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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

꿈꾸는 세상살이 2020. 10. 6. 10:10

아버지의 유산

 

아버지는 1920년생이시다. 이미 20년 전에 작고하셨지만, 올해로 100년 전에 태어나신 분이다. 나의 아버지는 힘든 생활을 꾸려 가시면서 사람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보내드리고 생각해보니 그런대로 아름다운 삶을 사셨다고 자부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유산을 남기셨다. 많은 돈과 권력, 그리고 많은 식솔도 아니지만 평범하면서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가르치신 유산이었다. 누구에게 인계할 수도 없는 고유한 부분이며,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을 유전물질 즉 DNA를 주셨다. 강점기 시절과 전쟁이라는 굴레를 벗어났고, 고려장과 가부장제를 넘으셨다. 이것은 새로운 세대라는 트렌드를 예견하고 각자도생이라는 주제를 부여하셨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금전적 유산과 기업을 물려받지는 않았다. 결혼 때도 각자도생을 가르치셨고, 물질적 유산은 쌀 반 가마 정도의 금액을 주셨다. 현재로 환산해도 40Kg 에 해당하는 규모다. 신혼여행비와 돌아와서도 다시 객지로 갈 차비를 주신 몫이었다.

그때 나는 그래도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 이상의 금액을 조금이라도 줄 수 있겠지만, 주거나 주지 않거나 달라질 것은 별반 없다. 목표는 각자도생이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분가를 하면서 모든 것은 각자 몫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삶을 실감하는 현실이었다.

아버지는 동생들을 결혼까지 책임져주셨지만, 결혼을 하고나면 이제 스스로 체험을 딛고 서야 한다. 이것은 현실을 극복하는 슬기를 익혀가는 연습이었다. 거친 풍파를 이겨내는 실전이었다. 물론 온실에서 자란 묘목이 빨리 큰다는 것은 인정한다. 빨리 크다가 빨리 부러질 수도 있고 빨리 꺾일 수도 있다. 큰 숲도 큰 나무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큰 지도자가 필요하지만 모두 큰 지도자로만 이루는 것은 아니다. 작은 사람도 있어야 필요한 조직을 영위할 수 있다. 사람은 떠날 때 돌아보면 사람답게 살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가진 돈을 모두 쥐고 가는 사람은 없고, 가진 권력을 모두 쥐고 가는 사람도 없다. 돈과 명예, 권력도 일부라도 쥐고 가는 사람도 없다. 남기고 가는 사람은 오로지 후손이 존경하는 마음과 두고두고 기릴 만한 정신으로 살아온 사람뿐이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사용하라는 말이 있다. 개 같이 벌라는 말은 무조건 많이 벌라는 뜻이 아니며, 정승처럼 쓰라는 말은 우러러 칭송을 받을 만큼 사용하라는 말이다.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좋게 쓰라는 바람이다.

요즘 각자도생 중 자신이 떠날 때까지 자기의 임무를 스스로 다 하겠다는 주의가 대두된다. 증여가 필요하지만 우선 1순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간다는 것이 좋은 최종각자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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