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쉬운 숙제부터 풀기

꿈꾸는 세상살이 2020. 10. 6. 10:08

쉬운 숙제부터 풀기

 

살다보면 생각이 많은 사람이 많은 숙제를 안고 산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누구든지 처음에는 쉬운 문제를 풀기가 수월하다. 물론 어려운 것을 풀다보면 쉬운 숙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후자는 숙제 풀이에 많은 투입을 요구한다. 누구든 상황과 신념에 따라, 타인의 도움에 따라 다르게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소신을 따라 작은 숙제부터 풀기 시작해왔다.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를 짚어서 풀어가는 중이다. 만나고 싶었던 분인데, 우선 전화로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물어가면서 소통하는 과정에 들었다.

30년 전에 이사를 했다든지, 전직을 하다가 멀리 떠났다는 것도 숙제 중의 하나를 남겨준 셈이다. 천리 떠난 지인을, 긴 시간을 뜸하고 어찌 찾아낼 수 있을까? 간간히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로 연락을 해왔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나는 불현 듯 10년 전부터는 찾고 싶은 생각이 났다. 여기저기 부탁해놓다가 드디어 전번이 도착하였다. 기쁘고 반갑다. 그런데 막상 통화를 하고보니 긴요하고 중요한 할 말은 없다. 그저 안부를 묻거나 최근 발생한 사건에 대한 감정을 나누는 것에 지나지 않다. 물어본 안부에 대해서도 후속조치를 할 수가 없다는 말뿐이다.

하긴, 그렇다 치더라도 오랜만에 통화한 사람 간에는 단순하게 주고받은 말에 지나지 않아도 반갑고 후련하다. 이것이 숙제를 푸는 수단이다.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못했다 하더라도, 그저 들어만 줘도 숙제는 백점이다. 앞으로 얼마나 살 것인지 모르겠지만 3년에 한 번쯤 통화하면 될까? 생각해본다. 미루면 평생 한 번 통화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해도 된다.

성경에도 나오는 말이, 마음속에 남은 앙금이 있다면 즉시 가서 해결하고 오라는 말이다. 즉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으면 지금 당장 숙제를 풀고 오라는 말이다.

내가 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얻어서 통화를 했다. 단순한 사람 사는 일상사 중의 하나를 화제로 삼았다. 그러다 다른 일이 생겨서 빨리 끊었다. 미안해서 문자를 보냈다. 다시 공통 관심에 둔 사람의 소재를 파악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동병상련이어서 소재 파악 대신 다른 사람에게 내 부탁과 함께 설명하였고, 반갑게도 바로 전화가 왔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잊지 않아서 놀랐다. 나보다 상대방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것이 작은 버킷리스트라고 여긴다.

평생 하고 싶은 일, 죽기 전에 이것만큼은 해보고 싶은 일은 아니라도 작은 버킷리스트도 있다. 쉬운 일이 남으면 짐이 될 것이다. 그러니 쌓고 쌓이면 풀 수 없는 어려운 숙제로 쳐질 수도 있다. 쉬운 일은 미루지 말고 바로 바로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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