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이야기
채만식 : 백릉, 전북 옥구 출생이며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의 영문과를 중퇴, 귀국 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를 역임하였고, 1925년 조선문단에 추천되어 ‘세 길로’를 발표하였다. 부촌, 화물자동차, 사라지는 그림자, ㄹ;디 메이드 인생, 인텔리와 빈대떡, 치숙, 소망 등을 썼다.
논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의 말기에 살다가 해방되면서 일본인이 쫓겨 가던 과정에서 논을 사고 판 세상이야기다. 일반적으로는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에 군수품을 생산하려고 금속을 훑어가며, 그때 소용되는 인력의 먹을 것을 위하여 곡식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개인 치부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 논리상 그럴수록 그 심도가 더했다.
한 생원이 논을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 부친이 동학란에 가담하였다고 묶이고 말았다. 그러나 동학란은 동학(東學)의 정의상으로는 서양학(西洋學)에 대비할 수 있는 사상이다. 그저 단순한 농민들이 집단행동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고유 동학의 주이다.
그런데 일본은 조선의 도움으로 동학군을 타진한다는 이유와 침략 야욕으로 침투하는 정신세뇌적 전술이었다. 그래서 한 생원의 부친은 이방의 이간으로 논을 원에게 지급하고 풀려날 수 있었다. 일본은 앉아서 땅을 빼앗으면서 조선인들을 조정하는 꼼수를 발휘한 것이다.
그 후 한 생원은 조금 가지고 있었던 논을 희사하고, 나머지로는 8명의 호구지책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럭저럭 일을 놓다가 모자란 돈을 빌려 빚을 지게 되었다. 드디어 그마저 남은 논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길천이라는 일본인이 근동의 논을 많이 사들인다는 첩보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시세보다 많이 그것도 훨씬 많이 주고라도 산다는 내용이었다.
많이 준다면 이참에 팔고, 빚을 갚고 조금 남은 돈이 있다면 다른 논을 사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흥정을 하다가 길천이에게 팔았다. 그러나 이미 일본이 패망하여 도망갈 즈음이며, 일본인이 논을 샀으니 그 논을 조선 사람이 차지할 것이라는 짐작이다. 그것도 일본인에게 판 논이라면 그 전에 소유한 조선 사람이 바로 그대로 빼앗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일본인은 도망하면서 평소 자신의 휘하에게 위임하면서 즉 일본인 소유의 논 그리고 모든 권리를 맡기고 갔다. 그것은 인심쓰면서 주고 간 것이다. 여기에서 한 생원은 다시 자신의 소유가 되어야 하는데 왜 일본인의 휘하가 마음대로 휘드냐고 따졌다.
게다가 조선 그리고 광복과 국호가 변경됨에 따라 무주공산이 국가의 소유로 넘어간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니 내가 주장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것인데 이토록 얼토당토하지 못한 일이 있느냐고 원망하였다.
주제다.
채만식이 군산 옥구 출신이므로 논을 사고 판 지역이 자신의 근리를 중심으로 하여 임피, 황등을 주로 거론하고, 철도를 부설한다는 이유로 전개되는 강경과 철도 부지의 뿌리인 대전까지 거론하였다.
시대상에 따라 변하는 상황을 분석하고 이해심리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백릉이 군산과 익산을 종합하여 투자에 관한 심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논 즉 기초 식량에 관한 내용이며, 일본인의 심리 그리고 거기에 아부하며 동조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채만식의 묘소에까지 가보았으며, 대표작인「탁류」에 거론되는 인명과 지명의 주요 등장지를 찾아가기도 하였다. 백릉이 말년에 일본인을 찬조하는 작품이 있어 친일파의 냄새가 묻혀있다. 그 시대에 조선인의 계몽을 펼치다가 밥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한국의 거장인 미당 서정주도 만년에는 친일파성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춘원 이광수 등 생각해보면 서운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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