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려줄 유산 - 독서경영 한 호철
내가 강나루 밀밭 길을 걸어 갈 때면 평화로운 전원파 시인이 되고 싶었었다. 어쩌다 산에 올라 진달래 꽃잎을 밟을 때면 애틋한 사랑을 얘기하는 시인이 되고도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면서 시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멋있는 시를 한편 쓰고 싶었던 적은 있었다.
넓은 들판 하얀 소금밭둑으로 소를 몰고 갈 때 목가적인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밤늦게 술에 취해 돌아와 보니 이불 밑에 발이 네 개가 있었을 때는 세상을 초월하는 심미적 소설가가 되고도 싶었다. 그러나 현실을 되찾았을 때에는 단 한편이라도 평화로운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해 있었다.
주변에서는 푸르름이 짙어가고 가슴속 젊은 피가 용솟음칠 때면 마음을 열어 주는 수필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낙엽에서 커피를 느끼며 시간도 더디게 가는 것을 보았을 때는 세월을 거슬러 가는 그런 영혼의 수필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현실로 돌아와서는 나의 일상을 소박하게나마 글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한두 번 가져 보았던 지난날의 꿈 중 하나였었다. 다시 말하면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던 시절에는 누구나 생각해 볼만한 일로 통과의례 정도로 받아 들여졌었다.
우리 인생을 매일매일 반복되는 다람쥐 쳇바퀴라고 본다면, 그것은 하나의 기계가 계속하여 돌아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기계를 돌려주는 가장 중요한 핵심인자는 누가 뭐래도 동력이겠지만, 거기에는 마찰을 감소시키는 윤활유가 있어야 함도 당연하다.
그러나 어디 비교할 게 없어 인생을 다람쥐 쳇바퀴와 비교하겠는가 하고 좀 더 세련된 것을 찾아본다면 액정화면의 양방향 디지털 티브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비록 회전바퀴와는 다르지만 핵심인자인 기판의 사이사이를 흘러가는 것이니 보이는 선과 보이지 않는 선으로 묶여있기 마련이다.
나는 여기에서의 윤활유나 선을 사람의 인성이나 감성에 비유하고 싶다. 또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좁은 의미에서는 예의 문학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일찍부터 회사에서는 독서경영이라 하여 사원들에게 책 읽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어떤 때는 책을 강제로라도 읽도록 하고 그 책에 대한 독후감을 써 내도록 하고 있다. 그런 독서경영이 우리생활 속에 들어 온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독서경영에 따른 일반 독서의 경우 독후감을 제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책 읽을 시간이 없는데 그런 독후감은 내어서 무엇을 하느냐는 것이다. 정말 바쁜데 어찌하다 보니 시간이 여의치 못한 경우라도 성의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독후감을 복사해서 제출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경우는 비록 남의 독후감이지만 한 번 읽어 보는 시간이라도 가질 수 있어 내용은 어느 정도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조차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면서도 특정한 경우에는 그 바쁜 가운데에서도 독후감을 작성하여 제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독후감은 독서경영이 가지는 여러 목적 중 어느 한 부분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독서경영은 회사의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만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철학이나 문학과 같은 것만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맥 통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쓴 책이나 글을 재미있게 볼 때도 있다. 반대로 어떤 때는 이런 것도 글이라고 썼느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이 정도의 글은 나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으로 글을 써서는 남을 감동시킬 수 없으며,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히려 내 자신의 초라함만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 긴 시간이 지나고 마음의 평정심을 찾았을 때에 비로소 글이라는 것이 자신을 다스린 뒤에 써야 되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독서지도사가 가져야 할 여러 덕목들을 깨닫게도 되었다. 그냥 상업적인 목적의 글이나 책이야 사정이 다르겠지만, 문학이라는 학문이 순수한 마음과 통할 때에만 열리는 문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마치 연애편지처럼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찢어내기를 반복하는 고뇌의 산물이라는 것도 입증 된 셈이다.
그러나 글을 너무나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다스리고 난 뒤에도 나 자신에게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달라진 것을 찾는다면 남의 글을 읽을 때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추가하여 남의 글을 평할 때는 두렵다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전에 내가 가졌던 부질없던 자신감이 이제는 내가 쓴 글로 인해 되돌려 받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자신감과 두려움은 자기 마음 다스리기 차이인 것 같다.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독서경영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요즘 현대인들은 굳이 종이로 된 책이 아니더라도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며 지식을 취할 수 있는 매체가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책은 가장 확실한 전달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책을 요약하고 느낌을 적어 보는 것은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서 아주 귀중한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자녀들에게는 그러한 행동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이것보다 귀한 유산도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자손에게 물려 줄 유산 가운데 좋은 유산을 하나 더하여 남겨 둔다면 우리의 독서경영을 남겨두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수필가/산문집: 쉬운 일은 나도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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