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이 미선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우리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와,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와 관련하여 유감을 표시했다고 했다. 그리고 12월 6일 새벽에는 미국 국방장관 럼즈펠드가 한국말로 깊은 슬픔과 유감이라고 표현했다. 콧대 높은 미국의 대표 2명이 왜 이렇게 사과를 하게 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 미군 장갑차에 의해 우리 여중학생 2명이 압사한 사고가 있었다. 그것도 2002년 6월 13일, 밝은 대낮 10시경에 산악지형도 아닌 일반 56번 지방도로에서 일어난 사고다. 미국 측은 당시 군사 훈련 중이었다고 말하며, 미국인이므로 미국식 재판으로 처리하겠다고 하더니, 재판 결과 운전자와 그 상급자들에게 무죄를 선언했다. 그래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 국민들이 선포하고 나선 것이다. 이 열기는 전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번져나가 전 국민이 하나가 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가 제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선거운동 기간이었음을 고려할 때, 거리에는 자발적으로 모인 20~30만 명의 시민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룬 것은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보여준 것이 확실했다. 여기에는 남녀 노소가 따로 없고 종교적 차이도 없으며,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평등한 조건에서의 국가 간 협약이었다. 그럼 현재는 어떠한 수준이기에 그토록 열망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와 미국간에 맺어진 협약은 한국전쟁 후 휴전상태에서, 미국이 유엔군의 대표로 한국의 남한을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소련은 북한을 도와준다는 명목을 가졌을 때 맺은 불평등, 일방협약이다. SOFA란 무엇인가? 현재 미국은 세계 80여 개 국가에 자국 군대를 파견하고, 그들이 주둔한 국가의 안보를 지켜주며, 대신 그 지역에서 행동할 일정한 행동규범을 정해놓은 것이다. 이것이 한국과 맺으면 주한미군 지위협정이다. 그런데 각 국가 간에 내용은 거의 비슷하지만, 실제로 집행되는 과정에서는 힘의 논리에 의하여 억압과 권위가 각기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경제대국이나 군사대국에게는 같은 글자의 규정에서도 평등에 가까운 조치가 따르지만, 상대적 약소국가에서는 강압에 의한 안하무인의 처리가 이어진다. 때문에 이번 한국의 SOFA 개정요구 시위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약 1년 전에 불평등 SOFA를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켜 개선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겨우 몇 가지 조항을 개정한 것에 불과하고, 그나마 집행과정에서는 힘의 논리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개정한 후 채 1년도 안된 협약을 다시 개정하자고 하기도 딱하지만, 국민들의 여론이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고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편이다. 그러나 자국민의 대표인 정부는 당연히 자국민의 권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정부가 아니고 미국 정부의 파견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이번 SOFA 개정요구 시위확산을 우리 스스로가 들불이라고 표현했다. 누군가 강요하고 조직적으로 선동하지 않았지만, 온 국민이 하나의 사안을 놓고 같은 마음으로 똘똘 뭉친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6월 월드컵기간 중에 우리 선수들을 응원할 때도 지금처럼 자발적인 참여를 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중생 장갑차 압사사건은 그 월드컵 개최기간 중에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그깟 축구경기 때문에 소홀히 다루었던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어 자발적인 참여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은 이것을 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미국의 눈치를 보니 더 이상 반미시위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였다는 것을 감지하고 아부성 발언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누가 시켜서 이렇게 난리를 피우느냐, 차가 많이 다니면 교통사고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하면서 미국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특히 최근 2002년 12월 10일에는 스커드미사일 15기를 선적하고 항해중인 북한 화물선을, 미국이 공해상에서 억류했다가 풀어준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북한이 시켜서 이런 시위를 하는 것 아니냐, 그렇지 않다면 이제 그만 즉시 멈추어라 하는 듯한 내용을 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말은 빨갱이 소리를 듣기 싫으면 괜히 미국의 미움받을 짓을 그만해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다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불평등한 SOFA를 평등 조건으로 개정하고 인권을 보장하자는 것이지, 오랜 우방의 관계를 깨자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것이지, 없는 내용을 지어내어 미국에게 그 원인을 덮어씌우고, 협상시에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자는 것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때마다 그것을 잠재우기 위하여, 전혀 상관도 없는 다른 조건들을 내세워서 협상을 곤란하게 했었다. 또 내가 너희들에게 그 동안 베푼 은전을 고려하지 않고, 너희들 요구사항만 늘어놓을 것인가 하는 식의 슈퍼201조 적용이나, 반덤핑 제소 등 뒤통수치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러한 미국을 패권주의의 오만이라고 해석한다. 1991년 냉전의 한 축인 소련이 붕괴되면서 그 반대편인 미국이 홀로 남게 되었고, 넘쳐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세계의 권력자로 행세하게 되었다. 걸프전이 그랬고, 아프칸공격이 그랬다. 이것은 미국의 우월주의에 의한 산물이며 미국 외에는 경제적, 과학적, 의학적, 군사적 행동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적인 삶마저 미국에게 물어보고, 미국의 마음에 밉보이지 않아야 되는 현실이 된 것이다. 바로 성격윤리의 최종 종착지에 다다른 것이다.
미국인들은 직장에서 일할 때, 자신이 생각한 능력만큼 보수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즉시 떠난다. 그리고 바로 새로운 직장으로 가서 직급이나 호칭에 관계없이, 전에 해오던 관습이나 문화와 상관없이 열심히 일을 한다. 오로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자본 삼아 성과를 발휘하고 많은 성과급을 받아가며, 직장은 기존의 문화나 질서와 비교적 상관이 없는, 일의 업무 관계로만 인식하는 주의인 것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성격윤리의 결과이다. 따라서 미국식 경영은 여러 조건을 갖추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합리적이고 이상적이지만, 어딘지 부족한 평범한 사람에게는 가차없이 내 몰리는, 그들의 논리에 떠서 허공에서 겨루는 게임이 된다.
전에 우리가 미국에게서 받은 혜택은 참으로 컸다. 일제에서 독립할 때도 그랬고, 한국 전쟁때 공산국가와 싸울 때도 그랬다. 그 후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주요한 수출 대상국이 되어 우리를 도와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대가를 인간적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한다면, 세계를 이끌어간다고 자부하는 미국으로써 온당치 못한 처사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평등조건을 내세우는 것이다. 우리 장년층 역시 그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잘못해도 그냥 덮어둔다면, 진정으로 그들 돕는 길이 아닌 것을 알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잔인하기로 최고인 악어도 동물을 잡아먹고는 눈물을 흘린다. 얼마나 슬프기에 우느냐고 물어 볼 수는 없지만, 먹이를 통째로 삼킨 후 바로 눈물을 흘린다. 흔들리지 않는 초강대국 미국이, 한국의 여중생 2명을 압사한 이후 대통령과 장관이 연거푸 유감이라고 사과를 했다. 진정한 악어의 눈물일까? 악어는 자신이 먹은 그 먹이가 불쌍해서 우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에게는 그러한 정이 없다. 다만 먹이를 통째로 삼키기 때문에 먹이를 먹을 때마다 항상 많은 양의 물도 같이 먹게 되며, 그때 먹은 염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금기를 배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어 몸 속은 염분의 농도가 지나치게 되어 악어는 곧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사과가 무정한 악어의 눈물이 아니기를 바란다. 44개국이나 되는 대다수 국가에서 반미 감정이 확산되어 있다는 것이, 2002년 조사에서 나타났다. 중동 국가는 55%~75%가 미국을 싫어하며, 독일에서도 17%가 증가했고, 영국 8%, 이탈리아에서도 6%가 증가했다. 아시아 역시 방글라데시 47%, 한국의 44%가 미국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면피성 발언이라면 SOFA의 평등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SOFA의 개정 결과를 보면 악어의 평상적인 눈물인지, 어쩔 수 없이 먹긴 먹었지만 먹이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에서 온 눈물인지 알 수 있게 된다. 200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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