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의 제 구실 / 한 호철
고대 이집트가 번성하고 그때 통치했던 왕들이 죽으면서 생각하니, 이렇게 번성한 국가를 두고 자신만 없어지려니 무척 서운했던 것 같다. 그래서 차마 두고 가기가 아까우니 자신이 살아 남아서 계속 통치하고 싶은 마음에, 강제 동원하여 스핑크스를 만들고, 또는 피라미드를 만들었다고 생각도 든다. 그러다 혹시나 환생하면 진짜로 다시 살아나서 통치할 수도 있으니, 그에 철저히 대비하여 미이라까지 만들고, 깨어나면 자신을 시중들 신하와 노예 종들을 같이 묻기까지 했다고 짐작케 한다. 그 나름대로는 한때를 풍미했던 국가의 왕다운 발상이다.
그러나 그 뒤 이집트는 쇠퇴하고 대신 로마가 등장한다. 이 로마는 스핑크스, 피라미드 대신 도로를 건설했다. 산은 깎아 내고, 강은 막고 다리를 놓아 교통을 발달시켰다. 역사는 흐르는 것이고, 국가 간의 세력에도 흐름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집트가 권력에 의한 무력 국가였다면 로마는 논리에 의한 문화 국가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당시 로마는 도로를 내면서 그 지방에서 나는 재료, 특히 그 도로를 건설하는 곳에서 생산된 자재를 주로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참나무 숲을 통과 할 때면, 도로 부지에 서있던 참나무를 베어 말뚝 모양을 만들고 땅속에 촘촘히 박아, 지금의 파일 보강 구조를 이루었다. 또 돌이 많은 곳에서는 그 돌들을 모아 지금의 호박돌 포장 기법이나, 땅속에 그 자갈들을 섞어 지금의 보조기층 형태로 사용하였다. 늪지를 메울 때는 흙으로 메우지만, 그 늪지에서 자란 나무를 잘라 보강제로 사용한 것이다. 그것은 주변 환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이며, 재료간 이질감이 적어 가장 합리적인 재료 배합이라고 해석된다. 그래야 가장 오래 가는 구축물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 주변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손쉽고 저렴한 공법이었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도로 건설로 로마는 대 부흥을 하게 되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그 당시 AD 14년에 건설한 가드교는 지금도 제 모습을 갖추어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한 국가가 천년을 버티고 또 천년을 이어 가려면 처음부터 얼마나 기본에 충실해야 되는지 짐작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도로는 2001년 말 현재 고속도로 총 연장이 2,600㎞로 세계 11위가 된다. 이것이 2006년에는 3,485㎞로 세계 10위권에 들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러한 도로를 관리하는 한국도로공사는 2001년 말 기준으로 부채가 12조 4천억 원이라고 하니, 더 빨리 더 많은 도로 건설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의 명절 때 차량속도가 평균 시속 4~20㎞에 이르고, 일반 주말에는 57~62㎞의 수준으로 확인된다. 1975년부터 25년 간 평균 고속도로 이용차량 증가율은 11.3%이었으나, 고속도로의 총 연장 평균 증가율은 2.5%이었으니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2000년 한 해의 교통혼잡 비용은 19조 5천억 원으로 집계되었다. 이 돈이 절감되면 도로공사 총부채를 일시에 상환하고 고속도로 하나쯤은 더 건설할 재원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왜 이렇게 교통 지출비용이 커져만 가는지를 알아내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사고를 유발하는 도로 구조체계, 교통흐름을 잘 파악하지 못한 신호체계, 사고 다발지역의 부족한 정보인지 체계, 잘못된 운전습관, 그리고 잘못된 운전문화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도난 차량의 실시간 감지 능력 시스템, 분실된 운전면허증의 습득 사용 여부 감지시스템, Hi-Pass라는 통행료의 영상 전산 부과 시스템 등으로 교통 병목현상을 빨리 해소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 홀로 차량이 출퇴근 시간에 국도 및 지방도를 피하여 고속도로를 이용한다고 이를 규제해서도 안 된다. 그들이 연료비를 내지 않거나, 통행료를 내지 않고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방법은 그들이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국도나 지방도를 이용하는 것이 시간도 짧고, 출퇴근 부대비용이 적게 들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무슨 기회만 되면, 고속도로 통행료가 선진국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싸서, 짧은 구간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부작용이 있으니 통행료를 대폭 인상하여, 그 재원으로 도로를 추가 건설해야 한다는 발상은 글자 그대로 탁상행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지방도를 선호하는 도로체계를 만들어 주지 않고 남의 습관, 문화를 바꾸라고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관광버스 등 비생산적인 교통수단은 고속도로 진입이 원천적으로 불가하고, 꼭 필요한 때에도 보통의 통행료보다 5배정도 비싸게 하는 등의 방법도 있겠다. 반대로 화물 트럭의 통행료를 현행보다 절반으로 낮추는 등의 생산적인 방법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가까운 거리는 편리한 지방도를 활용하는 것이 실제적인 이득이 되도록 도로를 개선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보다도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빨리 빨리식 문화가 낳은 여러 가지 내용중 고속도로도 예외는 아니다. 단 기간 건설이나, 짧은 기간 총 연장 증가 등의 무시할 수 없는 효과도 가져왔다. 이미 빚어진 현상인데 원인 없이 결과만 놓고 치료한다면, 매일 항생제 맞고 자상에 꿰매기만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상처를 치료했다면, 그런 후에 보약도 먹고, 체질을 강화시키는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제 심각해진 도로 교통 문화를 되새겨 보고 반성할 때이다. 결코 적지 않은 우리의 도로 점유율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전 국민이 고민해야 할 때이다. 2002.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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