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내가 아는 교회

꿈꾸는 세상살이 2020. 10. 6. 09:40

내가 아는 교회

 

지금 거론하는 교회는 가다가 만나는 교회 오다가 만나는 교회 중의 하나이다.

있는 곳은 작은 도시의 변두리이고, 마당도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다. 말하자면 나무와 제법 어울리는 오래된 교회에 속한다는 뜻이다. 한적한 시골에 오래된 교회라면 그런대로 이름이 있는 교회일 것이다. 명판도 좋고 신도 수도 인구대비 그럭저럭 모이는 교회다. 한 마디로는 평탄하게 알려진 교회로 통한다.

개척 당시부터 신도들이 십시일반 갹출하여 지은 교회일 것이고, 그중에서 공이 많은 성도가 장로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른바 장로교이기 때문에 누구나 선망하는 장로가 교회의 일거수일투족을 좌지우지하는 주무관이다. 그러나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하다가 오래 젖고 보면 전횡을 하고 만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일이 성에 차지 못한다며 반론에까지 이른다. 그런 실례이다.

장로는 목사와 언쟁을 하였고, 마음에 차지 못하자 목사를 대 놓고 선전포고를 하였다. 기한을 주고 반성하며 공개사과를 하지 못하면 장로가 교회를 나가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목사는 지금까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버티자, 눈엣가시 장로가 교회를 나갔다.

목사는 신도가 적어서 직접 소형 버스를 운전했다. 시골은 교통상, 고령자뿐이니 모셔 다니는 것이 상례다. 게다가 헌금액도 적어서 생계가 어려운 현실이다. 장로는 이것을 빌미로 삼아, 협박한 셈이다. 도시의 험악한 쟁투가 아니라 순박한 시골 교회의 말다툼 꺼리에도 못 미친 아이들 밥투정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두 달이 지나가 장로가 돌아왔다. , 목사라는 놈이 왜 아직도 안 나가고 버티고 있느냐고 퍼부었다. 실상 그 장로는 벌써 정식 은퇴한 나이로, 교회에 간섭할 권한은 없다. 옛 공헌을 기득권으로 영구히 누리자는 욕심이다. 이러다 아들을 세습 장로로 삼을 속셈도 느낀다.

장로는 몰고 나갔다가 들어온 같은 전력도 있다. 목사는 이 기회를 빌려 나갔다.

신도들이 울고불고 말렸지만, 목사는 이런 품격, 신망, 경력을 가졌으니 이 정도는 떳떳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며 공식 선언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목자가 없는 교회로 전락하다 보니 신도가 급감했다. 교계에 소문났고, 최소 정족수마저 무너졌다.

기회를 노린 장로가 직접 강단에 섰다. 그러자 신도들이 줄줄이 빠져나갔다. 말하자면 걷는 일이 힘든 노인과 먼 교회를 싫어하는 신도만 남았다. 아니, 무조건 추종하는 자칭 현명한 패거리는 있다.

지금의 한국은 목회자가 계속 늘어나는데, 전체인구는 줄어든다. 선호 개신교 신도도 줄어든다. 도시에서도 개척교회는 새신자를 모시는 것이 힘들다. 더구나 시골에서는 따지나 마나다.

한참 공석 후 다른 목사가 왔다.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경력을 쌓고 신망도 얻고 개척교회를 건너뛰는 일거삼득을 던졌을 것이다. 등용문을 두드리는 전초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