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아서 좋은 것/익산 00 교회 이야기

하나님의 사랑 (누가복음 15장 11절~24절)

꿈꾸는 세상살이 2017. 12. 6. 20:42

하나님의 사랑 (누가복음 1511~24)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사람이 된다. 오늘 우리 성도들의 삶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만약 곤비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 배후에는 죄와 마귀가 인생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아 살고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삶을 운명처럼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마귀의 저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본문을 보면 사람이 왜 죄와 마귀에 매여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알고,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죄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12절에 보면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이와처럼 일반적은 유산은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욕심으로 가득차여 있었기 때문에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하였다. 바로 이것이 죄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 우리들은 욕심에서 비롯된 과오를 열심히 추구하였다. 이것이 허무한 삶을 살아가기 원한 것이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더욱 어려운 상황을 초래한다. 13절에 보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한데 낭비하더니를 건전한 삶에 필요한 재산이 아니며, 허랑방탕 하는 죄의 속에 들어갔음을 느낄 수 있다.

이어서 흉년이 들자 비참해진다. 이렇듯 죄는 죄를 낳고 그 죄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둘째 아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돼지를 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돼지에게 먹이는 열매를 먹기 원하고 만다. 만약 불쌍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참담한 지경에 이르고 만다.

따라서 주님 안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깨달음인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지금이라도 아버지께 돌아온다면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르게 살 수 있다.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증거이다.

 

둘째 아들을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마자 기쁨으로 달려가 맞이한다. 20절에 의하면 아직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가 있는 것처럼, 아버지는 그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자녀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으니 아들을 보자마자 기쁨으로 달려가 큰 장치를 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재산을 낭비하고 고생한 것을 묻거나 꾸짖지 않고 그냥 기뻐하기만 하였다. 가장 좋은 것들로 채워주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당신께로 돌아오는 자가 있으면, 기꺼이 받아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과정이다.

 

정리하면 아들처럼 각자의 욕심을 따라 죄의 자리에서 방황하며 사망의 길로 달려가던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내어주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천국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바라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복된 삶을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다다르면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과 감사의 고백을 주님께 부르짖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