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2004년 10월17일 일요일. 굳이 멀리 있고 유명한 산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곳의 우리 산하를 둘러보기로 한 후 오늘은 대둔산을 향했다.
익히 알고 있는 대둔산은 전북과 충남의 경계선에 있으며, 해발 878m로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인데, 그 모습은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나다. 그래서 흔히들 남한의 소금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7년에 전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3년에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이산은 산세가 계룡산과 비슷하지만 대명당 자리를 계룡산에 넘겨준 탓에 한이 든 산이라고 불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한듬산이고 이것을 한자어로 표기하여 대둔산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봉우리 근처에 바위가 많이 있는데, 암석으로 되어 있는 최고봉 마천대에는 개척탑이 있다.
대둔산을 주 경로인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서 오르면 전국에서 가장 길고 가파른 케이블카도 있으며,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이어주는 길이 50m의 금강구름다리와, 다시 삼선암을 이어주는 수직형 철제 삼선계단이 유명하다.
또한 충남쪽에서 오를라 치면 숲이 무성하고 중후한데 화랑폭포, 금강폭포, 비선폭포, 화랑석문, 196계단 등이 등산객을 유혹한다.
대둔산은 산 전체가 크지는 않지만 봄부터 겨울까지 철따라 각기 다른 멋을 지니고 있다. 그 중 가을 단풍은 다른 산에 비해 자랑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단풍은 대둔산의 사계절 경치 중 단연 으뜸이다.
나는 이 산을 가끔씩 찾아본다. 그때마다 계절에 상관없이, 시간에 상관없이 찾아와도 좋은 그런 산이라는 것을 느끼곤 한다. 우리가 자주 오르는 산의 남쪽은 대체로 물이 귀한 편이고, 자갈길도 있으나 바위가 많아서 미끄러지기도 쉽고, 철제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등 만만치 않은 산행길이다.
이 산에서는 해마다 10월 하순이 되면 단풍철에 맞추어 대둔산축제를 연다. 올해 2004년은 벌써 그 아홉 번째다. 올해는 약간 이른 시기에 대둔산을 찾아왔지만, 작년에는 때마침 축제기간 중에 방문하여 풍성한 잔치를 맛보기도 하였었다.
올해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다고들 말하는데 그래도 길은 벌써 울긋불긋 움직이는 단풍뿐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형형색색의 헝겊을 길마다 떨어뜨려 놓아 가을 맞을 준비를 이미 끝낸 상태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주차장이 비좁을 것을 예상하고 저 멀리 길가 공터에서부터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어떤 얌체족은 자기만 생각하여 도로를 차지하고 일렬주차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생긴 노상주차 행렬이 족히 오리도 넘어 보인다.
우리 민족은 명절을 기다렸다가 고향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가을의 산야를 기다리는 마음도 대단한 것 같다.
우리도 길옆 공터 간이 주차장에 도착하였으나 보이는 곳마다 벌써 차량들로 가득하다. 어렵사리 자리를 잡고 사방을 둘러보니 움직이는 단풍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선에 묶여 이어졌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벌거벗은 임금님이 생각났다. 혹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 아름다운 선이 다 보이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나만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도 든다.
그러자 예전에 내가 얼마나 많은 잘못을 하였었는지, 또 누구에게는 얼마나 많이 서운하게 하였는지 반성도 해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다보니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들이 아니고 차량과 차량을 이어주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선이니 바로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량의 번쩍번쩍하는 색상뿐이 아니라 사람마다의 모습 또한 장관이다. 산을 오르는 것이 힘이 들어 거금을 주고 탄 케이블카도, 그것을 기다리는 곳도 형형색색으로 이미 단풍이 물들었다.
원래 산을 올라가는 중에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다가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선으로 이어져있는 오늘은 그 말이 더욱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평소보다 10배도 더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모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각자 모두가 한 마디씩 해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런 때를 위하여 만들어 낸 말이 아마도 북새통이 아닌가 생각된다.
매표소나 상가 등 가는 곳마다 인파에 밀려 내 마음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다. 그런 중에도 한껏 폼을 내고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이 있으니, 멋있기는커녕 산행 꼴불견 베스트에 꼽힐 일이다. 이 사람도 아마 무례라는 보이지 않는 선에 묶여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위험한 지역을 만나거나, 계단이라도 오르게 되면 뒤따라오던 행렬은 원인도 모른 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산 정상에서부터 아래 입구까지 단풍색으로 보이는 선을 그어 놓았는데, 점점이 박힌 단풍주머니에서 역한 냄새가 풍긴다.
요즘 알뜰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음식을 준비해가지고 다닌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각자에게는 요긴한 단풍보따리라고 하더라도 촘촘히 늘어 서있는 인파 속에서는 남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다. 내가 필요하여 맛있게 먹을 때에는 몰랐었지만, 식사시간이 아닌 때 남에게 풍기는 반찬냄새는 또 하나의 고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안 것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길도 넓고, 좌우로 제법 넓은 공터도 있다. 그러므로 출발하면서부터는 가파른 경사면이나 깊은 계곡에 눌려 위축되는 그런 일은 없다. 그런데 만약 이 공간에 조각 작품을 몇 점이라도 갖다놓고, 작지만 인공 연못과 시원한 나무 그늘을 포함한 아기자기한 화단을 조성해 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오며가며 잠시 잠깐 앉아 쉬기도 하고, 특히나 몸이 불편하여 멀리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대화의 장소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각 산의 등산로마다 이런 휴식공간이 만들어진다면 관광객은 산에도 가고 놀이공원에도 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자연을 그리워하는 보이지 않는 선이 더욱 많이 보급될 것이고, 가족과 함께하는 관광문화도 더욱 건전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우리의 대둔산에도 새로운 명소가 탄생하고 모르긴 몰라도 관광객이 2배로 증가할 것도 상상해 본다.
등산로의 입구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낮은 지역에서는 이정표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물론 높은 곳 갈림길에는 안내표시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산행초기에 마음을 다잡는 의미에서 본다면 여러 종류의 안내판이 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로가 외줄기 길이라고 하더라도 대둔산을 처음 찾은 사람들, 오늘은 중간의 어디까지만 산행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낮은 곳, 출발점이라 하더라도 산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자주 갔었던 산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불편하게 느꼈던 점을 생각해 보니,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하고 편리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하여 오르는 중에도 산행예절이나, 공중질서의 안내마저 보이지 않았다. 한참 만에 마지막 휴게소라는 안내표지를 만나지만, 이것은 인근 상가에서 음료수며 음식을 사먹고 가라는 호객용으로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쯤되면 보이지 않는 선으로 묶여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관리사무소 쪽에 한마디 불평쯤 늘어 놓아 볼만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주변 경관을 구경할 여유가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만 앞사람의 배낭끈을 잡고, 그냥 줄줄이 따라가기에 바쁘다. 중간에서 따라가던 어린이나 노약자가 길에서 쉬고 있어도 그냥 밀어붙일 것 같은 지경이다. 바위에 기어오르려고 내미는 두 손을 자칫 밟고 갈 수도 있다. 힘이 들어 잠시 허리를 펼라치면 뒤따라오던 사람들도 모두 서서 허리를 펴지 않을 수 없다.
잠깐 쉬는 사이 사방을 둘러보니 작년여름에 왔을 때 만났던 다람쥐나 청설모는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바위틈에서도 나무 위에서도 이들을 찾을 수가 없다. 도토리나 알밤이 여기저기 나 뒹굴어도 주워갈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아마도 굴속 깊은 곳에서 동그란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가 보다. 혹시 전쟁이라도 난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양식을 많이 모아놓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사람마다 이고 지고, 줄서서 앞만 보고 가는 모습이 흡사 사진 속 1.4 후퇴 때의 모습이다. 굴속 다람쥐는 그때를 회상하며 가슴 아픈 과거를 회상하고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겁 많은 토끼는 아무 소리도 지르지 못한 체 오줌을 저리고 눈물마저 흘렸을 것이다. 만약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흑백과 컬러시대의 차이, 그뿐이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계속하여 걸어가야만 하는 모습이 똑같다. 앉아서 쉬고 싶어도 사람들 발길에 채여 쉬지 못하는 모양도 똑같다. 혹시나 손이라도 놓치면 길을 잃어버릴까봐 꼭 붙어 다니는 것도 똑같다. 밥이 있어도 먹을 여유가 없는 것은, 두 손에 움켜 쥔 주먹밥으로 걸으면서 배를 채우던 모습과 똑같다.
저 산만 넘으면 목적지가 보이고 편히 쉴 수 있다는 희망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정말 산에 가는 길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누가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자신이 나도 모르게 그냥 가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행하는 것이 똑같다.
내가 원하던 목적지에 다다랐다고 하더라도 정작 나에게 주어지는 가시적인 그 어느 것도 없다. 그렇다고 도중에서 멈춘다면 적에게 지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마는 것이다.
평안과 휴식은 지금의 이 일이 힘들어도 끝까지 참고 이겨낸 후에야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오늘 하루의 짧은 대둔산행은 그렇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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