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아서 좋은 것/익산 00 교회 이야기

힘께 살아야 할 가라지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꿈꾸는 세상살이 2018. 5. 11. 19:30

힘께 살아야 할 가라지 (마태복음 1324~30)

 

어떤 사람들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릴 것이다. 그러나 결실할 때에는 가라지가 있어 밭을 망치는 것을 알 것이다. 날이 갈수록 마귀처럼 무성하고 변해질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가라지를 발견하고 구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교회 안에 원하는 알곡만 있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는 가라지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교회 안에 진짜와 가짜가 공존하는지? 구분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교회 안에 좋은 사람들을 알곡으로 모았는데, 원수가 그 뒤에 가라지를 뿌리고 만다. 성경에 사람들이 잘 때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말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라지를 그냥 놔두신다. 뿌리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있는 데로 뿌리도록 놔둔 것이다. 그래서 가짜 성도들이 섞여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순간에 나는 진짜 성도인지 가짜 성도인지 알면서 옳게 행동하는 것인지? 당연히 나는 알곡이 된다는 씨앗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부족하고 미련한 가짜 성도라고 믿었는데 알아보니 나는 진짜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사람의 의도대로 행동한다고 믿지만, 마귀의 일을 따르다가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결국 마지막에 드러나는 가라지의 신분을 알고 대처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인 것이다.

 

예수님은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이제 가라지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밭에 닿은 사람은 가라지를 보고 참을성이 없다. 원하지 않는 가라지라면 바로 뽑고 싶은 심정이다.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뽑아내고 마치기를 바란다. 그러나 가라지를 뽑다보면 알곡 풀을 뽑다가 밭을 망치기도 십상이다.

교회 안에서도 교인이 아닌 사람이 공존한다면, 그냥 놔두고 기다렸다가 알곡 추수철을 기대해야 한다.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이 휩쓸려 뽑히지 않도록, 가짜 사람을 제거하다가 알곡 성도가 상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알곡 성도를 보호하기 위하여, 많은 가라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제거하는 것을 참고 참으면서 시련과 연단을 거쳐야 한다.

 

예수님은 추수 때 가라지를 처리하시겠다고 하셨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알곡은 남고 가라지는 태워버리는 것이 곡식을 가꾸는 사람의 순리이다. 알곡은 주인의 수중에 남아 있지만, 가라지는 불태워버려진다.

교회 안에서 공존했던 알곡 성도들은 하나님의 천국에 부르심을 받지만, 마귀의 조종대로 훼방하는 가라지는 먼저 선택되어 버려진다. 가난하고 배운 것이 부족하더라도, 명예 권세가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기준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아이처럼 순수하고 정의로우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는 사람이 바로 알곡 성도이다. 의복과 먹고 삶을 누리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처신이 아니시었다. 주님의 손에 모아서 선택하는 성도들이 알곡인 것이다.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알곡이 자랄 때에는 가라지도 자라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씨를 뿌리는 현명한 농부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지를 구분해낸다. 그러나 분하고 원통하지만 가라지를 볼 때마다 뽑아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주님이 해결해주실 때까지 정리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교회에 들어서더라도 찬양하면서 엎드려 기도하며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알곡 곡식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