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줄 수 있는 데까지 / 한 호철
로마에 하드리아누스라는 황제가 있었다.
이 황제가 유대의 갈릴리 지방을 지나다가, 어느 밭에서 무화과나무를 심으려고 구덩이를 파고 있는 노파를 보았다. 처음에는 그 노파가 성실하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생각 해보니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젊었을 때 부지런히 일을 해서 늘그막에 쉴 수가 있어야 하는데, 이 노인은 다 늙어 죽기 직전까지도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게으름뱅이라는 것이, 자신의 백성으로서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노파를 부르고 젊은 날의 게으름을 나무랐다.
그러나 그 노인은 젊었을 때에도 지금처럼 열심히 일해왔으며, 앞으로 죽는 날까지도 열심히 일 할거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황제는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화를 낸 것이 미안하여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심는 나무가 커서 열매를 맺으려면 아직도 긴 세월이 남았는데, 노인은 그 과실을 따먹을 수 없을 테니 그만두고 편히 쉬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 노인은 지금 나이가 90인데, 자신이 심은 나무에서 자신은 과실을 따먹을 수 없더라도 계속해서 심을 것이고, 그 과실은 자신의 후손들이 따먹을 것이니 조금도 염려 할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어린 시절 마당의 큰 나무에서 과실을 따먹었던 것은, 자신의 선조들이 후손을 위하여 힘써 일한 대가이니 자신도 그것을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황제도 그 뜻을 가상히 여기고 떠나면서 농담처럼 한마디하였다. 혹시 그 나무에서 과실을 수확하거든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말하였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해 그 노인이 잘 익은 무화과를 들고 황실을 찾아갔다. 물론 황제는 전혀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은 일이라서 기억에 두지 않았었으나, 뜻밖의 선물을 받고 보니 그 노인이 현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화과를 담았던 그릇에 황금을 듬뿍 담아 노인의 근면성에 상을 주었다.
이 내용은 탈무드에 적혀 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말이 생각나게 한다. 나는 비록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더라도 동료나 후손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꾹 참고 실행 해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모든 일에 절망적인 푸념만 할 것이 아니라 작은 희망이라도 보이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2002. 0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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