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 한 호철
어제 어느 중소도시에서 또 큰 화재사고가 났다. 이곳은 1년 6개월 전에도 큰 화재사고가 났었던 바로 그 주변이다. 좁은 쪽방에 쇠창살이 얽혀있고, 값싼 난방 보온재로 싸여진 이곳이, 화재에 의하여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 윤락녀들이거나 그와 관계된 사람들이라 하는데 있다. 쉽게 대피할 수 있는 출입구를 확보하고 안전시설을 갖추어야하는 부분이 소홀히 된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화재로 인한 직접적인 열 보다는, 마감재가 연소시 발생하는 유독가스로 인한 질식사의 원인이 크다고 한다. 거기다가 피해를 당한 윤락녀들의 직장이 1층이고, 그들을 관리하는 종업원들의 숙소는 2층인데, 이번 화재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는 1층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2층은 직접적인 피해가 전혀 없고 간접적인 피해가 발생했는데, 화재 진압시 유리창이 깨어지거나 하는 등의 피해만 발생했다고 하니, 무언지 확실한 차이가 나는 것을 느끼게 한다. 아직까지도 인신매매 행위에 의하여 직업을 결정짓고, 그들이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조건상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고, 사람다운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본다. 설사 그러한 권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같은 인간으로서 그만한 배려는 필요할거라고 생각된다. 모든 일은 만약을 생각하여 역지사지로 판단하여야 한다. 어쩌다 한 번쯤 처지가 비슷한 상호 경쟁상태에 있을 때에는, 그것도 일시적으로는 잘못 될 수 있으나 즉시 바로잡아서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처지가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이 세상에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생물체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미물도 아닌 인간을 동물 취급하는 등의 행태는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비록 사고가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빈부의 격차는 있을 수 있으나, 그의 주체인 사람만은 변함 없이 귀중한 것이고, 그에 걸맞는 처우를 해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구태여 내세의 윤회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차마 사람으로써 못할 짓을 한다면 반드시 그 보응이 후세에 따른다는 것도 명심하자. 2002. 01. 30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의바른 국민 (0) | 2006.06.03 |
---|---|
해줄 수 있는 데까지 (0) | 2006.06.03 |
우리의 아파트 문화 (0) | 2006.06.03 |
부흥기의 성장과정 (0) | 2006.06.03 |
자동차 강국의 운전자 (0) | 2006.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