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독후감, 독서

왕치와 소새와 개미

꿈꾸는 세상살이 2017. 12. 12. 19:41

왕치와 소새와 개미

 

채만식 ; 1902~ 1950

 

왕치와 소새는 같이 사는 가족이다. 물론 개미도 같이 사는 일가친척이며 같은 형편이다. 왕치는 배짱이와 비슷하며 소새는 황새와 비슷하다. 또한 개미는 잘록하며 기어 다니는 작고 연약한 상황이다.

배짱이가 한 여름 놀다가 가을이 와도 겨우살이를 할 준비를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다. 게다가 한량처럼 놀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호의호식이다. 눈은 왕방울처럼 또 게처럼 유난히 별다른 신세다.

소새는 그래도 날렵하고 긴 부리가 물속에까지 사냥을 하는 명수다. 날개도 커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는데, 눈을 겨웃거리지만 부리를 재빨리 작살처럼 몸을 던져 혼신을 하는 실력파이다.

그런가 하면 개미는 작고 비쩍 말라버린 주제에 남에게 공격하고 노략질을 하는 처지가 못 되었다. 바람만 불어도 허리가 휘어지고 자칫 체조를 잘못하면 허리가 부러지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그러니 그저 부지런히 모으고 절약하는 자린고비다.

 

그러나 이들은 무료한 생활을 탈피하자고 회의를 하였다. 하루는 개미가 세 마리의 잔치를 차리고, 둘째날은 소새가 책임지기로 정했다. 그런데 사흘 째에는 왕치가 차례가 될 것인데, 왕치는 남에게 베풀지 못하며 자신이 먹을 것도 저축하면서 마련할 형편이 아니라는 것이 누구든지 다 아는 형편이다.

그러나 왕치는 한 가족의 일 구성원의 체면이 있지, 어떻게 나는 매번 신세지고 일 하지 않으면서 얻어 먹고 살 것이냐고 깨달았다. 그래서 왕치도 자기 차례는 반드시 자기가 잔치 준비를 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였다.

 

첫째 날에 개미가 쌀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차렸다. 들에 일하는 것을 보고 샛밥을 나가는 중이었는데, 개미가 힘껏 물어대자 샛밥을 이고 가던 여인이 놀라 밥광주리를 내동냉이 치고 말았었다.

다음날은 소새가 통통한 잉어를 마련하였다. 평소에 작은 물고기도 아끼지 않고 닥치는 대로 부지런히 먹은 소새인데, 이날을 셋이서 배불리 먹자고 커다란 잉어를 겨누었다. 길고 날카로운 부리로 잉어의 눈을 꿰찼었다.

마지막 날은 왕치 차례이다. 왕치는 부들부들하고 연약하지만 그대로 배가 부두둑하며, 그 몸을 날려 멀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날개가 일품이다. 그런데 천성이 영악하지 못하니 이것저것 목표를 정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오히려 잡으려다 잡히지 않은 것만도 행운이었다. 최후의 목표인 잉어가 되레 왕치를 잡아먹었다. 잉어는 그것도 한 입에 부족하다고 씹지 않고 왕치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한 가족인 왕치가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뿐이었다. 잔치 준비는 고사하고 제발 다치지 말고 돌아오라는 일념이었다.

 

둘이서 찾아다녔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저물어 집에 돌아가는 판에 그냥 가기가 그러니, 뭐든지 하라도 먹을 것을 준비해야 되겠다고 잉어를 낚아챘다.

집에서 잉어를 소새와 개미가 한참 먹었다가, 뱃속에서 왕치기 푸드득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일성은, 내가 잡은 잉어니 마음 놓고 맛있게 먹으라다.

소새와 개미도 어처구니가 없다. 잡은 것은 소새이고 잡힌 것은 잉어인데, 역시 왕치는 신 자랑치레만 하니 대머리가 분명하기 딱이다. 너스레도 그렇고 생색도 그렇고 비위장도 그렇다.

소새는 말도 못하고 입이 한 자나 나왔다. 그래서 입이 길고 날카로운 새가 되었다. 개미는 깔깔대면 구르다가 허리를 다쳤다. 그래서 허리가 잘록해지면서 자칫 다치기 십상이다. 이후로 동물이나 곤충의 생김세가 정해진 연유로 전해진다.

 

이른바 신금수회의록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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