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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아물한 공지천

꿈꾸는 세상살이 2022. 1. 2. 07:08

아물아물한 공지천

 

많은 사람이 공지천을 사랑한다. 공지천은 사람이 아니라서 동물이 아니라서 살아있는 식물이 아니라서 사랑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겠지만, 번복하여 좋아한다고 하면 모른 척 눈을 돌릴 것이다.

공지천은 공간이 있는 땅이 천과 만났다는 의미일 듯하다. 더 나가면 개울에 붙어있는 빈 땅이라는 뜻이 맞겠다. 내가 좋아하는 공지천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공지천은 물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아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공기를 떠나서 살 수 있어도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진리를 벗어날 수 없어서 그럴 것이다.

사람의 물질 구 성분 중에 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무려 70%란다. 사람이 태어날 때도 물이 가득 찬 풍선 속에 묻혀 있었고 생명이 양수 속에서 자랐으며, 태어날 때도 함께 따라다녔다. 그러니 사람은 물을 떠날 수 없으며 거부할 수도 없는 숙명이다. 떼래야 뗄 수 없는 불가성 물의 인연이다.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공지천은 반갑고 고마운 둑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공지천을 마음대로 만날 수는 없다. 물은 있으나 뚝방이 없는가 하며, 뚝방은 있어도 마음 놓고 발을 붙일 수도 없다. 그래서 일명 공지천이라는 단어를 붙여놓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것은 지극히 드물다. 내 생각으로는 전국을 둘러보아도 공지천이라는 지명을 붙여준 곳은 춘천뿐이다. 정말 당연한 단어에 지나지 않지만, 춘천 중에서도 공지천은 단 한 곳밖에는 없다.

물의 도시 춘천이라던데 물이 얼마나 많아서 붙여진 별명이었을까. 인공적인 놀이기구와 복합시설이 없어도 부담 없이 찾아볼 수 있는 곳을 왜 공지천이라고 명명하였을까.

 

내가 처음 찾아본 공지천은 대략 40년 넘어 일이었다. 대략 10년 전에는 화천을 방문하는 김에 지나는 춘천이었으므로 생각 없이 지나갔었다. 20년 전에는 인근 인제를 방문하면서도 춘천은 그냥 지나가는 도로 정도에 그쳤다. 이번에는 어떤 방문이었을까? 그것은 그저 춘천을 방문하는 것뿐이었으며, 좋아도 싫어도 춘천에서 먹고 자야 하는 순수 방문이었다.

다시 찾은 공지천의 기억은 사북면의 소재 한 부대에서 복무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출장과 파견으로 절반을 보냈지만 기회가 있으면 춘천 시내로 나갔는데, 우선 탕을 들렀으며 다음으로는 닭갈비를 찾았다. 매번 닭갈비만 먹고 살 수는 없는 인생이라서 보릿고개와 함께 탄생한 국밥, 후르룩 후르룩 넘어가는 달콤한 짜장면, 어쩌다 탕수육과 막국수도 별미로 오르내렸다. 그리고 체면상 책방에 들르기도 하는가 하면 무료하면 영화관도 빠지지 않았다. 매번 따분한 영화만 볼 수도 없어서 그냥 거리를 걷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공지천이었다.

한 도심에서 벗어나지 않은 가까운 부도심, 먼 강가로 가보면 드라이브한 듯한 분위기를 내보는 가까운 뚝방. 견치돌로 차곡차곡 쌓은 뚝방은 그저 그런 단순한 제방이다. 물이란 녀석이 감히 사람에게 덤빌까봐 굳건한 돌로 쌓은 것이 돌제방이다. 그래도 물이 있고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간이어서 좋았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즉석 인증서를 보낼 수도 있지만 당시는 그럴 수 없었다.

부모님 소식을 통해 멀지 않은 부대를 방문하여보니 동생은 임무를 마치고 포상휴가 중이란다. 흔한 일이지만 포상휴가는 꿈속의 휴가다. 내 딴에는 허망했지만 헛걸음 한 보람으로 동생을 외출시켜달라고 하소연했고, 정말 아빠찬스 엄마찬스 대신 형찬스를 얻어 외출 나왔다. 그래서 한창 유행하던 일회용 카메라로 사진도 찍어주기도 했다. 공지천에서.

19783. 오래전인 그때 나는 춘성군 사북면 소재 한 부대에 있었고 뒤이어 친동생이 화천 전방 7사단에 왔으며, 지금은 내 아들이 7사단에서 7년이 넘도록 근무하는 중이다. 아이를 빌미 삼아 춘천에서 화천으로 출퇴근한다. 40년을 훌쩍 넘어 새삼스레 공지천을 둘러보니 얼마나 애틋한 인연이었을까.

이번 공지천은 지나다가 한 번 들러서 만나보자는 인물이 아니었고, 그럼 조금 멀어도 일부러 돌아서라도 찾아보자는 주인공도 아니었다. 출발하는 목적지가 바로 춘천이었고 목표지도 춘천이었다. 그러다가 다른 곳이 생각나면 시간을 내어 산뜻한 드라이브라도 좋겠다는 여행도 아니었다.

내 주거지에서 생소하지만, 아름다운 단어 수력발전소 하면 바로 춘천과 화천이 튀어나온다. 그러다가 화천 하면 파로호, 춘천 하면 공지천! 공지천 하면 오가면서 항상 느꼈던 아름다운 상고대! 누구처럼 지긋지긋한 군대 생활로 엮인 공지천이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을까? 상고대가 날카로운 비수로 변해서 깊이 박혔을까? 오죽하면 몽매 그리다 잊혀지지 않았을까?

 

세계의 미항이라는 베네치아, 나폴리, 시드니는 내가 가볼 형편은 아니었다. 복무 중으로 혹은 연구 목적이나 생업 목적 등으로 가는 것과 달리 단순한 여행 목적으로는 언감생심, 살아가기 바쁜 삶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나에게는 치열하게 산 삶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지칭했으며, 한려수도의 대명사 오동도 여수,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제주 등도 아름답기는 그지없다. 그 외에 한강을 업고 성장한 서울, 금강을 부여안고 간직해온 부여 낙화암은 어떻게 비유되었을까? 그래서 호반의 도시 춘천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고, 혹시나 혹평을 들을까 염려되어 거대한 다목적 댐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춘천하면 구구단처럼 당연히 떠올리는 호반의 도시가 행여 안개의 도시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기후 변화를 힘입어 재탄생되는 안개 블랙아이스로 발전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눈을 뜨면 생각나는 단어는 공지천 뚝방과 상고대가 우선순위이다.

 

그러나 이번에 들른 공지천에서는 뚝방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둑이 없어졌는지 제방을 옮겨놓았는지도 모르면서 어찌 되었든 간에 못 찾은 것은 분명하다. 하고 많은 인파와 차량이 질주하는데, 그 틈새에서 찾아보겠다는 생각마저도 사라졌다. ‘내가 아는 공지천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에서 한동안 대명사로 불렸던 공지천은, 아름다운 명예를 비로소 후배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역사의 한 페이지처럼, 사전에서 나란히 등장하는 과거의 대명사인 듯하다. 살다 보니 역시나 세월을 이긴 장사가 없다는 명언이 생각난다. 드디어 춘천은 관광도시로 재탄생된 순간이었나보다.

꿈을 찾아 방문한 공지천은 그저 지나가는 명소로 남고 말았다. 기차를 타고 덜컹덜컹 찾아가는 의암댐, 29세로 끝을 낸 봄봄의 작가 김유정 생가, 국내 최장 3.6km 삼악산호수케이블카, 국내 최장 174m 소양강스카이워크, 이른바 인공 관광도시로 꿈틀거렸나 보다. 탈을 완전히 벗어서는 안 되고 벗을 수도 없으니 다른 탈을 쓰고라도 바꾸고는 싶었나 보다.

 

옛 기억의 공지천은 어떻게든 되돌릴 수 있으려나

다른 방법은 있다. 그저 단념하면 간단하게 끝난다. 도저히 잊을 수 없으면 다시 회생하면 된다. 기억을 더듬어 그림을 그려도 되고, 기억을 더듬어 글을 써도 된다. 기억을 더듬어 사진을 찾아도 되고, 기억을 더듬어 기사를 찾아도 된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영영 안 된다면 그 순간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뚝방을 등지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게딱지 판잣집을 지어도 충분하다. 뚝방 돌 틈새에 작은 들꽃을 심어도 만족하다. 내가 좋아하는 꽃, 옆지기가 좋아하는 꽃을 심으면 필요충분을 모두 만족시키고도 남는다. 고고한 매화가 상고대를 업고 피는가 하면 청초한 진달래가 나른한 봄을 타고 유혹하면 대만족이다. 더위를 씻어주는 강바람을 한껏 마시다 풍만해진 겹동백이 송곳 찌를 곳 없이 빽빽이 몰려오는 상고대를 맞아준다면 끝판왕 황홀감에 빠진다.

 

내 꿈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정말로 이루어지지 않는 꿈으로 끝나도 좋다. 내가 꿈을 꾸는 것은 다시 고쳐 꾸면 되니까. 꿈을 깡그리 잊었으면 영상을 다시 보면 되니까. 실 날 같은 꿈을 잃었다면 없는 꿈을 다시 만들어내면 되니까. 공지천아! 내가 죽기 전에 다시 돌아와다오. 나는 너를 다시 만나고 싶다.

죽기 전에! 이것이 바로 꿈이다. 희망이요 바람이다.

사람에게 희망이 없으면 휘몰아치는 역경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허무한 무지개일지라도 허망한 신기루일지라도, 꿈이 있어야 희망이 있고 미래가 생길 단 한 번뿐인 기회이다. 나도 꿈속에서 아련한 공지천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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