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거품의 악순환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8:18
 

거품의 악순환 / 한 호철


얼마 전 나에게도 상담이 들어왔다.

대지 57평에 1층 상가 40평, 2층 주택 40평을 신축하였으니 1억 4천 5백만 원에 사라는 것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서 현금화하고,  그러고도 모자랄 경우 들어 갈 집을 담보로 하면 그 정도 돈은 충분히 준비할 수 있으니, 지금 생각해 보고 내일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방법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은행에서 부동산 담보대출을 실시해준다는 안내 광고장이 매일매일 배달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담보 대출 신용 대출이 러시를 이루고, 그 이율 또한 7%대까지 낮아졌을 때 은행들의 BIS 비율이 낮아지고 견실화되어 돈이 넘쳐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예금 수신 금리는 3%대로 낮아지고, 개인들의 저축률은 계속하여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담보가 거의 없는 기업들에게는 돈을 잘 빌려주지 않으면서, 확실한 부동산을 담보로 개인에게만 빌려주어 금리 마진을 남기자는 계산임을 안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계에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이 무려 400조원이나 되며,  이 수치는 1997년 9월 200조원의 2배이다.  IMF때는 대출금리가 20%를 넘고 수입원마저 줄어들었으므로, 대출금을 상환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1999년 9월까지 2년 간은 추가 대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최근 3년 사이에 2배로 증가된 400조원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가계대출금액 수치는 어떠한 경우라도 설명하기 어렵다.  반면에 그 어렵던 IMF시절 1998년에도 국민 총 저축률이 33.9%, 99년도 32.9%, 2000년도 32.4%, 2001년도 29.9% 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다만 저축률 저하라는 수치의 나열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본이 그랬고,  홍콩도 그랬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대출원금은 변함이 없더라도,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담보 가치가 하락하게 되고 갚아야 할 원리금이 더욱 커 보이는 결과를 빚었다.  그러다 결국은 부동산 투매 현상이 벌어지고, 드디어 개인 파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실제로 일본에서 부동산 거품이 한창인 1991년에, 은행 빚 2,200만 엔과 자신의 자산 3,000만 엔을 합쳐 5,200만 엔의 주택을 산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차츰 집 값이 하락하면서 계속하여 자산가치도 하락하게 되었다.  큰집으로 이사 가서 살아가는 도중에, 집 값이 오르면 팔아서 남는 돈으로 은행 빚을 갚으면 된다는 생각은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결국 1998년에 그 집을 2,200만 엔에 되팔게 되었다.  힘들게 고생하면서 3,000만 엔을 손해 본 셈이다.  그 뒤 동경에서는 서민용 소형주택을 다량 공급하였지만, 이들은 그 집마저 들어가 살 형편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2001년 일본통계에 따르면 주택 구입시 받은 융자의 원리금으로 총수입의 40%를 사용하게 되어, 저축을 포기하고 소비를 줄이는 경기 악순환을 불러왔다.

  홍콩의 예도 유사하다.  2001년 초에는 개인 파산자가 1,000명당 0.15명이었는데, 2001년 말에는 1,000명당 1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그 주요 원인은 90년대 이후 연 평균 14%의 개인 신용 대출 증가로, 2000년도 말에 가계대출 총액 108억 달러를 달성했다.  이 금액은 우리 돈으로 약 13조원이다.  홍콩인구 650만 명을 우리 인구로 환산하여 보면 우리보다 적은, 약 100조원으로 비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 경제가 은행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개인 파산자는 자기 월 소득의 55배에 달하는 빚을 진 것이었다.  이를 회수하지 못한 금융회사들은 말할 것도 없이 곤란한 지경에 빠지고 만다.

 우리나라는 현재 수준까지로 보아 은행들이 감당할 수 있고,  국가나 개인들이 견뎌 낼 수 있다고 들 말한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제라도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정리하고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나라 2002년 공시지가 기준으로 과세대상인 전국 토지 땅값이 1,307조원이라고 한다. 400조원과 1,307조 원은 그렇게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 공시지가는 1991년보다 21% 증가한 금액이다.  수도권에서 임차가구의 소득대비 임대료를 조사한 결과 1999년에는 17.5%이었으나,  2002년에는 22.8%로 계속하여 증가했다.  이 수치는 국제평균 16%보다 훨씬 높은 것이며,  서울에서 5.1년 간의 소득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을 때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PIR 5.1 이라고 표현한다. 그러고 보면 5.1년이 되기 전에 빚을 내어 내 집 마련 시기를 앞당기고 싶고,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놓고 보면 금리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높아, 남는 장사가 되었던 것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들어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여기 저기서 지표가 그런 상황을 얘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소득에 비해 지출이 많은 것 아니냐,  수입도 없는 학생들도 아무런 대책 없이 카드를 남용하는 것 아니냐하는 우려와 함께, 계속하여 가계 빚이 증가하고 있다.  IMF 직전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등의 근심 어린 말들이 많이 나온 뒤로, 소비를 줄여야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올해 2002년 추석 이후에는 여러 곳에서 소비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외식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고,  건설 경기가 전년 대비 절반수준으로 줄어들면서 전반적인 영향을 끼쳐 유흥업소에도 눈에 띄게 감소세가 확연하다. 택시 승객이 줄고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도 가지 않는, 인고의 생활이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요인은 개인들이 맞이하는 주변 여건이 급속도로 불리해지고 있음에서 기인된다.

  우선 공공요금 인상으로 가계지출이 불안해지고, 주 5일 근무제로 인하여 일정소득에서 지출요소만 더 늘어났다.  신용카드 사용한도 축소로 직접사용 범위가 제한되었으며,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 축소 등과, 상반기 대비 하반기의 기업실적 악화,  수출 부진 등도 미래 불안심리로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우리 가계는 악순환의 한 축에 놓여있다.  따라서 이 고리를 과감히 끊고 건전한 소비와 저축의 증대, 고용 창출 등으로 경기의 선순환으로 바꿔 타야 한다.

 악순환과 선순환은 비록 글자 한자 차이지만 그의 효과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선순환의 경우는 실수로 잘못되는 결과가 나타나도 자그마한 노력으로 바로잡고 그 리듬을 유지해 갈 수 있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이렇게 좋은 경기의 선순환은 누가 그냥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다.  소득에 맞는 적정소비,  불요 불급한 물품의 구입 억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의 생산 및 구매, 높은 저축률, 국내 자본의 활용, 국제 경쟁력 확보 등의 과정을 거쳐 노력한 만큼의 대가로 나타나는 부산물인 것이다.  나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주변만을 탓한다면, 영원히 바로 잡을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끼이고 만다. 세계는 경쟁체제에서 항상 우리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200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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