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사가 남기고 간 말 / 한 호철
2002년 8월 31일 낮 12시경부터 우리 공장에도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9월 1일 새벽 2시경에 바람이 사그라졌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글자 그대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것이다. 2002년도의 제15호 태풍 `루사'는 전라북도 북서부를 통과해서 지나갔다. 많은 태풍이 북반구 육지에 도달하면 세력이 약화되어 열대성 저기압으로 변하기 쉬운데, 이 번에는 한참 동안 용트림을 하고 사라졌다.
이 번에 비가 최고로 많이 내린 곳은 하루 동안에 약 800㎜를 넘었다. 이 같은 집중 호우로 정상적인 배수가 되지 못하고, 계속 흘러내리는 빗물에 의해 하천의 제방은 물론이고, 일반 평지에서도 사태가 발생하여 닥치는 대로 쓸고 내려갔다. 그래서 흙더미가 지붕을 덮고 통째로 매몰시키는가 하면, 집의 뒤쪽 벽면을 뚫고 들어와 앞쪽의 벽면을 뚫고 나가서 하천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태풍의 피해는 아직도 통신이 두절되고 도로가 유실되어 접근이나 조사가 미흡한 상태에서도 2조 5,000억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숫자는 그냥 어느 날 현재의 집계일 뿐이다.
(최종 집계는 재산피해 5조5천억 원이 넘었고, 인명 피해 240여명) 모두 조사해보면 얼마나 큰 피해가 될지 아무도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정도로 보여진다. 더구나 약 20일 전 대 홍수로 피해를 본 뒤끝에, 채 복구가 되지 못한 상태로 이러한 대형 태풍을 맞다보니 다시 홍수 피해를 입게 된 곳도 몇 군데나 된다.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실의에 빠졌다가, 이제 정신을 추스르고 재기의 노력을 채 기울여 보기도 전에, 또 다시 당하는 고통이라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시련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중 우리공장은 다행히도 별 피해가 없이 지나갔다. 예의 그곳들과 비교하면 전혀 피해가 없는 것이다. 우리 회사에 태풍이 불어오는 날이 토요일이라서 다들 퇴근하고 난 후에 닥쳐왔었는데, 밤사이 큰 사건 없이 지나갔다. 때마침 공휴일이라서 친가 및 친지들이 걱정되어 방문계획을 세워둔 사람들이 아침 일찍 회사를 둘러보러 방문하였다. 전 날에 간부 사원들은 비상대기 하도록 통보해 놓은 상태였으나, 다행히 회사에 큰 피해가 없는 것 같고 본인들도 개인적으로 가 보아야 할 곳이 있었기에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 이 얼마나 고마운 마음씨인가. 자기가 생활의 근거지로 삼고 있는 직장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세상살이가 그렇지만은 않기에 고마운 생각도 든다.
이번 루사는 바람의 속도가 초속 45m라는 얘기대로 위력이 크기도 했지만, 다른 태풍과 비교하여 엄청난 양의 비를 동반한 경우였다. 그래서 우리회사 공장의 문들을 모두 닫아 놓았어도, 문틈으로 바람이 치고 들어오면서 빗물 또한 몰고 들어와 실내에도 물이 고인 곳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신 본연의 업무만을 하면서, 태풍이 와도 나는 업무를 충실히 한다는 자세로 일관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사무실에 들어온 빗물을 퍼내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으니, 나는 그때 참으로 일 손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이 많이 있다면 ‘수방 대책도 좀 더 치밀히 세우고, 수방조치도 확실히 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사무실에 들어온 물이나 공장에 들어온 물을 퍼내는 것보다, 지금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하고 긴급한 것은 알겠지만, 이번처럼 기상 관측사상 최고의 집중 호우와 강풍의 태풍이 불어오는 날을 골라서 중요한 업무가 생긴 것은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래도 별 피해가 없었으니 다행이지 만약 커다란 피해가 발생하기라도 했다면, 아마도 나는 마음 졸이며 걱정하다 속이 다 탔을 것이다.
왜 이렇게 걱정하는 사람과 심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문명 사회의 발달로 인한 분업으로, 각자의 주어진 일과 맡겨진 업무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댐 관리를 하는데 수로 감시원 한 명이 하천 1개를 관리하는 것은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잘못된 관리였다는 것은 홍수가 나서 물이 넘쳐 보아야만 알 수 있다. 나는 댐 위의 유원지에서 돈 내고 놀고 가며, 당신은 그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대신 댐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으니 댐 관리에 충실하라고 한다면, 거기까지는 맞는 말 일게다. 그러나 대홍수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쥐구멍도 막고,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쓰레기도 치우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결국 홍수로 인한 피해는 다 같이 겪게 된다. 주변을 돌아보고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나의 본연의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황의 분위기를 몰아 가기 위한 행동도 필요한 것이다.
옛 선비는 홍수가 나도 그 집의 중앙 안방에 앉아 책을 읽으며, 집과 같이 떠내려가야 한단 말인가. 그것이 올바른 선비의 길이란 말인가. 이것이 어느 나라식 분업의 정의인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불분명한 분업은 우리가 처음부터 도입하지 말았어야 옳았을 것이다. 과거보러 가던 허 준은 왜 병자들을 고쳐주다가 과거 시험장에 늦게 도착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가 의사일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은 그때 몇 년을 벼르고 별러서 시험을 보러 가는 아주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사람이 치료해 주어도 돈도 받지 못할 것을 잘 알면서 치료해준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병자를 치료해 주다보면 과거보러 가는 길이 늦을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닌데도 왜 무리한 일을 했을까?
아무리 의업이 본인의 직업이긴 하지만, 직업 그것보다 앞서 남의 불행을 그냥 보고 갈 수가 없었던 것이고, 나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남의 불행을 덜어주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태풍 루사때는 우리공장에 큰 피해가 없었지만, 더 큰 피해를 끼칠만한 태풍이나 홍수가 닥쳐온다면 우리회사 직원들도 모두 협심 단결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이번 보다 더 큰 태풍은 앞으로 제발 오지 말기를 바란다. 2002.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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