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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 통지서가 두 장 날아왔다

꿈꾸는 세상살이 2020. 10. 6. 10:22

입영 통지서가 두 장 날아왔다

 

우리나라는 분단 상황을 맞아 두 개로 나뉘었다는 뜻이고, 아직 전쟁 중이라서 통일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국민은 누구든지 군대에 가야할 형편이었다.

전쟁이라면 신체가 건강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준다. 지식이나 부와 권력을 떠나 체력이 국력이라는 조건에 따르게 된다. 내가 군에 입대한 날짜는 1977625일이었다. 뼈아픈 6·25 전쟁이 일어난 날짜에 입대하였으니 감회가 새롭다.

내가 받은 입영 통지서는 대략 열흘 전 이었다. 통지서를 수령한 날짜는 명확하지 않지만, 군에 가면 해결될 터이니 그 날짜를 따질 필요는 없다. 그래서 입영 전야라는 가요가 있듯이 축하해주고, 보내지 않고 싶어서 슬픈 마음을 담은 노래에 따라 송별식도 했다. 그런데 날짜가 다가오더니 5일 전에 다시 입영 통지서 한 장이 날아왔다. 제목은 장교 합격 통지서.

첫 장은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누구라도 가야할 입대 통지서, 두 번째는 장교 모집에 지원서를 제출하고 응시 과정을 거쳐 뽑힌 대상자였다. 기대를 하였지만 합격 통지서가 늦어지자 마음만 아팠고 가슴은 두 방망이질 했다. 합격하면 장교가면 되고, 불합격이면 일반 병으로 가면 될 것인데 무슨 걱정이 있었을까?

예전에 내가 원하는 육군사관학교에 응시하였다가 낙방하고 말았다. 본인은 얼마나 서운하고 창피하였을까. 학교에서도 합격은 충분하다면서 믿고 기대하였는데, 예상 밖의 일이라서 낙담에 휩싸인 때도 있었다. 몇 년 후에 그래서 공개 모집이라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니, 그 자체가 고맙고 행운이었다.

그런데도 합격 통지서가 늦게 도착했고, 집에서도 동창들에게도 모집에 응모했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또 다시 불합격이라는 멍에를 쓸까봐 장교라는 단어를 꺼내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합격 통지서를 받아보니 너무 촉박했다. 다음날 기차를 타고 도청 소재지에 도착한 뒤, 버스를 타고 아니 기쁜 마음에 택시를 타고 바로 병무청을 방문하였다. 병무청에 들어가자 장정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속으로는 너희들은 일반 병으로 가겠지! 나는 장교로 가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은 어이! 무슨 일이야? 얼쩡얼쩡하지 말고 하자 나는 제정신을 차렸다.

내가 당당하게 여기요, 입영 통지서가 두 장 나왔어요!’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러나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두 장? 그러면 어떤 것을 갈지 선택해!’ 말했다. 따지고 보면 어떤 통지서에 따라 갈 것인지 나에게 선택권을 주겠단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다소곳이 장교요!’ 하며 겸손스럽게 말했다.

짧은 선택권이 주어진 장교라니내가 지원한 장교 시험이니 당연하겠지. 아니면 일반 병으로 가는 것도 당연하겠지. 뭐라고 해도 선택 후 따라오는 뒷감당도 내가 질 의무 중의 하나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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