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플라스틱의 노예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8:14
 

플라스틱의 노예 / 한 호철

  

  어느 예언에 사람들은 모래 속에 파묻히고, 플라스틱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했다.  바닷가의 모래성, 두꺼비집 장난하던 때의 모래집, 소꿉놀이의 모래밭 등이 갖는 의미는, 인간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모래 속에 있음을 예고했던 것일까.  이제는 모래 없이 살아갈 수가 없다. 우리가 사구(砂丘)를 중요시하는가 하면,  매년 황사(黃砂)를 불러들이고, 심지어 황사비가 오면 그 비를 피해 숨을 곳도 모래를 시멘트에 섞어 놓은 아파트 속이다.  또한 소꿉놀이하던 그릇이 도자기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고,  어린이 장난감은 하나같이 가벼운 플라스틱이며,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의 주요 부품들이 속속 플라스틱으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 생활 속에서도 반찬 그릇부터 시작해서 주방기구, 생활용품, 직장에 가더라도 컴퓨터 케이스에서부터 볼펜, 휴대전화기 등 어느 한가지라도 플라스틱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지갑은 헝겊이나 가죽이더라도, 그 속에는 어김없이 플라스틱이 들어있다.  나도 많은 플라스틱 카드가 있다.  그중 정부에서 주관하는 카드와 비상용 자동차키, 공용카드를 빼더라도 개인적으로도 상당수의 카드가 있다.  이 카드는 다양하고 편리성도 많이 있지만 그에 따른 규제사항이 훨씬 많다.  권유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만든 카드는 사용을 안 하게 되지만,  내가 필요에 의해 만든 카드는 자주 사용하게 된다.  1년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카드가 있는 반면 거의 매일 사용하는 카드도 있다.  따라서 권유에 의한 카드는 마음의 정리가 되면 가위로 잘라 내어버린다.  그런데 어디에서는 반드시 카드를 반납해야만 회원에서 삭제한다고 한다.  카드 분실 신고를 하여 재발급 받고, 그 카드를 반납하면서 탈퇴하여야 하지만, 절차가 번거로워 반납이 안 된 상태로 그냥 어정쩡한 채 있기도 한다. 

 카드사용에 대한 이러한 나의 원칙은 아직까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는 편이다. 이러한 카드를 사용하므로 써 얻는 생활의 편리함이란 아주 크다. 그러나 이 카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므로 써 당하는 피해는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기는 하지만, 그 절대적인 피해정도는 비교가 안 된다.

 소득이 없는 사람들이 소비를 늘려 나가고, 그 대처를 잘 못하는 경우는 이제 남의 일로만 생각할 것이 못된다.  이른바 카드 빚 때문에 학생들이 탈선하여 일으키는 사회적 문제는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청소년 신용불량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성인들도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게 되면 남을 속이게 되고, 남의 금품을 강제로 빼앗아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게 된다.  심지어 자살을 하고,  반대로 살인을 하게 되는 원인의 하나로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카드 빚의 액수 크기는 별로 문제가 아니며,  단지 대여섯 번의 연체가 되면 벌써 빚 독촉이 되고, 심하면 소득이 있는 사람들한테까지도 강제회수 등과 함께 인격적, 인간적 모멸감을 주어 빨리 갚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아 간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사리분별력이 약한 청소년이나, 일부 다른 방법을 찾고 있던 사람들은 극한 처방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전체 수에 비하면 적은 비율이지만,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플라스틱을 사용하다가 플라스틱의 노예가 되는 그러한 결과가 되어가고 있다.  카드 빚 돌려 막기라는 신종 용어가 생겨날 정도이니, 우리 사회의 중요 자리를 이미 차지한 셈이다.  내가 아는 한 대학생이 6개월 전에 가출을 하였다.  지금껏 소식이 없는데, 알고 보니 카드 빚 150만 원이 원인이었다. 소득이 없는 학생의 150만 원은 큰 돈 이었고, 혼자서 용돈을 모아 해결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금액이다.  부모에게는 죄스러운 마음에 상의도 못하고 혼자서 몇 달을 고민하다가, 끝까지 혼자 책임진다는 가상한 생각에 택한 방법이라고 추측된다.  물론 이것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학생은 계속 고민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인 것이리라.

 이처럼 사리 분별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자기 인생의 삶을 자신들 혼자서 판단하는 그런 자세도 없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 역시 성인들이니 참으로 해석하기 힘든 상황이다.

  모든 일을 자신의 부모, 형제, 친지 등 주변 사람들과 상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려운 일 일수록, 말하기 힘든 일 일수록 더 자주 말하고 상의해야 할 것이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가족이고 부모 형제이기 때문이다.  2002. 05. 03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식들의 경제 걱정  (0) 2006.06.04
청소년 신용불량자  (0) 2006.06.04
깨진 독을 수리하자  (0) 2006.06.04
번복의 변  (0) 2006.06.04
대둔산 축제  (0) 2006.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