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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쌍릉의 주인은 누구인가

꿈꾸는 세상살이 2023. 1. 12. 12:32

익산 쌍릉의 주인은 누구인가

<미르 212019.06.01. 읽은 후>

 

익산에 있는 쌍릉은 두 개의 큰 무덤이라서 쌍릉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는 더 크고 아마도 백제 무왕의 묘라고 알아 온 것이며, 다른 것은 큰 무덤에 비해 약간 작은 것으로써 아마도 무왕의 아내인 선화 왕후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왔었다. 그래서 대왕묘와 소왕묘라고도 나눠 불렀다.

그런데 백제의 무왕의 묘라기 전에 기자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러다가 익산에 와서 살았다는 사람이 있는데 기준왕이라는 말이었으며 그가 청주 한씨의 시초자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래서 다 인정하면서 기준왕의 묘이며 그는 청주 한씨의 종중 묘라는 주장도 계속 진행되어왔다. 그러다가 정식 기관에서 대대적인 발굴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백제 무왕의 묘가 분명할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골성분을 확인해보고 여러 주변 시료를 분석해보니 무왕 밖에는 없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법의학자, 임산공학자, 고고학, 물리학, 유전학, 생화학 전문가를 동원하면서 판단한 것은 대략 161~170cm, 덩치가 건강한 남자, 60대 이상, 생전에 낙상한 경험이 있는 사람, 어패류를 상용한 것이라면 인대가 골화된 것이라고 판단되어 왕이나 귀족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무왕임이 확실하다는 보고서이었다. 그것도 무려 620~659년 사이에 죽은 사람일 것이라는 진단까지 등장하면서 말이다. 무왕은 600~641년 사이에 재위한 왕이다.

만약 무왕이 아니라면? 2018. 07. 17. 정식 보고가 끝났다.

이미 확인된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한 왕후가 사택적덕이었다는 증거가 있으며, 사택적덕이 왕을 심히 걱정한다는 글도 발견되었다. 그 왕은 사택적덕의 남편이다. 그런데 선화공주는 허구일까. 아직도 확인되지는 못했다.

정말 서동과 선화가 사랑하는 세기의 사랑이었다면, 만약 미륵사의 석탑 두 중에서 서쪽 석탑은 사택적덕이 주장하는 왕이였을 수도 있고, 동쪽 석탑은 선화가 주인공이라는 증거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쪽의 동탑 석탑에서는 그러한 기록이 발견되지 못했다. 사택적덕이 동쪽 석탑까지 관할 했었다면 선화가 허구일 수도 선화가 후궁일 수도 있겠다. 아니 사택적덕이 죽은 후 왕후가 바로 선화로 등장할 수도 있겠다.

 

나는 청주 한씨의 후예이다. 그래서 익산 쌍릉의 주인은 아마도 기준왕이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선조의 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어서 말한 것이었다. 한참 그 후 정식으로 국가에서 발굴하면서 결론을 내리니 시비가 종식되었다고 본다. 국가와 개인의 문제 해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묘는 즉 소왕묘는 사택적덕의 묘인지 선화의 묘인지도 모르고 있다. 거기에서는 그런 인물을 밝힐 수 있는 시료가 전혀 없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모두 도굴되고 남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화공주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도 살아 있어서 무덤이 없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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