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수덕사 덕숭산

꿈꾸는 세상살이 2006. 5. 29. 20:16
 

수덕사 덕숭산


다른 산들은 먼저 산 이름을 말하고 그 안에 있는 절 이름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곳 수덕사는 사람들에게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산보다도 절 이름이 먼저 생각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20번지에 위치한 수덕사는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 나들목에서, 덕산 예산 쪽으로 21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6번 도로로 나가면 약 7km의 거리에 있다.

이 절은 서기 599년 지명스님이 창건하였다는데 현존하는 백제의 유일한 사찰이다. 수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소속으로 충남일대 60여 개의 사찰을 거느리고 있는 절이다. 대웅전은 1308년 고려 충렬왕 때 건축되었고, 백제의 건축곡선을 보여주는 유일한 건물이며 국보 제 49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대웅전 삼존불과 수덕사 괘불, 그리고 거문고와 수덕사 범종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수덕사는 일주문을 거쳐 금강문, 사천왕문을 차례로 지나면 황하정루에 다다른다. 경내는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경내를 지나면서 불자는 불공을 드리고 여타 사람들은 관람을 하면서 배우기도 한다.

수덕사는 23개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백련당을 지나면서는 저절로 뒷산 중턱에 펼쳐지는 가람을 올려다보게 된다. 정혜사 관음전까지는 가파르기도 하지만 자갈길이고, 길 폭도 좁아 주의를 하여야 하는 길이다. 백련당이 나오면 그 뒤로 오솔길이 보인다.

이 길은 뒤에 있는 덕숭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의 팻말은 정상이라는 글자가 보일 뿐이다. 예비지식이 없이 찾아 온 탓에 얼마나 높은 산이지, 얼마나 험한 산이지 알 수가 없다. 쓰여 진 팻말에는 그냥 정상이라는 글자만 보이므로 얼마 가지 않으면 바로 산꼭대기에 닿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올라 가본다.

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수덕사를 관람하다가 발길 닿는 데로, 경내 주위를 가벼운 산책이나 해 보자고 나선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다가 정상이라는 팻말을 보고는 아! 이게 바로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구나 하면서 접어들기 쉬운 길이다.

그리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다보면 어느 정도 갈 때 까지는 나무와 나무 사이로 가벼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이 덕숭산은 등산로가 단조로워 초행자라도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안 해도 좋을 듯하였다. 아내는 이 덕숭산 등산을 마다 않고 앞서서 잘도 올라간다.

나는 처음부터 이 산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 절에 올 때부터 비구니 승들이 수양하는 절로 유명한 수덕사이니 경내를 관람하고 바로 내려갈 심산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승보다도 남승이 더 많은 절이 되어버렸다.

한편 아내는 나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처음부터 목적이 산행을 하러 온 사람같이 막무가내다. 그렇다고 아내가 산행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에 좋다고 하니까 그냥 자신을 위해서 하는 고행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다 보니 아내나 나나 산행에서는 항상 남보다 뒤쳐지고, 남들보다 두세 배는 많이 쉬어야 하는 정도이다.

산을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사람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그런데 내려오는 사람들의 행세로 보아하니, 이들이 산의 정상까지 갔다가 오는 사람들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마도 우리처럼 정상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산을 가볍게 보고 시작했다가 중간에서 되돌아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로 내가 보기에도 산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으니 정상에 대한 기대나 희망이 안 보이는 그런 산길이었다. 그런데 이 산은 다른 산에 비하여 바위가 훨씬 적은, 그야말로 흙길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정도의 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되돌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조금만 더 갔다가 돌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여도 도대체가 반환점으로 삼을만한 특색있는 부분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평생 이 산을 찾을 수 있겠는지를 생각하니,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아내는 어서 가자고 계속하여 재촉한다. 이쯤 되면 나도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산의 정상만을 향하여 걷고 또 걸을 뿐이다.

하기 싫은 산행을 하니 기분이 좋을 것도 없다. 그냥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걷기만 한다. 오후에 그것도 다른 데를 한군데 들렀다가 온 것이기 때문에 시간상으로는 이미 많이 늦은 산행이었다. 산에 깊이 빠져들수록 돌아가는 것이 걱정이 되었다.

많은 갈등 속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덕숭산의 정상이라고 해보아도 다른 산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무슨 안테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공으로 쌓은 돌탑이나 기념물도 없다. 커다란 바위가 있어 무엇을 상징하는 것도 없다. 산꼭대기에는 달랑 이정표 하나가 있을 뿐이다.

정상에 올라도 누구와 만나 이야기를 하거나, 수덕사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도 할 수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 가면 어디에 도착하는지를 물어 볼 사람도 없다.  그냥 짐작하건데 올라 올 때에는 절에서 보아 왼쪽으로 올라왔으니 내려 갈 때는 오른 쪽으로 내려가면 될 것도 같았다.

따지고 보니 이 산은 절을 관람하는 사람의 수에 비해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인원만이 등산을 하는 것 같았다. 산의 정상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누구하나 같이 내려 갈만한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지금 내가 내려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그냥 짐작으로 내려갈 뿐이다.

힘들다는 생각으로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 올려다보는 덕숭산은 평화로운 산이었다. 1973년 가야산과 묶어 덕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덕숭산은 그리 높지 않은 495m 로 그냥 적당한 등산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산이다.  

일정을 마치고 다시 수덕사 입구로 돌아와 보니, 들어갈 때는 몰랐었는데 공적 사적비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글귀를 보니 事積積라 씌어져 있다. 얼른 생각하기에 사적비라는 글자는 역사와 관련된 기념물임에 틀림없으니 史積碑가 맞을 법도 하였다. 이것이 틀렸다고 관리인에게 말해 줄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낮에 보았던 기념비석에 쓰여 진 글자가 틀렸다는 확신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자전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적비는 事史碑가 맞는 것이 아닌가.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사용은 비석에 새겨진 글자가 맞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전에 보았던 대천해수욕장에 있는 史積碑라는 글자가 틀렸다는 것이 확인 된 셈이다. 하지만 이것도 史積이라는 의미로 보면 맞는 글자가 될 것이다. 따라서 어느 글자가 맞고 틀리는 것인지는 쉽게 따질 일이 아닌 것 같다.

하긴 글자하나가 틀렸다고 해서 무슨 변고가 일어날 그런 내용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오늘 산행을 마치고 나오면서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듯이, 수덕사 관리인에게 글자를 바로 잡으라고 말했었더라면 오히려 혼란만 초래했을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신중을 하고, 혹시 무슨 다른 이유에서 일부러 그랬는지를 확인한 다음 잘잘못을 따져야 할 것을 배운 하루였다. 2003년 10월 19일. 오늘도 수덕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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