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평야 벼농사 이야기
국립민소박물관/ 전라북도
이선용/ 2008.09.12./ 203쪽
누구도 상관없이 먹고 살아가는 쌀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누구든지 이 책에 대한 관심을 주지도 않는다. 나도 그렇다. 나는 이 책을 얻은 때가 벌써 10년이나 지난 옛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런데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 여러 종류의 몇 권을 한꺼번에 얻은 것이라서 독서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다른 책이 있어서 순서를 정하고 읽으려고 미뤘음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쌀은 맛있는 쌀이라더니 요즘 관심 외로 밀려났을까? 그것은 복잡하고 다른 맛을 찾다가 밀에 빵에 피자에 통닭에 자리를 넘겨주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며 그래도 다시 쌀을 챙겨보아야 한다고 느껴서 적는 독후감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의 쌀은 1991년 6월 한국선사문화연구소에서 발견한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가와리 유에서 발견한 볍씨를 조사해보니, 알고 있었던 시대인 BC 1000년 보다 1300년을 거슬러 올라가 BC 2300년 경 부터 재배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쌀은 밀과 옥수수와 3대 곡물인데 북위 45도 남위 40도까지 재배하며, 해발 2,500m의 산간에서도 가능한 품종이다. 수면하 그러니까 염도가 0.3% 이하인 경우도 재배 가능하다. 그래서 바다를 막는 간척지가 생긴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벼는 <오리자 새티바>라는 학명에 속하며, 재배벼와 대략 20~21종의 야생벼로 구분한다. 1년생 식물으로써 꽃가루의 수명이 3분간에 다하므로 20m~40m로 빨리 확산하는 풀이라고 보면 된다. 배재종은 동아시아 미국과 유럽에서 부드럽고 끈기가 있어서 선호하는 자포니카, 중간 끈기의 식감이 있어서 인도네시아 주종인 자바니카, 인도 일원과 인도차이나에서 억세고 퍼석퍼석해서 선호하는 주종인 인디카 3종이 있다.
인공 재배를 하면 시샘을 하는 병충해가 꼬인다. 병해도 200여 종이 있고 충해도 200여 종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것이 도열병, 잎집무늬마름병, 흰잎마름병, 줄무늬 잎마름병, 오갈병, 검은 오갈병, 깨씨무늬병, 키다리병, 이삭누룩병, 세균성벼알마름병을 들 수 있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으레 농약을 7~8회 쳤지만 지금은 3~4회로 줄었다. 벼 자체 내병성도 생겼을 것이지만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려고 여러 가지 병원(病源)을 차단하는 약제를 만들어냈다는 의견도 무시하지 못한다.
벼농사는 일제 강점기에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분명히 쌀 즉 식량을 수탈하려는 목적이 크다. 일본 입맛에 딱 들어맞아서 그랬고, 조금 미흡하다면서 일본 품종을 들여오기도 했다. 색깔이 희고 윤기가 나며 구수한 맛과 풍미가 있다. 모양의 시각도 좋고 씹을 때의 청각도 좋고 구수한 후각도 있으며 씹을수록 고소한 단맛이 있어서 만족했다고 본다.
이 쌀은 책에서 언급하는 칼로리 구성별 영양소 균형 기본틀 내에서 단백질 11~14%, 지방 20~30%, 탄수화물 56~69%를 주장하였으며, 한국인의 섭취결과를 분석해 보니 단백질 12.4%, 지방 19.3%, 탄수화물 68.3%로써 이론과 실제가 동일하다는 결과이다. 만약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추가해야만 하는데, 거기에는 김치와 미역 등의 반찬과 국이 있어서 만족하다는 내용이라고 본다.
벼의 발전사도 복잡하다. 1900년 중구 필동에 누에사업을 펼쳤으며, 1904년 농상공학교에 농과를 증설하고 1905년 뚝섬에 부속 농장을 농사시험장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1906년 수원 서둔리에 전업모범장을, 이리호남농업연구소의 전신인 농사시험장 남선지장, 사리원에 서선지장을 설립하였다.
1915년 부터는 벼의 인공 교배를 연구하다가 1933년에 <남선13호>라는 성과를 내기도 했으나, 그 사이에도 일본 선호 품종을 속속 도입하기도 했다. 그 후 1965년에 이르러 영남농업연구소를 밀양에 설립하게 되었다.
우리가 들었던 통일벼는 1971년 작물과학원에서 교배 성공한 종인데, 내충성과 내냉성이 개선되었으며 키가 작아서 태풍에도 비교적 강하다는 장점을 가졌다. 특히 수확량이 증대되어서 만족스럽다는 평가로 올랐다. 또한 여러 품종을 개발하였으며 <삼강>을 내놓으면서 획기적인 생산량이 늘어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70년부터 ha당 8~9톤이라는 최고를 넘어 드디어 1976년에는 보릿고개를 헤쳐나왔으며, 자급자족을 달성해냈다. 1984년 ha 당 10.06톤이라는 단일 품종의 생산량의 신기록을 경신해서 이어오고 있다.
벼는 싫어도 무시하지 말고, 단맛이 없어도 배척하지 말라. 쌀은 단순한 식물이지만 지금도 가장 중요한 세계인의 밀보다 옥수수보다 으뜸 주요 공급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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