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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식성

꿈꾸는 세상살이 2020. 10. 6. 10:09

아버지의 식성

 

아버지의 식성을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어쩌면 확실한 답은 틀릴 것이다. 그 말은 항상 다르기 때문에 그런 답이 나올 것이 확실하다. 부모님 또한 아버지도 부모님의 식성을 대부분 모를 것이다.

무슨 말일까? 자식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맞는 답이다. 항상 옳고 항상 올바른 답도 아들이 입장을 보면서 변하기 때문이다. 흔히 어머니는 벌써 밥 먹었다면서 많이 먹어서 배가 불렀다고 하신다. 내 딴으로는 어머니는 바쁘셔서 부엌에서 밥을 잡수실 때 서서 잡수시기 때문에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 말을 확인하고 싶어서 숨어 지켜보았더니 역시나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물 말아 잡수시다가, 상을 차리다가, 불을 때다가, 설거지를 하셨다는 증언이 잇는다. 그렇다면 얼마나 평안히 잡수셨을까? 아니다. 어머니의 답변이 틀렸다는 것도 다 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항상 안방에 정좌하고 밥상을 받고 나서, 밥 벌써 먹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봤자 한두 번이나 거짓말도 통하지만 계속되면 곧 들통 나고 만다. 예전의 아버지는 주로 힘이 많이 드는 노동성 일을 하시므로 밥심으로 버티신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런 근로 유형을 이어가신다.

나도 그런 일을 겪어보았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입학시험을 치러야 했었다. 그날 벌어진 간단한 일이지만 지금도 잊지 못할 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앞세우시고 시험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다행히도 시험장은 시내 번화가를 지나서 서울로 가는 주요 도로이므로 엄청 편리하기는 했다. 아버지는 입장하실 수 없어서 정문 앞에서 말씀하셨다. 시험을 잘 치르고 나오면 바로 이 식당으로 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정확한 시각은 모르나 시험을 끝내고 나오면 벌써 식사 시간을 넘은 듯했다. 식당에서 먹기는 난생 처음이라서, 혼자 들어가기를 멈칫 멈칫했다. 눈치를 채신 아버지께서 문을 열어 확인하시고 반갑게 들이셨다. 시험은 잘 치렀느냐고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미 시위를 떠난 살이니 아무리 물어봐도 물릴 방법이 없으니 묻지 않는 것이 정답이었다.

아버지는 다짜고짜 국밥을 주문하셨다. 시험 결과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아들의 식성 정도야 아시다는 듯, 가정의 형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문하셨다. 시험 철이 추운 날이니 뜨거운 국밥이 단방 특효약이었을 것이다.

국밥은 김이 모락모락 올랐고, 보기만 해도 따뜻해졌고 마음도 훈훈해졌다. 그런데 한 그릇 뿐이었다. 아버지는? 하고 물었더니 나는 아침 일찍 나오면서 든든하게 먹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여기 앉아서 기다리다 보니 배가 안 꺼져서 밥 생각이 없으시단다. 내 생각으로는 그런가? 정말인가? 하다가 잊고 말았다.

그 뒤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는 단연 돼지국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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