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잘 한 것도 있다 / 한 호철
운명공동체인 한 국가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들 수준에 의해 결정되며, 이익공동체인 기업의 수준은 그 회사 사장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사장이 혼자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사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사장이기 때문에, 그런 조건을 부여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사장에 의해 결정 난다는 의미이다.
2002축구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 축구 명가들과 비교하여 턱없이 부족한 축구인구를 실감할 수 있었다. 유소년 축구팀과 학생 축구팀 수, 그리고 축구 전용구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잔디구장수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차이를 느꼈다. 그 후 뒤늦게나마 반성하자고 하여 유소년 축구 꿈나무 육성기금을 모금하기도 하고, 전국적으로 축구를 위한 시설들의 실태 파악에 나서기도 했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은 여기 저기 여러 분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인구비례 도서관 수 및 1인당 도서 수, 열람석 수 등의 독서분야도 그렇다. 각 소규모 지방 자치단체는 물론이고,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학의 교육인프라 수준이 세계 대학들과의 비교에서 100위안에 들지 못한다. 과학 연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의 연산속도 기준으로 비교하면, 서울대학의 경우 세계 대학들 중 89위이며, 일본 도쿄대학의 10분의 1, 미국 피츠버그대학의 30분의 1수준에 머무른다. 모든 것의 결과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자동차가 규정속도를 지키지 않고 과속을 하게되면 사고를 일으키기 쉽고, 사고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중간 중간에 과속 단속을 하는 경찰관에게 적발되기 십상이다. 사고나 적발은 과속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는 과속이라는 이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교육환경이 꼭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여러 가지 면에서 정규 공교육 외의 사교육적인면 즉, 모든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설학원이나 개인교습소 등의 분야는 세계 최고 수준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사설 교육만 가지고 국민 전체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단기 성과 지향주의의 과정임과 동시에 그 목표를 이루는 결과 자체일 수는 있다. 우리나라는 이 모든 불합리한 여건을 모두 묶어 놓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향학열을 선택했다. 이것이 모든 비교 열위의 조건을 극복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박사학위 소지자는 85,000명에 이르고 있다. 이 숫자는 국민 전체 인구수에 비례하면 세계최고 수준이다. 어느 한 기업에만도 박사가 1,500명이나 되는데 이것도 세계최고의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박사의 희소 가치는 적어지게 되며, 박사학위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조심마저 든다. 이처럼 많은 박사들이 우리 산업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이웃 일본 어느 기업의 하급 직원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는 것을 보고 여러 감회가 교차하였다.
이 평범한 다나카씨는 노벨 화학상을 받고 기자회견들을 하는 자리에 회사 작업복을 입고 나왔다. 그는 대리에서 일약 이사로 승진하였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하여 이사직을 사임하고 본인의 뜻에 따라 부장 직함을 갖기로 했다고 전해졌다. 이런 겸양지덕의 일본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미래가 더욱 밝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이유는 세계 최고수준의 박사보유국 이면서도, 기업체의 다른 임직원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퇴근 후에 학원으로 몰리고 있는 과정을 보면 그렇게 확신이 든다. 그런데 이런 박사 학위증 소지자가 매년 기업의 인사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얻고 있으며, 그런 방편으로 개인 학원에 다닌다면 이것은 박사 양성소이면서 국가적인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여건 속에서 향학열을 불태우다보니 우리나라는 40여 년 동안에 GNP가 400배나 증가하였다. 2000년에 서울대는 SCI게재 논문 기준으로 세계 55위를 했다. 그리고 2001년에는 44등으로 상위에 랭크되었다. 혹자는 44등이라는 숫자를 절대적인 수치 개념으로 보면 결코 자랑할 만한 숫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환경을 감안하면 아주 잘한 자랑스러운 수치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평가하여 칭찬하여야 한다. 전체 국민 수 대비 축구인구와 축구팀 수, 구장 수를 감안한 한국의 월드컵 4강은 신화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했던 것과 비슷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국민들이 배우고 싶어하고 공부하고 싶어하는데도, 대학들은 학생수가 모자라서 적자운영이라고들 한다. 도대체 학생들이 왜 수강료를 내지 않고 학교에 다니는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고, 일부 학생들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힘들어 휴학을 하고 도망가듯 군에 가는 일은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원인은 학교측에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사장의 생각이 잘못되면 기업의 수준이 낮아지듯이, 학교당국은 적정규모의 학교운영이나 과목을 선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덩치 키우기에 더 비중을 두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학교를 기업의 성격을 띤 수익사업으로 생각하여, 외형 성장일변도 정책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쨓튼 이것도 과정의 결과로 보여진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쫓아가다 보면 어디에서 잘못 되었는지도 모르고 나쁜 결과만 탓하기 쉽다.
우리는 실상을 바로 보고, 과정을 중요시하여야 한다. 성공한 쿠데타는 항상 의로운 행동이었고, 경찰의 수사결과는 항상 선악을 구분 짓는 절대 잣대가 된다면 권력 남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혹시나 과정을 무시한 편파수사 등으로 빚어진 선악의 뒤바뀜은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과정을 바로 아는 것은 결과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능력을 보유한 정도가 사람마다 다른데도 같은 결과를 요구하거나 더 나은 결과를 요구한다면,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것이 된다. 사람은 능력에 따라 결과를 산출하게 마련이므로 그래서 적재적소배치가 필요 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필요에 의하여 결과를 적절히 활용하였으나 이제부터는 행동할 때마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도입되어야겠다. 2002. 11.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