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다섯 봉우리 오봉산

꿈꾸는 세상살이 2006. 5. 20. 23:47
 

 

 다섯 봉우리 오봉산 / 한호철

 

2004년 12월 25일. 토요일. 오봉산을 찾아 나섰다.

약 한달 전부터 벼르고 별러서 만든 일정이다. 지난 달 25일 연로하신 모친께서 병원에 입원하신 탓으로 그간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점이 많았었다. 엊그제 퇴원을 하셨으니 사실 할일은 더 많아졌겠지만 한결 여유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오봉산은 그 이름부터가 다정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이 산은 해발 513m 의 높지 않은 산이며 전북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소모마을에서 등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길은 전주에서 국도 27번을 따라 구이면을 거쳐 옥정호쪽으로 가면 된다.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우측도로변에 백여리 주유소가 나오고 그 곳에 대모마을과 소모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좀더 짧고 편한 코스를 원한다면 승용차로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도 있

다. 앞에 설명한 주유소 건너에는 정자마을이라는 안내 팻말도 서 있다. 여기에서는 오봉산이라는 단어는 없으니 주민들에게 물어보든지 아니면 그냥 기도원가는 길을 물어보아도 된다. 

이 정자마을 안내를 따라 좌회전을 하여 마을 속을 통과하여 가다보면 길 끝 마을을 만나게 된다. 만약 여기서 직진을하면 바로 길이 끊어져서 후진을 하여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을 만큼의 좁은 길이다. 거기서 작은 도랑을 건너 회관쪽으로 좌회전을 한 후 마을 이장이라는 팻말이 붙은 대문을 끼고 골목길로 우회전하여 든다. 이 골목길은 도시의 하수구를 덮은 시멘트 블록모양의 간이복개도로를 연상시키는 골목이다, 

앞산의 산허리는 삼림용 소방도로를 두르고 있으며 비포장도로가 이어지고, 겨우 경운기가 하나가 지나 갈 정도여서 이 길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도로다. 혹시 산속에서 미아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면서 가다보면 멀리 집들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면 강아지가 나를 반기는 듯 달려오지만 나는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집 뒤로 난 길을 그냥 지나갈 뿐이다. 여기가 벧엘교회 기도원이고 노인 요양원이다. 역시 하늘과 맞닿은 곳에는 기도원이 있어도 좋을 듯한 그런 곳이다.

이 길을 통과할 때쯤이면 벌써 오봉산의 봉우리들 아래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주차할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여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다보면 길은 어느새 끝이 나고 새로운 신작로와 만나게 된다. 지금 지나 온 길은 이름도 없는 산림용 소방도로일 뿐이고 새로 만난 길은 지방도 749번의 아스팔트 2차선 도로이다.

전주에서 처음 떠났던 27번 국도를 따라 계속하여 남으로 내려가면 옥정호의 운암대교를 거치게 되고, 여기서 다리를 건너기 전에 좌회전하는 지방도로로 분기되는데 여기가 749번 도로이다. 이 749번 도로는 운암호 즉 옥정호의 강변도로라고 하여도 좋을 만큼 길게 호수를 끼고 돈다. 749번 도로에서는 역으로 북쪽을 향하여 올라오는 코스를 따라 오면 고개 정상에 벧엘교회 기도원이라는 작은 팻말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오봉산이라는 안내 표시는 찾을 수 없다.

여기는 벌써 오봉산의 중턱만큼이나 올라온 듯하고, 보이는 계곡들은 겹겹이 싸여 아름다운 산하를 만들어 놓았다. 산을 깍아내려 만든 도로에서는 짜투리 산자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바로 코앞에 옥정호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나는 여기저기서 안내하는 말들을 믿고 무작정 산을 찾아 나섰던 곳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곳에서는 실망을 하고 그냥 돌아오는 곳도 있었다. 산을 보고 실망한 것이 아니라, 그 곳을 찾는 데 고생만 하다가 못 찾고 돌아오는 그런 실망을 한 것들이다. 이 오봉산도 그런 산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인적드문 산속에서 미아되기를 두려워하면서도 끝까지 버티고 간 길이 결국은 쉽고도 쉬운 749번 도로의 고개 정상이었던 것이다.

이 고개의 정상에서 시작되는 등산은 그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 고개 정상의 기도원쪽에서는 등산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고개의 정상에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1km를 더 걸어 내려가면, 왼쪽에 등산용 길이 나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길은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2차선 도로를 지나고, 계속하여 내려가면 주차장에 도착하기 전에 나타난다. 거기 길도 그냥 풀 속을 헤치고 소나무 밑으로 나 있는 것이므로 조심스레 보아야만 찾을 수 있다.

오봉산은 자신이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경치 좋은 옥정호를 굽어보는 전망 좋은 산이다. 오봉산은 다섯 봉우리로 되어 있단다. 연꽃 봉우리, 시루봉, 병풍바위, 치마바위, 베틀바위 등이 그것이다.

동쪽 옥정호에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다. 처음에 서루르니 여기서 벌써 힘에 겨워진다. 그러나 처음 봉우리를 지나면서 부터는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었다. 정말이지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능선 길은 나 같은 초보자에게도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서있는 봉우리가 몇 번째인지는 잘 모르겠다. 밑에서 보이는 봉우리는 분명히 다섯 개가 넘으니 말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분명히 다섯 개는 넘는다. 첫 번째 봉우리에 도착한 시각은 11:55이다. 둘째는 12:05. 세 번째는 12:20. 네 번째 12:25. 다섯 번째 봉우리에 도착한 시각은 12:30 이었다. 그리고도 봉우리 세 개가 남았다. 나는 여기서 가져간 도시락을 먹고 다시 돌아 서기로 하였다. 나는 이미 오봉을 다 오르지 않았던가. 어느 것이 연꽃봉우리인지, 시루봉인지 알 수도 없다. 바위가 길게 늘어서 있으니 이것이 치마바위인지 아니면 병풍바위인지 그것도 알 수가 없다. 그 중 가장 높으니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그 이름은 모르겠다. 그러나 지도에는 봉우리를 나타내는 등고선이 분명히 다섯 개 그려져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세 개의 봉우리는 어디서 왔단 말인가. 이것은 봉우리의 높이 차가 20m 미만으로, 등고선으로 그리기 어려운 정도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본 오봉산은 전해지는 봉우리가 다섯 개 말고도 세 개나 더 내밀고 있지 않았던가.

이름도 없는 이 세 개의 봉우리들은 내가 찾아오기만을 지금까지 학수고대하다가 그렇게 되지나 않았는지 생각되어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산은 먼 옛날부터 그렇게 나를 기다림보다 운암저수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옥정호는 다섯 개의 눈으로 보기에도 부족하여 여덟 개의 눈으로 보아야 직성이 풀렸을 그런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옥정호. 구슬같이 맑고 투명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나에게 선을 보이고 있다. 햇빛에 반사된 맑은 물은 경포대가 필요 없고, 섬섬이 이어진 모습들은 해상공원 다도해가 필요 없다. 강변을 이어주는 도로는 춘천의 호반도로가 필요 없고, 옥정호의 섬마을은 남이섬이 필요 없는 그런 풍광이다. 오봉산에서 바라보는 옥정호는 1925년부터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 댐인 섬진강댐으로 만들어 진 호수다. 콘크리트 중력식 댐인 섬진강 다목적댐은 두 차례 중단 되었다가 1965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는데 이 둑은 자동차 통행도 가능하여 다른 다목적댐과 차이가 있다. 댐 높이 64m, 댐 길이 344.2m, 수문 15개의 이 호수는 3억 5,100만 톤의 물을 저장하고 있다. 또 하나 특징은 운암대교의 교각이 국내 교량 중 가장 긴 간격으로 유명하다.

비록 상수원 보호지역이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아름다운 자연의 대명사라고 말하여도 좋을 듯하다. 이런 아름다움을 보려면 역시 오봉산에 올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여덟 봉우리 오봉산은 아름다운 산이다. 2004년의 마지막 토요일은 이렇게 저물어 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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