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복의 변 / 한 호철
2003년에 국제 올림픽 위원회에서 2010년의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1998년에 전북의 무주전주로 후보를 정했고, 2002년에 유치신청을 하며, 2003년에 국가 간 유치 경쟁을 한다고 구두로 결정했다. 2년 뒤 2000년에 들어와 금강산 관광에 고무된 강원도가, 북한과 공동으로 개최하기 위하여 국내 후보지 신청을 냈는데, 다 결정된 후 버스 지나간 뒤에 손드는 격이었다. 또 2001년에 와서 북한 금강산 관광이 시들해지고 공동 개최가 어려워지니까, 강원도는 서울과 공동으로 개최하겠다고 하면서, 국내 후보지를 재검토해달라고 11월 국내 위치 선정위에 서류로 신청서를 접수시켰다.
그 결과 한국 올림픽 위원회 KOC 는 강원도의 편에서 해석을 하였다. 내용인즉 강원은 경기운영비가 적게드는데, 무주전주는 스키 할강장이 규격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북의 주장은 달랐다. 동계올림픽 스키담당 이사가 와서 실사한 결과 이상이 없다고 승인해준 상태라고 했다. 거기다가 강원도야말로 신규로 개설해야 되는 경기장 건설비는 고의로 누락시키고, 경기 운영비용만을 부각시켰으며, 산악지형에 눈이 많은 강원도가 적격이라는 점만 내세웠다는 것이다. 또 서울과 강원은 경기를 분산하여 개최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현실성이 없는 상태이고, 서울시도 분산개최를 합의해준 적도 없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강원도의 주장이 KOC에게 전달되어 강원도로 의견이 변경되어 가고 있었다. 이에 전북은 KOC가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정식으로 이의문을 제기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강원과 전북의 공동개최라는 초유의 발상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결정되었다.
이는 2002년의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의식하여, 어느 한 지역이라도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정치적 논리로 결론 난 것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이에 전북과 강원은 서로 분개해하고 있지만, 전북으로서는 4년이나 잘 준비하고 있다가, 이미 결정 난 일을 가지고 번복하여 나누어 먹는 격이 되었고, 강원의 입장에서는 내가 다른 일을 하다가 밥을 못 지어 배고프다고, 남의 숟가락에 묻은 밥을 빼앗아 먹는 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강원과 전북의 공동개최라는 것이다. 동계 올림픽 개최지는 2003년에 결정하며, 세계에서 약 10여 개 국가가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공동 개최는 그 치열한 경쟁 투표에서 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는 길이 아니냐는 걱정도 생겨났다.
결국 2곳 중 어디 한 곳에서는 인심을 잃어 국내투표에서 표 잃고, 국제경쟁에 경쟁력 있게 나서는 것보다는, 차라리 동계 올림픽 유치 경쟁이 어렵더라도 국내 지자체 선거에서 표를 잃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명쾌하지 못하다.
국가 운영은 이렇게 복잡한가 보다. 애들은 밥도 못 먹어 배가 고프고 영양실조에 걸리더라도, 어른들이 건강해야 일을 잘한다고 보약을 먹는 격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거기에 또 한가지 강원의 입장에서는 손해 날 일이 없다. 한 걸음 더 비약하여 보면 2002년에 지자체선거에서 표를 많이 얻으려면 강원유치를 계속 내세워야할 형편이다. 전북에서는 4년 전에 결정되었으나 별다른 지원 없이 준비하지 못 해왔고, 정치권에서도 그 타당성은 인정했으나 후속 조치를 실행하지 못했다. 이런 때에 강원은 갑자기 1년여를 남기고 경쟁에 들었다가 떨어지더라도, 결국 현 정부의 텃밭인 전북에게 빼앗겼으니 그 정도도 잘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상황에서 공동개최를 이끌어낸 것은 그나마 4년 간 꾸준히 해온 공부와, 1년 간 벼락치기 공부한 효과가 같거나 잘한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전북과 강원의 공동개최 결정 후, 전북은 그 간의 수고를 포기하면서 KOC 결정을 수용하는 분위기인데 반해, 이제 막 계획을 세운 강원에서는 오히려 공동개최 결사반대를 하는 것으로도 짐작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 이유는 분산 공동개최로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신청하면, 서류심사 1차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현실적으로 무주와 강원의 동계올림픽 개최 여건 중 어느 곳이 유리한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수년 전 예비 심사에서 결정할 때에도 여러 가지를 충분히 검토하고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믿고 싶다. 그 당시의 공무원들도 성심 성의를 다해 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2. 01. 08. 0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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