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기준 / 한 호철
양복을 구입하기 위하여 시내에 나가 보면,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에서도 여기 저기에서 할인매장이라고 크게 써 붙인 곳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구입하려고 들어 가보면, 할인매장이면서 특별할인 기간이라고 해도 30만원 정도는 주어야 제대로 된 양복 한 벌을 구입할 수 있다. 물론 그 이하의 가격에서도 구입할 수는 있으나 그런 경우는 대체로 약 10년 전쯤 제작한 것처럼 보이며, 일부러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림질도 되어 있지 않아 꾀죄죄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실제로 구입하는 옷은 30만원 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도쿄에서는 대체적으로 15,000엔에 살 수 있다고 한다. 우리 화폐 가치로 환산해도 대략 15만원이고 비싸도 20만원이므로, 우리나라의 물가가 일본에 비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일본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서 번 돈으로, 우리나라에서 소비한다면 물가가 훨씬 저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의 월급쟁이는 점심 값으로 돈까스를 7,000원에 사먹지만 일본은 4,500원 선이다. 점심으로 흔히 선택하는 각 종 탕류도 5,000원 대이고 보면, 200만원 봉급 생활자는 혼자의 점심값만으로 6%를 지출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물가가 급속히 상승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매년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계속 오르고 있고, 일본은 고점의 거품이 빠지고 내려가는 실정이기에 더욱 비교가 되는 것이다. 일본은 도쿄의 땅값이 거품을 물고 떨어지자, 그 거품 속에서 대형 고급 음식점을 운영하던 형태가 차츰 중저가 방식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한창 고점을 향해 치달으니 강남에서 20평형 아파트 가격이 2억 원에서 많게는 4억 원에 이른다. 시장 시세로 월세를 환산하면 200만원에서 400만원이 되는 금액이다. 그러니 매월 벌어서 집세를 주고 나면 빈손이 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일본의 물가가 하락하는 것은 중저가 판매점이 생기고, 특히 초저가 할인매점이 성업한데 그 이유도 있다. 그러다 보니 공산품이 아닌 경우에도 저절로 가격하락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한 예로 1990년에 일본식 쇠고기 덮밥은 500엔 하다가, 10년 뒤에는 같은 집에서 280엔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물가가 계속 올라가고 살기 힘들어 지는 것만은 아니다. 단순 비교 시에도 우리가 훨씬 싸게 책정되어 있는 수도 요금이나 지하철 요금, 고속도로 통행료, 열차 요금 등도 있다. 그리고 우리도 거품에 대한 인식을 하면서 실속파 구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 그래서 중저가 상품 매장이 호황을 이루고, 초저가 매장도 심심찮게 들어서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정부가 나서서 물가를 잡아주고 사회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려면, 상대적으로 어느 부문이 불편해진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 한국의 물가상승과 각종 규제로 인하여 경쟁력이 약해지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다시 동남아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밖에서는 우리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우리 국민 모두는 거품 제거에 동참하고, 실제로 알뜰하고 실속 있는 소비 생활을 하므로 써 시장물가를 안정시켜야 하겠다. 어느 제품의 성능이 좋고, 어떤 기능이 더 있어서 편리하고, 첨단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 편리하고 하는 것들이 모두 구매의 판단 요소가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기서 선택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초등학생의 핸드폰은 사실상 인터넷 기능이 없어도 되며, 전화도 없이 가전 제품이라고는 냉장고밖에 없는 산골의 자연주의자에게 컴퓨터는 필요 없다. 산소에 성묘하러 가면서 비록 낡았지만 경운기나 4륜 구동차는 필요해도, 값비싼 초고속 경주용 차는 비포장 언덕길을 전혀 올라갈 수 없어 쓸모 없게 된다.
이처럼 용도에 맞게, 필요한 기능만을 넣어 만든 저렴한 제품으로 우리 생활의 거품을 빼 낼 수 있다면, 우리도 고물가를 탈피할 수 있다. 우선 만드는 사람도 소비자의 다양한 부류를 인정하고, 각기 알맞은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폭을 넓혀주면 좋겠다. 또 소비자 입장에서도 필요 없는 기능과 과잉품질을 자랑삼지 말고, 실속 있는 소비생활로 건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각오도 필요하겠다.
개인이 부유해지고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근면하고 성실하며 건전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다. 국가의 흥망도 우리의 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진리를 항상 마음에 되새기며 살아가야 한다. 2002. 09.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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