민들이 풍족하지 못하고 산기슭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며 빗대어 설명하는 고생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때 정익호가 싸움을 좋아하고 그것도 잔인한 행패를 부리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삵이다. 또한 한창 유행했던 드라마에서 나오는 깡패 무리의 우두머리가 삵이라고 전한다고 했다. 삵은 호랑이 새끼격이며 큰 고양이격이다. 날카로은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이 주무기다. 그러니 정익호가 싸우며 드러내는 포학성이 바로 삵이다. 그래서 별명도 삵이다.
그런 삵이 어떻게 우군이게 도움을 주면서 익호가 되었을까.
조선인 즉 대한민국의 민족성이며 개선한 심리, 마음 속에 흐르는 붉은 피가 대한민국의 동포애이다. 작품이 나온 시대가 1932년이므로 1919년 기미만세운동과 면면히 흐르는 애국민이 드러났다.
소작농이 모여 살았다. 그러다가 실농한 해에 모아서 소출하여 지세(地稅)를 납부하지 못하다가 뭇매를 맞고 죽어간 사람이 나왔다. 그래도 소작인을 대표하여 먼 길을 오가면서 지주에게 사과하고 빌었지만 욕심 많은 중국인이 막무가내로 두르려팼다. 대항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연약하고 힘없는 소작인 그것도 나라가 달라서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 말을 들은 삵이 울분에 떨며 지주에게 대항하러 갔다. 그러나 혼자서 대항할 수 없으며 지주의 패거리들이 그냥 놔두었겠는가. 한국인들에게 대할 적에 막무가내로 대하고 함부로 행패 부리던 정익호가 흐르는 핏줄을 이어가려는 의협심을 발휘한 것이다.
돌아왔으나 자의로 온 곳이 아니고 말에 실려 죽어가는 환자였다. 마을에 도착하자 이제 죽어도 붉은 산을 보고 싶다, 붉은 산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한국민 한 사람으로서 애국가를 부르고 싶다, 그러나 나는 부를 힘이 없으니 제발 애국가를 들려달라고 애원하였다.
평소 삵을 경원하면서 기피한 사람들이 자기를 대표하여 죽어가는 사람이라면 어찌 애통하지 않을까. 모든 지역민들이 붉은 산을 보여주고 애국가를 불러주었다. 떠나는 사람을 애통하게 여기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평소 서운한 것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사람의 도리 만큼이라면 해야 하는 행동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저자가 주장하는 말이다. 국민 간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더라도 대국적인 문제에서는 나서서 국가와 국민을 대변하며 인권을 옹호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시대적 차원에서 계몽하고 훈계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