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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의 경제 걱정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8:16
 

자식들의 경제 걱정 / 한 호철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품 브랜드 중에 구찌, 루이뷔통, 프라다, 샤넬, 티파니, 까르띠에, 에뜨로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내가 직접 사용해 본적이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 상품들이 모두 수입품이라서 국산품을 사용하여야 하므로 인위적으로 거부한 적도 없고,  그 명품이 있어야만 사람대접을 받는 곳에 살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그런 것들만을 사서 생활하기에는 경제적 여유가 허락하지도 않지만,  사실 그것이 없어도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돈으로 국산 명품을 몇 개 사서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부는 그러한 유명 제품만을 사서 쓰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그 제품이 좋아서 사 쓴다고 한다. 그들이 좋은 것을 좋다고 하고, 사용하는데 반대할 이유도 없고, 내가 나서서 말릴 권한도 없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그 명품 매장에 손님이 줄었다고 한다. 그 줄어든 이유는 잘 모르지만 지금 이러한 때에도 계속해서 찾고 있는 손님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들고 있는 부류들이란다.     그 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몇 몇 고정 고객군이라는 것이다.  연령층이나,  경제적인 층, 직장의 직급층 등 어느 계층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층을 벗어나서 최근에는 명품이 유행병처럼 번져 `중고제품이라도 좋다, 구할 수만 있으면 무조건 구해다오‘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회의 초년생이나 일부 학생들이 소위 명품 계를 조직하여, 계원 중 한사람 어느 누구에게 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금전적인 기회에 국한되긴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중고 거래센타에 미리 주문 예약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제 경제적인 환경이 열악해지거나, 사회의 분위기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 사그러드는 모닥불 같은 자세를 취하곤 한다.  지금이 아마 그런 때가 아닌가 싶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도, 어떻게든 명품하나 구해서 만족감을 갖고자 했던 소비 계층들이 물밀 듯이 빠져나가고 나니,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 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앞의 예에 든 상품들이 전년 동기비 같은 매출세를 이루고 있다거나,  증가하기는 해도 그 폭이 작아 10%정도의 매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남의 장사 잘되고 못되고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지금까지도 유행하고 있는 청바지가 그 예이다.  튼튼하고 질긴 청바지가 실용적이고 경제적이어서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 한 것이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일이다.  물론 지금은 그 청바지가 개량되고 개선되어 옷다운 기능을 갖춘 옷으로써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찢어진 청바지가 들어오고, 처음부터 멀쩡한 새 옷을 찢고 닳려서 파는 경우까지 사업화 되었다. 이때 청소년들은 그런 옷 한 두개 없으면 같이 어울리지도 못하게 된 적이 있었다.

 우리 집 애들도 그런 옷을 좋다고 사서 입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 좋아하지 않는 부모 탓에 눈에 띄는 곳에서 내놓고 입지는 못했고, 저희들끼리 모여서 노는 곳에서는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가져다주는 폐해를 생각하며 반대를 했기에, 우리 집 아이들은 아마도 더 이상 입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찢어진 탈색 청바지가 어떻게 탄생했을까,  최초의 원조는 모르지만 무게로 달아서 파는 중고 폐품덩이 옷들이 후진국의 무상원조로 가던 도중, 기발한 아이디어로 한 몫 잡아 보자는 상술에  편승하여 들어 온 것이라 추정해본다.

 그리고는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그처럼 질기고 튼튼한 청바지가 이렇게 찢어지고 헤어지도록 입은 당신!  당신은 진정한 경제 활동의 참 주인공입니다. 이제 그 옷을 입고 떳떳하게 백화점을 드나드십시오. 자신있게 관공서를 찾아가 당신의 권리를 내세우십시오.  이 옷을 선택하신 귀하는 훌륭한 산업전사입니다. 근검 절약하는 애국자입니다.  이러한 문구들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썩어도 준치라는 우리 속담처럼 중고라도 명품은 명품이라는 문구를 만들어 가면서, 단군 이래의 국적불명 명품 계를 탄생시킨 것도 아주 똑 같은 방법일 것이다.  쌓여만 가는 중고들, 처치하기 곤란한 제품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상관도 없는 나라의 국민들에게 팔아내는 그 상술이 가히 기술이라 할만하다. 그것도 재고처리 비용이 드는 것을 대신하여, 그들의 경제 활동비를 모두 우리 돈으로 치르고, 그들 국가도 배불리우는, 우리는 참으로 세계를 먹여 살리는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국민들이다.

 아무리 국경 없는 세계화시대에 글로벌 경제라고 하더라도, 그들 국가의 쓰레기 치우는데 우리가 동원되고, 그것도 우리 돈으로 자청하여 쓰레기를 반입해 온다면 이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혹시 우리가 그들의 쓰레기를 처리해 준다면 우리는 분명 그들에게서  처리비용을 받아 내야 한다. 이러한 경제 논리를 알고 쓰는 재활용인가, 아니면 아직도 큰 것이 좋고,  비싼 것이 좋고,  남의 나라 것이 좋은 것이라서 사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쓰지 않으면 저렇게 많은 재활용 가능한 물품을 쓸 곳이 없어지고, 결국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세계의 쓰레기를 치우는 마음으로 사용하는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사용해야 한다.

 위의 물품들이 잘 팔리든 안 팔리든 나 개인은 큰 상관이 없다.  만약 잘 팔리면 내가 그 장사를 하면 좋고,  잘 팔리지 않으면 나도 그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그러한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든 보기에도 민망하지 않아야 하고,  남에게 혐오감을 주어서도 안되고, 특히 남에게 불편하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명 상품을 사서 쓰기 이전에 내가 처해있는 곳의 환경을 돌아보아야 한다. 금융 환란 때나, 그 5년 후 지금의 국가경제 상황이나, 세계 지도자 국가에 드는 문턱에서 금융,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자초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말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모든 일이 때가 있는 법인데, 아무 때나 어디서나 한다고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때, 해야 될 때에 하면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라는 말이다.  만약 쇠뿔이 열에 달구어 졌을 때 빼지 않고, 힘들다고 담배 한대 태우고, 막걸리 한 잔 하고 빼려한다면, 다시 식은 그 뿔은 살과 힘줄에 엉겨 붙어 손으로 잡아 빼기는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고 만다.

 우리경제를 바로 세우려면 기업가, 근로자들도 중요하지만 정책 입안자, 그리고 그것을 보고 배우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경제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렇게도 남의 나라를 사정을 보아주지 않는다는 미국의 경우에는, 고교과목에 경제를 포함하여 전문적으로 실생활의 경제원리를 어렸을 때부터 가르친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이 커가면서 더욱 경제를 연구하여 세계의 금융, 경제계를 흔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우리 청소년들이 만약 남의 나라 쓰레기 청바지를, 그것도 우리 돈을 묶어 들여와서 사용한다면, 그들이 커서 경제의 주역이 되었을 때는 어떤 일들까지 할 수 있을까? 현재 머리로는 상상도 안 간다. 이러한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나는 돈이 많아서 자식들에게 유산도 많이 물려 줄 수 있으니, 그런 일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 할 수 있으나,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무리 돈이 많은 세계의 유태계라도, 나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조국의 전쟁소식을 듣고는, 말리는 손 뿌리치며 자원 입대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미래는 우리 자식들에게 우리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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