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독후감, 독서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

꿈꾸는 세상살이 2018. 4. 23. 21:00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

 

임후남/ 북인/ 2017.12.20./ 110

 

임후남 : 충남 서천 태생으로 서울예술전문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중아일보와 경향신문 출판국를 비롯하여 웅진 씽크빅 등에서 20년이 넘도록 근무하였다. 2011년에시현실에서 신인상을 받아 등단하였다. 지금은 도서출판생각을 담는 집을 운영하고 있다.

 

임후남의 시 정신은 전천후다. 이름이 후남이니 전천후 이 후에 벌어진 것과 내가 남이 아니라 상관이 있는 일체물아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저자의 시가 첫 시집인지도 모르겠지만, 곳곳에 물어들든 것이 나와 너 혹은 당신이 둘이 아니라 내가 된다는 생각인 것 같다. 시집의 제목이 바로내몸에 길 하나 생긴 후이니 설핏 몸이 다쳐서 굵은 상처가 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마음의 대못이 되어 뽑을 수 없는 커다란 생채기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첫 경험을 한 이후 몸에 국소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 읽다보면 일반적인 생각과 걱정과는 전혀 다르다.

 

저자의 사고는 내가 바로 너이고, 내가 바로 나무이며, 내가 자녀가 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나이고 어머니기도 하다. 게다가 나는 어머니이기도 한다. 시 제목이씨간장이라는 것도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벌써 이미 담근 것이 묵은 간장이다. 묵은 간장과 새 간장이 어우러져 같은 묵은간장맛이 된다.

그러나 그 이후 새로 담근 간장을 섞어 부어놓으면 맛이 새맛일 것이다. 그러나 한참 후에는 묵은 간장에 동화되어 새 간장이 닮아가는 새맛이다. 새 맛이라는 것은 항상 지금 지은 갓 새 맛이지만, 언제든지 시간이 변하더라도 열어보면 느끼는 것이 새맛이다. 변화되어도 새 맛이 변해 새맛이 나는 진리다. 그래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바로 동일체라는 주장인 것이다.

내 몸에 길 한 생긴 후에는 길 위의 돌멩이를 치우다보니 버려진 돌이 탑이 된다는 말이다. 점차 쌓여가는 돌멩이를 보면 예전 탑의 기억이 변하여 미련이 남고 안타깝다. 그래서 과거를 잊어버리지 못하고 머무르는 사람이 바로 나란다. 가던 길을 계속 걷지 못하고 있다.

내가 바로 돌이고 탑이며 추억이고 미련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탑이 되어 주체로서 세상물정을 읽은 것이다. 시집에 나오는 시가 바로 이런 현상이다.

어두워지고 난 후에서도 마찬가지다. 불을 켜고 내가 유리창 속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유리창 속으로? 유리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면... 유리가루를 섞어 조합한 커다란 유리 굵고 두터운 유리 자체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 속에 고무나무도 들어가고 옷도 들어가고 책상도 들어갔다니? 나는 물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사상 속에 담아 몰입하여 일심동체가 된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시는 거의 모두가 이런 주장을 담고 있다. 단어 자체는 쉽고 짧다고 하더라도 쉬운 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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