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올바른 경제교육의 시작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8:17
 

올바른 경제교육의 시작 / 한 호철


 우리나라의 많은 고등학생들은 용돈을 부모로부터 타서 사용한다.  학교 공부와 학원, 과외에 지친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풀겸하여  군것질을 하거나,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거나, 오락실에 가는 비용마저도 자기가 벌어서 사용하지 않는다.  부모 또한 그 비용을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활동으로 생각하고 지불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을 안 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르바이트를 하려해도 갑자기 하려니 마땅한 것도 없지만,  우리나라의 입시제도 문제를 핑계삼아 그럴 시간이 있으면 공부하고, 피곤하면 조금 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고등학교 시절의 현실이다.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것은 과거 가난한 서민들이 자신들의 신세를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만들어 낸 말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능하면 어릴 적부터 노동의 가치를 인식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그 이유로서는 노동으로 지친 몸을 추스르고 돈의 가치를 느껴 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경제적 사고로의 전환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활동에 직접 참여해 보면서, 자신의 효과적인 경제활동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돈을 벌어 본 사람이 돈을 잘 버는 방법을 찾기가 쉽다는 것이며, 돈의 흐름을 아는 사람이 남을 돕고 효과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교육은 어릴수록 좋고,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도를 탓하고만 있지 말고,  늦었을 때에라도 가능한 빠른 시기에 경제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돈을 아주 많이 가진 사람이 노동의 가치를 모르면서, 가지고 있는 돈을 쓰는 것은 소비활동에 속하는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경제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물려받은 돈으로 경제활동을 하려면 그것을 적절하게 투자하고,  투자한 정도에 따라 자신의 노력을 보태고 이익을 찾는 이른바 직업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직업에는 육체적인 활동을 주로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육체적인 활동에 적절한 정신적 활동을 가미한 것도 있다. 어느 경우는 정신적 활동에 치우치는 수도 있기는 하지만 직업의 의미로서는 모두가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가진다.  다만 개인의 조건에 따라 어느 것을 수행하기가 적합한지가 다를 뿐이며, 본인이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이 다를 수 있다. 거기다가 그 행한 일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좋은 혜택을 주며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고,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경우는 좀더 일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경제적으로 좀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시 자신이 한 일을 보람 있게 생각하며,  가치를 부여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소중히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한 일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타인이 한 일도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상대방을 존중해 줄 수 있다.

 나의 아들녀석이 지난 여름 방학 때 친구들과 여행을 하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한 여름 뜨거운 햇볕아래 힘들게 일해서 받은 돈으로, 바닷가 피서 여행을 다녀왔다. 자신이 벌어서 자신이 쓰겠다고 하는 것만도 고마워서 별 이야기는 안 했지만, 힘들게 번 돈을 너무 쉽게 쓰고 난 것을 보니, 내가 자식교육을 잘못시킨 것은 아닌지 후회도 되었다. 그럴 바에는 일하면서 번 돈 중에서 하숙비를 공제했어야 경제논리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자신이 부모 집에서 무료로 하숙하면서,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번 돈은 자신이 혼자 사용했으니 계산이 안 맞는 거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하면 경제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긴 하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난 가을부터는 눈 딱 감고 무리한 주문도 해 보았다.  현재 대학생인 아들녀석에게 가계부를 적도록 한 것이다.  문방구에 가서 철지난 때에 가계부를 사고, 그것을 빠른 우편으로 보내서 사태가 쉽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주문한 것이다.  물론 완벽한 가계부 적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규모 있는 경제 활동을 기대하면서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서서히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점검해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용돈을 받아서 쓰는 것 외에도, 자신이 벌어서 쓰는 것도 중요하며, 쓰다보면 모자라는 돈을 어떻게 해야 충족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는 자세를 갖추기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의 집 자식들은 안 그러는데, 왜 우리 집만 이렇게 부모자식간에 정이 없고,  자식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는 오해를 하지 않기 바란다.  훗날 경제활동에 도움이 되고,  자신의 생활에도 보탬이 되는  그러한 조치였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러한 것들도 어느 한 가정에서만 행한다고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우리는 항상 주변 동료들과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내가 행동한 것을 주변환경이 터부시한다면 본인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그럴수록 주변에 동참하고 싶어져서 결국은 목적을 이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0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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