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권한의 한계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7:45
 

권한의 한계 / 한 호철


공용인 회사 차량을 개인 물건처럼 아껴 쓰는 예를 더 들어보자.

지금부터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사업장이 비좁아 울타리 밖의 다른 사업장을 임차하여 근무하던 때도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손을 크게 다쳐 병원으로 긴급 후송하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그래서 손에 화장지를 대고 임시로 지혈 아닌 지혈을 하고, 모두들 허둥지둥 회사차량을 찾았다.  때마침 제 2공장에서 제 1공장으로 업무차 들어와서 이제 막 도착하는 차량을 발견하였다. 다급한 마음에 그 차량으로 병원에 가자고 하며 운전자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승용차 뒷좌석 문을 열고 환자를 태웠다. 그러자 그 차를 타고 온 사람은 자기는 지금 막 도착하여 업무를 보아야 하니 다른 차를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공용차량은 제1공장에 승용차 한 대와 트럭한 대뿐이었고, 제2공장에도 승용차 한 대뿐이던 시절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다시 허둥대며 제1공장의 승용차를 찾다가 마침 외근 나간 관계로 개인 승용차를 빌려 타고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앞의 제2공장에서 회사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은, 그 회사차량을 개인 소유 차량처럼 혼자서만 타고 다니는 상황이었고,  그 날 환자 싣기를 거부한 진짜 이유는 피를 많이 흘리고 있는 것을 보더니, 차의 시트가 더럽혀지니  무언가 깔고 환자를 태우라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급한 김에 마땅한 모포나 헝겊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차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환자가 어떻게 장애가 있을지, 후유증은 없을지 걱정되는 마당에,  차량시트에 피가 묻으면 세탁하기도 곤란하고, 시트 세탁비를 누가 낼 것인지를 걱정하여 태우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

 더구나 그 차량은 회사소유의 공용차량으로, 자신이 그렇게 주인행세를 할 성질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최소한 차량의 열쇠를 주면서 가능한 피묻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어도 그렇게 야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사람은 본인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잘 잘못을 따질 일이냐고 반문 할 정도였다.  자신이 태우지 않겠다고 했으면 그만이지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느냐는 것이다.  그 뒤 병원에 간 환자는 별다른 문제없이 자상에 의한 출혈 부분만 치료하고 쉽게 돌아왔다.  혹시 그때 지연으로 인한 장애가 발생할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를 사건으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의 운전자는 그런 후에도 계속 그러한 행동으로 일관했다.  그러고도 계속해서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부류에 속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세상의 불공평을 논했다.  그러나 나의 목소리는 항상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 올뿐 어느 누구 듣는 이도 없었다.  그 후로 한참이 지난 지금 그때부터 지금까지 외쳐댄 메아리가 공명히 되어 큰 파장을 만들어 냈다.  결국은 단지 그때 그 사건뿐이 아니라 그러한 일들이 수시로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거나,  내가하면 정당방위고, 남이 하면 과잉방어라고 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내가 하면 최선의 선택이고, 남이 하면 주제파악도 못하는 그러한 상황으로 몰고 가서는 더욱 안 될 말이다. 

 누구나 그 순간에 최선의 선택으로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얻기 원하지만 그때 나타나는 것이 그 사람의 역량인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 보유한 역량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역량은 지식, 학식, 경험, 그 당시의 주변 환경에 의해서 달라진다.  거기다가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지위에 따라 아주 큰 차이로 결정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북한에 가야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고,  그때 가는 방법도 자기 마음 대로다.  배로 가거나,  육로로 가거나 급하면 직항로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북한에 간다고 하면 그 다음날 나의 존재는 숨쉬기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순천에서 목포까지 가는데 불편하므로 고속도로를 개설하자고 하면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한다.  유동인구가 적어서 효용성이 적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면 다음 해에 착공한다.  세상은 개인의 힘이 작고,  풀뿌리는 약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큰 나무도 죽고 만다.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주변을 제대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서는 밀어 부치기식 정책도 필요하고,  선심성 정책도 필요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진실된 면을 읽어내는 기술일 것이다.

그래야 올바른 탕평책을 펼 수 있을 것이다.   200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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