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
2004년 10월 24일 일요일. 만덕산을 향했다,
만덕산행은 전북 완주군 소양면 월상리에서 시작된다. 바로 옆 마을 인 소양면 신촌리에서도 등산이 가능한데, 산복도로와 같은 산기슭을 한 계단 오르면 그 곳이 월상리이므로 이곳에서 오르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말할 수 있다. 또는 반대편인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에서도 등산이 가능하다.
만덕산은 해발 762m의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며, 산의 무릎에는 곰티재가 있어 여기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면 산행이 쉬워진다. 일반적인 만덕산의 산행은 여기서 시작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몇 년 전 어느 해 여름 시원한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 왔다가 이 곳 신촌리 두목마을 버스종점까지 왔던 적이 있다. 이곳은 10 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마을 모정 앞 공터가 종점인데 비포장 자갈밭이 이제는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다.
개울가 경사진 언덕에 임자없는 자두나무가 있어 따 먹었던 기억도 난다. 그만큼 사람도 적고, 길손이 먹으면 얼마나 먹겠느냐고 탓하지 않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곳이 만덕산의 등산 초입인줄은 몰랐었다. 다시 2,3 년 만에 와 본 마을인데 역시 등산객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 길을 물어봐도 그냥 저리로 가라고 가리킬 뿐이다. 아마도 조용한 마을이 외지인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만덕산. 아마도 만 가지의 덕을 가지고 있는 산이라는 이름이려니 생각이 든다. 아니면 만 가지 덕을 쌓은 사람만이 오를 수 있는 산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산을 오르기 전에는 전자이기를 바라며, 산에 오른 후에는 후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일명 부처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만덕산은 26번 도로를 따라 전주에서 진안쪽으로 가다보면 완주군 소양면에 이르고, 이 소재지에서 4km를 더 가면 순두부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1시 방향길로 접어들어 진안으로 가는 옛길 모래재 구 길을 택한다. 길가 풍경을 감상하면서 약 1km를 지나갈 즈음 다시 소로길 25번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접어든다.
신촌리 두목마을에서는 약간 큰 길이 나타나더라도 좌회전하지 말고 만덕사라는 팻말이 보일 때까지 계속 직진하여 그 길을 따라 들어선다.
월상리로 가는 길은 기도원과 학생 수련원을 지나면서는 비포장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익산 장수간 고속도로 건설 현장의 만덕교와 만덕터널 공사구간에 접하여 그 중간쯤에 만덕산을 알리는 간판이 있다.
만덕교의 교각은 마치 쌍둥이 빌딩을 옮겨다 놓은 듯 산 중턱까지 걸쳐있다. 산허리를 뭉개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공사를 하다 보니 교량이 많고 터널이 많은 것이 특징인 도로가 된다고 한다. 이곳 역시 교량을 지나서 바로 터널로 연결되고, 산의 형태를 최대한 보존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만덕산 등산로는 입구에서부터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를 만난다. 길의 경사가 심하다보니 도로가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포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마을초입부터 여기까지 만덕산을 알리는 간판은 하나도 없다. 다만 신촌리와 상월리를 아는 사람만이 찾아올 수 있고, 만덕산 미륵사라는 간판이 딱 한군데 있을 뿐이다.
그리고 등산을 시작하는 곰티재 도로변에 산불방지와 입산금지 안내 간판이 또 하나 있는 정도이다. 만덕산을 찾는 등산객에게는 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을법하다.
가파른 도로를 힘겹게 오르면 바로 나타나는 바위절벽은 그만큼 큰 계곡을 만들고 이름만큼이나 후덕한 경치를 보여준다. 포장도로에서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하는 등산로 표시도 누군가 함석조각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간이 안내판으로 대신한다.
아마도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미륵사에 닿게 되고 그러면 거기서 등산로를 물어보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조용한 산사에서 도를 닦아야 되는 스님들에게 커다란 짐이 되어 아마도 절에서 써놓지 않았을까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그래서 또 한 번 실망하는 기분이 든다.
아쉬운 마음도 잠시뿐 산의 규모나 높이에 걸맞지 않게 우거진 숲과 계곡은 그 기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그리고는 이어서 찾아오는 자갈길과 돌밭은 등산을 하는 것인지 지압을 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정도로 어지럽다.
이러한 자갈길은 정상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진다. 만약 발밑이 평평한 흙길이라면 옆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더 없이 좋은 등산 코스일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려운 산길을 맞아 단 한시도 발걸음을 가벼이 할 수가 없으니 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이랴 오만 방자하여 고개가 뻣뻣한 사람은 오지 말라는 듯한 걸림목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다. 죽어서 부러진 나뭇가지가 길을 턱하니 걸치고 있으니 할 수없이 고개를 숙이고 그 밑으로 지나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러한 곳이 무려 7군데나 있으니, 덕이 가득 찬 사람만이 올라 올수 있어 만덕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울창한 숲이라면 밑에서부터 주의 경고판을 붙이고, 때로는 길 안내 표지판을 세워 놓았으면 좋았겠다하는 아쉬움이 있다. 혹시 겨울에 이곳으로 산을 오르려면 위험하지 않도록 등산 장비를 모두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만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등산을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산비탈에 놓여 진 자갈길을 가는 것만도 미끄러지기 십상인데, 만약 그 위에 낙엽이 덮이고, 자갈에 눈이라도 내려앉으면 그야말로 위험한 조건을 모두 갖춘 것이니 등산을 아예 금하는 편이 나을듯하다. 그래서 11월부터는 입산금지라는 안내판이 여벌로 붙어있는 것이 아님을 알 것 같다.
이 만덕산의 정상에 오르면 그 꼭대기에는 말안장과 같이 동서로 늘어 선 길고 좁은 능선이 있다. 이 말 잔등에 앉아 곰티재를 굽어보고 적을 맞아 싸웠을 임진란의 의병들을 떠 올려본다.
정상의 등산로는 좌우 양쪽으로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서있는 사이를 통하여 지나간다. 산의 정상과 남쪽 기슭은 흙이 있으나 북쪽은 등산로를 포함한 전 경사면에 걸쳐 흙이 없는 자갈밭이다.
그러나 산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완만한 남쪽에 비해 급경사진 북쪽이 더 아름답다. 바위도 있고 나무도 있으며, 계곡과 봉우리가 있다. 멀리 보이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세다보니 너무 많아 다 세지 못하고, 그냥 모두 합쳐 만 개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래서 만덕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라는 또 다른 생각을 해본다. 한 봉우리에 덕이 한 개씩이니 만 개의 봉우리는 만덕산인 것이다. 그렇다고 유별나게 크거나 튀어나는 봉우리도 없다. 보이는 봉우리마다 잔잔한 운해를 두르고 있어 다도해를 연상시킨다.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은 화려한 등산객들이 아니다. 만 가지 덕을 쌓기 위하여 하나하나 노력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 산에서 단 한 개의 덕만 쌓으면 이제 만 가지의 덕을 쌓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부처산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성인군자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속에 나도 들어있으니 이제부터는 나도 언행을 삼가 조심하여야겠다. 어떻게 생각해보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부러워하는 것 같아 마음이 우쭐해진다. 그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 자만하고 교만해지다가는 만 가지 덕에서 하나가 부족해지지나 않을지 불안한 마음도 든다.
이 산의 정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냥 산이 있어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다. 그들은 요즘 한창인 단풍축제로 혼잡해진 유명산을 찾기보다는 호젓한 산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찾는 사람도 적으니 별도의 주차장도 필요 없어 길가 여유 진 곳에 그냥 세워 두고 가면 그만이다. 산이 높지 않으니 수시로 오르내리니 주차할 자리도 바꿀 수 있어서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산의 입구에도 그 흔한 매점 하나가 없다. 산의 정상에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집회를 할 그럴 여유 공간도 없다. 그냥 혼자서 조용히 왔다가 인생사 덕을 쌓고 조용히 내려가면 되는 산이다.
그래도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격려하는 인사는 잊지 않는다. 만덕산은 그렇게 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찾아오는 산이다. 덕으로 세워진 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덕행을 일상으로 알고 왔다가 그렇게 행동하고 돌아서서 가는 산이다.
200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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