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터부시하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니까 첫 직장을 얻었고 일편단심 충성하다가 마지막 직장에서 끝냈다. 이 정도라면 보통 사람들은 나를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말 그 말이 맞기도 할 듯하다. 요즘은 직장을 구하기 힘들고 버티는 것도 힘들어서 자신의 의지를 굽히면서도 견뎌내지 못한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행복한 주재(廚宰)에 터부한 사람 타령이라니? 정말 없는데 거짓말로 꾸민다든지! 아니다. 숱한 세월 속에 그런 일이 없었겠는가. 생각해보면 고비 고비마다 숨어서 돌연 듯 튀어나오기 일쑤다.
나는 별에 야망이 없었다. 그저 충실한 직장인으로서 만족하였다. 그래선지 영입한 별이 낙하산을 타고 왔다. 수용하면서, 미리 알아야할 것을 설명해주었다. 나이 작은 낙하산은 처음부터 듣는 것 자체를 거부, 터부시하고 부정하며, 어깃장만 늘어놓다가 궁하면 계급으로 눌렀다.
몇 번째 반복하다가 나는 그저 마음대로 하라며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퇴직한 3년 쯤, 그 낙하산이 떨어졌다. 사유를 물어보니 폐암말기. 아니 그럴 수가! 절실한 신자이며 아내와 함께 둘이 나서서 찬송도 부른다는 모범 신앙인이었단다. 삶이 단순한 그 것 뿐이겠나?
몇 년 후, 다른 지인이 먼저 갔다. 기업체 정년이 55세를 넘어 58세, 60세로 늘어나면서 오래 경험한 사람이었다. 나는 50세로 퇴직하였으니 정년퇴직이라는 특혜를 누리지 못하고, 기업체의 꽃만 안고 협력업체로 남았다.
그는 나를 오라 가라 불렀다. 당연한 의사표시! 수긍하면서 다소곳했다. 그러자 한번은 나도 의사표시를 뱉었다.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니 말이 되냐? 직장인의 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인데 사람대우 좀 해 달라’는 주장이었다. 내 말을 듣자 ‘알았다’고 했으나 다음날 원위치 상태가 되었다. ‘오라 가라’는 단어는 손가락 하나를 꼽고 펴면 오라 가라는 뜻이다. 직급은 과장과 부장사이. 구매과장과 협력업체 사장사이. 당한 것은 시쳇말로 똥개 훈련! 그러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간 자기가 겪은 자격지심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누린 적이 없는데... 30년 이상 같은 솥밥을 먹었던 사람인데... 눈만 보면 말 안 해도 알 정도인데...
상황을 아는 모 지인은 나를 따라 즉각 자진 퇴직하였다. 내가 먼저 별을 따고 이어서 자기가 딸 것이라고 믿었는데, 실망과 우려가 겹쳐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나는 극구 말렸다. 나보다 1년 늦은 입사로 고락을 나눈 기업총수에 대한 실망이었다고 실토했다. 선의의 경쟁으로 성장하면서 벼텨냈다가 꺾고 말았다. 이는 나를 저주한 사람이 아니다. 나도 서럽게 공감했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탈탈무드20-분만실에서 두 번 호출한 대통령 (0) | 2020.03.02 |
---|---|
탈탈무드19-제주 렌터카의 뒷담화 (0) | 2020.03.02 |
탈탈무드17-나는 초보운전 (0) | 2020.03.02 |
탈탈무드16- 바이어를 모신 그랜저 렌트카 (0) | 2020.03.02 |
탈탈무드15-쭈그러졌어도 우산은 훌륭했다 (0) | 2020.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