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우리의 아파트 문화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3. 15:43
 

우리의 아파트 문화 / 한 호철


  한국을 예로부터 백의민족이라고 했고, 순수하고 맑다고 했으며, 예의바르고 겸양적이라고 했다. 한국민의 습성은 은근과 끈기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그것은 보수적이고 인내적이라는 표현과도 통할 것 같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를 보면 그와는 반대로 급진적이고, 과격하고, 극단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운전대를 잡으면 뛰쳐나가고, 신호가 바뀜과 동시에 움직인다. 이것은 은근과 끈기가 아니라, 급진과 변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변화되었을까. 사실은 변한 것이 아니나 전에도 그런 성격이었고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만 군주정치에 의하여 억눌리고 일제 강점기에는 아프다는 소리도 내지 못했을 뿐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부터 그 분출구를 찾아 제대로 표현하고자 했으나, 신탁통치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또다시 군사정치에 둘려 싸여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이후 먹고 살만 해지니까 비로소 모든 표현이 자유스러워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우리 역사 기록 중 2000년 동안에 무료 3,000번 이상의 외세침략을 받은 데서 비롯된 결과라고 설명된다. 그때마다 다치고 깨어지더라고, 뿌리를 남기고 자생한 저력의 민족으로서, 그거야말로 은근과 끈기로 대변되며, 어떠한 고초를 당하더라도 재기하고,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극복하고 번창하는, 고난 극복의 민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남에게 지면 안되고, 전쟁에서 지더라도 근본은 갖추고, 도망을 가서라도 뿌리는 남겨야 된다는 민족성으로, 내가 못하면 자식에게라도 반드시 이룰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고싶어하는 민족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발언은, 모래알을 모아서 차량도 달릴 수 있는 해변가 백사장으로 만들고 싶은 의도였을 것이다. 이 백사장도 파도와 같은 환경변화를 맞으면 그만 힘없이 부서지는 모래성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지기 싫어하는 우리 민족성은 격동기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강의 기적이 그렇고 금모으기가 그렇고, 전 국민의 특정물품 평준화보급에 세계 신기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초가집에서 슬레이트로, 다시 양옥 스라브로 바뀌더니, 즉시 평준화의 표본인 아파트가 보급되고 그 속에서 똑같은 냉장고, 똑같은 차량을 보급시킨 민족이다. 아니면 나는 옆집보다 조금 더 큰 텔레비전을 보아야 한다는 경쟁 승리주의 민족이다. 아파트의 앞 집 아이가 학원을 다니면 우리 자식은 과외를 해야되고, 고액 과외를 시킬 수만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비록 과시이고 부모는 허리가 휘더라도 앞집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경제의 공업화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이 공업화가 우리의 경제 발전을 주도했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빨리빨리, 그리고 극단적인 성격의 문화를 나쁘게만 말하지 말고 그것을 이해하며, 이제는 경제 대국으로서 지켜야할 품위를 지키는데 노력하면 될 것이다. 하다보면 다시 경제대국에 걸맞는 문화의 국가로 변하기도 할 것이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 어령씨는 이것을 우리의 아파트 문화라고 총칭했다. 우리의 주택 보급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아파트이며, 그 좁은 속에서도 상호 경쟁의 논리를 펼쳤던 우리 민족이다. 세계 어디에도 우리처럼 많은 아파트를 급속히 확산시킨 나라도 없다. 그들은 아파트를 주택으로 생각했지만, 우리는 아파트가 그냥 아파트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주택은 그냥 또 다른 단독 주택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아파트 문화도 우리가 창조해 낸 문화다. 이것은 개도국에서 거쳐야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우리가 시범을 보여준 것이다. 모든 것을 나쁜 점만 논하지 말고 우리의 창조적인 정신도 높이 평가해보자. 그래도 우리는 세계의 불가사의 민족으로서 잘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2002.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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