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아서 좋은 것/잡다한 무엇들

서 정주 시 세계의 세 단계 분류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3. 10:57
 

       서정주의 시세계의 세 단계 분류   / 한 호철


     차   례


 1.  서론

 2.  서정주의 시 세계

      2-1) 자기고발

      2-2) 전통정신의 서정화

      2-3) 체험을 통한 인간 삶의 신화화

 3.  결론





1.서론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서 시의 대표작으로 국화 옆에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그 만큼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화 옆에서의 작자 미당 서정주는 인생파 또는 생명파 시인으로, 서정적 시인으로, 체험적 산문시인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시인부락이라는 시 전문동인지를 창간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폭 넓고 다양한 시 문학을 발표하였다.

서정주는 1915년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에서 태어나,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면서부터 2000년 사망시까지 약 64년에 걸쳐 1000 여 편에 가까운 작품을 창작하였다. 시인은 인근지역 거부의 고정적인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먹고사는 것은 고생이 없었지만, 일제의 강점과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된 조국, 독재 정권의 횡포와 민중들의 반독재 투쟁 등 민족사의 아픈 현실을 모두 겪으면서 이를 체험하고 언어적 예술로 형상화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한국 현대시사의 대표적 원로로 자리 잡기도 하였으나, 때로는 친일이나 친미, 권력에 아부하고 찬양 동조하는 세력으로 치부되어 시의 가치적 판단자체를 거부당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시들에 비하여 서정주의 시는 흔들리지 않는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양적으로 보나, 언어적 묘사로 보나, 문학적 질의 차원에서 보나 한국 근대문학사를 시사하는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미당의 인생 행적은 차치하고라도 그의 시문학 자체는 중고등 학교에서의 문학제재로 채택되어 활용되고 있을 정도로 훌륭한 점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문학사와 문학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성과로 취급되고 있는 서정주의 시세계를 살펴봄으로서, 그의 시가 가지는 의미를 더욱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2. 서정주의 시 세계

서정주는 한 때 교직에 있으면서 많은 시작을 하고, 제자문인들을 배출하였다. 초기 화사집에서부터 15번째 시집인 80 소년 떠돌이의 시에 이르기까지 정열적인 시세계를 일궈내어 한국대표시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시인 중의 시인, 시의 학교, 시의 정부, 한국이라는 부족언어의 주술사, 시선으로 불릴 만큼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을 받으면서, 독일의 괴테나 헤르만 헤세에 견줄 만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때는 친일과 현실권력에 참여하여 아부에 굴종했다는 점은 지탄을 받아 마땅한 것도 사실이지만, 문학과 그의 인생은 별도로 놓고 해석할 부분도 있지 않을까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해본다.

어떤 사람들은 시집의 주된 내용에 따라 인간의 원죄를 노래한 것과, 동양적인 사상으로 접근, 불교사상에 관심을 가진 것, 불교에 더욱 심취된 시기, 토속적이고 주술적인 원시적 샤머니즘을 노래한 부분 등 5기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세분화된 분류는 각기 가지는 특색을 명확히 구분 짓기가 어렵고 이해하기 또한 어려우므로, 여기서는 그들 중 연관성이 있는 부분을 묶어 시의 노래 성격상 3단계로 분류해 보고자 한다.


2-1) : 자기 고발

서정주의 시는 해방 전까지의 초기 작품으로는 보들레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을 보이고 있다. 정부수립 이후 문협의 정통파로 불리는 김동리, 서정주, 조연현, 유치환 등이 주축이 된 생명파는 어떤 목적을 가지기 이전에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며, 인간적인 삶의 근원인 물음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모두 보여주므로서 인간 본연성의 회복을 지향하는 휴머니즘을 그 근본으로 삼고 있다고 하겠다.

1938년의 첫 시집 화사집이 초기 시세계를 대표하고 있으며, 자화상, 화사, 문둥이, 대낮, 맥하, 바다 등에서 토속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원죄의식과 원초적인 생명력을 읊으며 자의식과 관능적 욕구에 몸부림치는 젊음과 원죄적 세계관을 치열하게 드러냈다.

그 중 화사는 뱀의 유혹에 빠져서 고달픈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이, 금단의 사과에 나오는 인간본능의 욕구가 얼마나 강렬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뱀은 자신의 욕구를 분출시키는 도구이며 수단인 것이다. 20살 순네를 보면서 뱀을 떠 올리고, 그 뱀은 돌팔매를 하면서라도 멀리하고 싶지만 관능적인 매력에 오히려 실에 꿰어 목에 걸고픈 유혹에 빠지며, 인간 욕구를 떨쳐버리거나 그대로 실행하기도 어렵다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원시적 언어를 사용하여 이성적이며 감성적이고 우아한 것에 맞서는, 인간 내면의 육체적 욕망을 찬양하는 악마적 아름다움을 주제로 하고 있다.

문둥이에서는 자신의 문둥병을 낫고 육신이 살기 위하여 죄 없는 어린애를 먹기는 하였지만, 이런 자신이 서러워 밤새 울었다는 것은 살고자하는 생명 애착의 욕망이 강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것 역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자화상의 내용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를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8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을 읽어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어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웅 언친 시의 이슬에는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자화상은 1937년 자신의 생애에 관한 전기적 사실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자기가 체험한 것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였고, 자신의 가족사를 포함하여 내면과 외면을 모두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버지의 직업, 배고픈 어머니, 바다에서 죽은 외할아버지, 그를 기다리다 죽은 외할머니 등 투명하게 보여주는 모습은 자신의 못나고 부끄러운 원초적 업보나, 천형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20대 청년의 뜨거운 가슴과 심장은 뭔가 폭발할 것만 같으며, 화사집에 실린 다른 시에서는 이런 것들이 원초적인 표현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언어적인 표현으로는 별반 다를 게 없으나, 전체적인 분위기적인 면에서 그것들을 잘 삭이고 인생의 근본을 음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뉘우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표현과 달리 내면적으로는 완전한 해방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아직도 병든 숫개라는 표현방식 등의 비유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을 발가벗긴 원초적인 상태에서 출발하고, 시적 형상화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것이 체험이며, 이 체험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미당의 시이기도 하다. 이 내용은 자신의 출생을 알리면서, 어려웠던 환경을 얘기하고, 시대적 변환기에서 숱한 역경의 바람을 맞으면서 자라났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친일이나 권력지향적임을 발견하였지만 뉘우치거나 후회하지 않으며, 결국은 병든 숫개만양 헐덕이며 한국민의 대표시인이라는 위치를 위태롭게 지켜오는 자신의 인생을 미리 예견하고 지은 시와 같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는 점이 있다.


2-2) : 전통 정신의 서정화

중기 작품으로는 인간의 운명적 업고에 대한 인식이 동양사상의 영향으로 영겁의 생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됨과 동시에, 초기 시의 열정이 한 차원 높게 승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시집에서 제목인 귀촉도가 풍기는 이미지부터 시작하여, 신라초, 동천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동양적인 귀의와 분열이 아닌 화해를 시적 주제로 하고 있다. 국화 옆에서와 밀어의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토착적 정서와 고전적 격조로의 지향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작 활동은 일제 말 친일이라는 치욕적인 상처를 가진 서정주가 해방 직후 이를 떨쳐버리기 위한 수단으로 순수문학의 서정적 시세계를 펼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불교적 인연설과 윤회설을 서정적인 언어나 시적으로 이미지화 하므로써 순수시의 세계를 절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화 옆에서와 무등을 보며에서는 자기반성과 생활인의 철학을 바탕으로, 선운사 동구나 동천에서는 인간적으로 성숙한 작자의 풍모를 보여주며 종교적 구원을 얻어내고 있다. 이 시들로 인하여 시적 언어와, 비유적 이미지의 효과적인 표현은 순수시의 실체를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꼽히고, 작가역시 서정적 순수 문학에 있어서의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국화 옆에서는 각 연마다 사계절을 연계시키고 있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혼자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없으며, 우주 속에서 서로의 인연으로 형성되어 나타난 결과라는 의미로 불교의 인연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젊은 날에 방황하다가도 결국 돌아 온 누님은 자신을 의미하기도 하고, 인생은 항상 후회하며 자기성찰을 통해 성숙한다는 의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1950년대 중반이후 풀리는 한강 가에서, 상리과원, 학, 기도 등에서 보이는 원숙함과 자기 통찰과 달관은 시인의 원죄나 젊음의 방황을 극복하고 낙천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불교와 토착적인 전통의 융화를 바탕으로 언어의 조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시적 감각으로 그 깊이와 폭을 더하게 되었다.


다음은 동천의 한 예를 들어보자.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섭을

즈문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옴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1968년 시집 동천에 나오는 시 동천의 내용이다.

한 폭의 동양적 수묵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다. 희미하여 뚜렷하지 않으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신비에 싸인 세계를 표현하며, 물아일체의 시감으로 동양적인 시세계 정서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제된 언어와 고도의 상징적인 수법을 구사하고 있으며, 수사적이거나 설명적이지 않으면서 시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시어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고은 눈섭은 일반적으로 슬픈 운명을 지닌 미모의 여인을 연상시키고 있다. 이 여인은 눈썹에서 비유되는 형상이 초승달과 같고, 완전무결한 보름달을 향하여 나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완벽한 여인, 완벽한 사람, 영원한 세계를 원하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어둠이나 겨울에 비유되는 세상살이에서도 구도적 자세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눈섭이 눈썹으로, 초승달로, 다시 보름달로, 그리고 인간의 완전함으로, 이루지 못하는 체념과 노력하는 구도자의 자세로 이어지는 비유는, 평범한 삶의 모습에서 진리를 찾아내고 우리의 전통과 정신사를 보여주고 있다.


2-3) :체험을 통한 인간 삶의 신화화

1970년대에 이르러 시인은 질마재로 돌아가 유년시절의 체험을 시 세계로 개척하고 있다. 질마재가 고향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교육을 위하여 줄포를 거쳐 서울까지 이르는 동안 잊혀져 있던 고향의 오랜 전통과 풍속을 그리게 된다.

어쩌면 일부러 잊고 싶었던 쓰라린 자신의 과거나 고향의 전설들이, 자신에게 있어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업보처럼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인연설에 기인한 것이며, 이러한 작품은 샤머니즘적인 색채가 묻어있어 오늘날의 정해지고 짜여진 삶과는 다른 원초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시기는 인간 생명의 감동과 의식의 한계를 벗어 난 원시적인 샤머니즘을 설화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는 문학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따라서 1975년 질마재 신화에 나오는 신부, 해일, 소망, 상가수의 노래 등에서 시인은 전형적인 촌락의 일반 민초들의 사회일상에서 우리의 전통을 발굴하고, 한국인이 품고 있는 한을 당시의 언어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신화적 단계로 끌어 올리고 있다. 순수한 고향 사람들의 삶이 시적으로 형상화되고, 이런 시적 형상화를 통하여 인간적인 사람들의 진면목을 산문적인 시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평범하면서 살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촌로가 그의 시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이를 승화시켜 하나의 예술 장르화 시키는 경지로까지 이끌어 올리고 있다.

팔할이 바람이라는 시집의 종천순일파에서는 자신의 친일은 당시 대세였으며,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식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으로 인하여 권력에 아부하고, 일신을 위하여서는 모든 것을 버리는 철저한 이기주의의 시인이라는 평으로 그의 시마저 혹독한 비판을 듣게 된다.

여기서 보듯이 비록 자의적 친일이라는 선을 넘고 있기는 하지만, 순간순간 주어진 환경에 잘 순응하면서 작가의 삶이 가장 유리한 판단으로 만족을 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하늘이 주는 명령을 거역하지 않고 따르는 논리라는 점과, 질펀한 촌로들의 삶이 환경에 순응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상가수의 노래 모습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도 있다.

노후에도 불구하고 세계여행을 하면서 얻은 영감으로 1997년 80 소년 떠돌이의 시를 발표하면서, 세계 각국의 지리와 민화 등을 포함하여 우리의 신화체계 속에 용해시켜 넣는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상가수의 노래를 예로 들어보자.

[질마재 상가수의 노랫소리는 답답하면 열두 발 상무를 젓고, 따분하면 어깨에 고깔을 쓴 중을 세우고, 또 상여면 상여머리에 또약볕 같은 놋쇠 요령 흔들며, 이승과 저승에 뻗쳤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안 하는 어느 아침에 보니까 상가수는 뒤깐 똥오줌 항아리에서 똥오줌 거름을 옮겨 내고 있었는데요. 왜, 거, 있지 않아, 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잘 비치는 우리네 똥오줌 항아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붕도 앗세 작파해 버린 우리네 그 참 재미있는 똥오줌 항아리, 거길 명경으로 해 망건 밑에 염발질을 열심히 하고 서 있었읍니다. 망건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털들을 망건 속으로 보기좋게 밀어 넣어 올리는 쇠염발질을 점잔하게 하고 있어요.

명경도 이만큼은 특별나고 기름져서 이승 저승에 두루 무성하던 그 노랫소리는 나온 것 아닐까요?]


1975년 시집 질마재 신화에 실린 시 상가수의 노래이다. 여기에 나오는 상가수는 평범한 농사꾼이며 이승과 저승에서의 삶에 대한 노래를 유난히 구성지게 불러대던 심미파의 한 사람으로, 훌륭한 예술가의 삶이 고달픈 농사꾼의 일상생활과 분리되지 않은 일체임을 알려주고 있다. 남을 의식하는 거추장스러운 장식이나 체면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며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어 현실감을 주고 진솔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해 오던 동양적 불교사상과 신라정신이, 유년기 고향사람들과 풍속을 통하여 산문형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창작 기법은 내 마음의 편력, 해일, 신부, 단골 무당네 머슴아이 등에서도 나타나듯이 자전적 체험을 예로 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건국신화나 유럽의 신화 등과도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그런 류의 작품이라고 하겠다.


3. 결론

일반적으로 서정주의 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되며, 우리문학사의 대가를 이루었음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시적 대상을 일상생활의 체험 속에서 찾고 있으며, 적절한 언어와 이미지로 비유하여 형상화한다. 혹자는 이런 시 세계를 현실도피적인 방법으로, 또는 시를 쓰는 편의주의적 방법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시를 문학적으로 평가한다면 아마도 그런 비판은 많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 간 여러 문학가들과 학자들이 서정주의 시를 평가하면서, 시 문학 외에 인생의 행적에 관한 평가를 같이 하여 그의 위상이 많이 재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말을 가지고 우리 시로 표현한 것 중, 이 만큼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고 우리 한글을 알려 준 것도 없다고 할 것이다. 혹자가 서정주의 시는 책임 없이 아름답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시 외적인 면을 배제한 시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미당의 시는 그 자체에 문학성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서정주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단순하고 평이한 언어를 가지고 독특한 표현 방법으로 창출해 낸 서정적 언어 마술사인 것이다. 당시의 특정 인물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겪었던 사실로 인하여 시의 가치평가마저 묶어서 비난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아름다운 우리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시는 시가 가지는 사상성과 예술성은 별개로 보아 해석함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끝.


참고문헌:

문예연구 1998년 여름.

창작과 비평 2001년 겨울.

한국시 한국시인 1998년 이향아. 학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