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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 선운사

꿈꾸는 세상살이 2006. 5. 1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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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 선운사 / 한호철

요 근래 고창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 물론 가보다마다요. 그래요. 좋으시겠습니다. 그런데 언제 가 보셨나요. 한 4년 되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최근이라고 해야 될지 아니면 아니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무럼요. 고창은 하루가 멀게 달라지고 있거든요. 그래요. 어디가 그렇게 달라지던가요. 여러 가지로 모든 것이 그래요. 하긴 고창도 땅이 넓으니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아마도 한 10년 전에 가 보았다고 해야 맞겠네요. 그러면 최근은 아니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고창이 그렇게 빨리 변하고 있나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저기 가 볼 곳도 많고, 여기저기 들를 곳도 많으니까요. 거기다가 같은 장소라 하더라도 봄따라 다르고, 여름따라 다르니 어디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그럼 노형은 언제 다녀오셨나요. 네 저는 작년 가을에 다녀왔습니다. 그때는 어디에 다녀오셨습니까. 예 선운사입니다.

선운사도 찾아가 볼만한 곳입니다. 봄에는 봄대로, 여름에는 여름대로, 가을에는 가을대로, 겨울에는 겨울대로 모두 각기 다른 볼 만한 멋이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멋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운사라는 절이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선운산 풍경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맞닿아 있어서 해풍을 맞는 것도 그렇고, 산세가 험하지 않으나 울창한 삼림도 그렇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능선도 일품입니다.
오며가며 볼 수 있는 바위며, 이어지는 물줄기는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지치지도 않게 하면서 편하게도 해줍니다. 거기다가 입구에서 산 밑까지 이어지는 길도 평지나 다름없어 등산이 아닌 산책으로도 훌륭합니다. 중간 중간에 문화재도 있어서 눈요기도 충분하며, 높지 않으나 정상에 오르면 풍광이 볼만 합니다.
전성기에는 선운사 소속의 암자가 89개나 있었으며, 승려 수 만해도 3,000 명에 달했다고 하니 전국 제일의 사찰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이러한 선운사가 지금은 그 위세가 많이 축소되어 조용한 산사로 변하여 있습니다.
저는 작년 여름에 아내와 함께 찾았던 곳입니다. 그리고 다시 가을에 선운산엘 다녀왔습니다. 그 때는 늦가을인데 날씨가 따뜻하여 별다른 추위는 느끼지 못했고, 여기저기서 공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단도 고치고, 집도 수리하고, 나무도 더 많이 심고, 여러 가지로 올 봄부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그런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는 제발 주차요금을 안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선운산의 봄은 선운사의 동백꽃을 으뜸으로 칩니다. 비록 말을 못하여 고향의 이름조차 한번도 불러보지 못하는 동백이지만, 육지에 살면서도 고향인 바다 건너를 바라보는 그런 식물입니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동백군락지는 아직도 해안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벽해가 상전되어 바다 속 땅이 솟아올라 온다면 육지가 될 것이고, 그 틈을 타서 떠나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 선운사의 봄 동백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라는 시입니다. 미당은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태생이며, 어릴 적에 고향을 떠나 줄포를 거쳐 서울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선운리와 선운산은 지척간에 있는 지명이기는 하지만 서로의 연관성은 전혀 없는 동명이지이며,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운사 동구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이 짧은 시에 모든 설명을 할 수는 없겠으며, 그림을 그려낼 수는 없더라도 전부터 선운사의 동백꽃이 유명했다는 것은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선운사의 뒤 언덕에서 500년이나 600년 쯤 살았다는 동백나무가 3000그루나 모여 있다가, 일제히 피워대는 동백꽃은 가히 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송창식이 부른 가요에서도 선운사가 등장합니다. 여기에서도 동백꽃이 거론되고 있으며, 지천으로 덮인 그 동백이 떨어지는 것이 안타깝고 서러워 마치 연인들이 이별하는 아픔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선운사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움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지는 그곳 말이예요

정말 선운사의 봄은 동백으로부터 온다고 하여도 맞는 말 같습니다. 전국의 많은 곳에서 동백이 피어나지만 이 곳 선운사의 동백만은 못 한가 봅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서 반기고, 떨어지는 꽃조차 아까워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역시 동백은 봄의 선운사와 떨어질 수 없는 그런 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불구불 200리도 더되는 이 길을 따라 수도 없이 찾았습니다. 가을 단풍을 보러 갈 때도 들르는 곳입니다. 봄에 단체 소풍을 갈 때도 들르는 곳입니다. 여름에 변산에 들르면 여기까지 거쳐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풍천장어를 생각하면 들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가족끼리 조용한 봄 등산을 계획할 때도 빠지지 않는 곳입니다. 모임에서도 멀지 않으면서 가깝지도 않고, 높지도 않으면서 등산도 하는 곳으로 이 곳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볼거리와 먹거리를 다 가지고 있어야 다시 찾아가고픈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운산은 이처럼 여러 가지로 많은 자연 혜택을 다 받은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선운사가 그토록 커다란 사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선운사에 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거기서 선운사 뒤뜰의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름에는 시원한 나무그늘을 걸으면서 길을 따라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단풍잎 하나가 물위에 떨어져서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참을 쳐다보다가 호호 불어내고 그냥 손바닥으로 퍼서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잎도 없이 줄기만 있는 것이 대파와 같은 꽃무릇으로 온 천지를 덮어 놓은 듯한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담쟁이덩굴과 같이 바위벽에 붙어 올라가는 소나무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선운산은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으며, 서해안 고속도로에서는 흥덕나들목으로 내리시면 됩니다. 여기서 선운사 방향으로 가시면 이정표가 잘 안내를 해 줄 것입니다. 만약 국도를 원하실 경우 고창군 흥덕면 소재지의 검문소를 통과하면 바로 서해안 고속도로의 흥덕 나들목과 만나게 되는데, 동행하여 국도 22호선을 따라 선운사 방향으로 가시면 됩니다.
선운산은 도립공원으로 남쪽보다도 서쪽이 더 잘 알려지긴 하였지만, 아늑하고 푸근하며, 정감이 가는 그런 곳입니다. 여기에 바로 선운사가 있습니다. 봄 동백이 훌륭하지만 가을의 경치도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언제든지 가보시면 우리 산하의 멋을 느끼실 것입니다. (2005.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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