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강국 / 한 호철
저축이란 수입 중에서 소비를 하고 남는 돈을 모아두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우리의 선조들은 항상 굶주리며 살아온 것을 기억하면서, 이러한 저축의 기본마저 무시하고, 수입의 일부를 쓰기도 전에 무조건 모아두는 적극적인 저축을 실천해 왔다. 그래서 지금도 저축이란 쓸 것 다 쓰고, 먹을 것 다 먹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전해진다.
과거 어른들이 돈은 아이들 학교 입학하기 전에 벌어야 하며,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 돈을 절대 모을 수 없다고 말들을 했었다. 과거 50~60대의 부모님 세대에는 먹고 입고하는 일 외에는 커다란 목돈 들어갈 일이 없었고, 그나마 가르치는 집의 경우에만 학교 가서 공부하는데 소용되는 비용이 가장 컸었다. 어차피 같이 못사는 사회이니 옷이나 먹는 것, 집 등 어느 것이나 비슷했었고, 아파도 참고 참으며 견뎌냈다. 그런 때이니 학교에 다니면서 드는 비용은 추가로 드는 그야말로 가욋돈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지금도 딱 들어맞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공교육비와 부대비용은 물론이거니와 그와는 별도로 몇 배나되는 사교육비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고학년으로 커갈수록 부모의 수입보다 자녀들의 지출이 많아져서, 학원비나 과외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부업에 나선 주부들이 많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젊어서 돈을 모아야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자녀 1인당 교육비 명목의 총비용이 1억 원이나 소요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그리고 부동산 값 상승으로, 무주택자는 자기 집을 가지는 시기가 40세 전후가 평균이다. 이렇게 자녀를 한창 가르치는 때에 집을 장만하고 나면, 기다리는 것은 조기퇴직이다. 금융환난 이후 우리의 주 소득원인 기업들의 실제적인 근무정년이 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급속도로 성장한 우리의 문명사회에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여기 저기서 부작용을 수반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발전으로 자동차 보유 대수 증가 만큼에 비례한 자동차 사고율, 산업사회에의 진입과 확장에 따른 높은 산업 재해율, 기상변화에 따른 천재지변 등은 우리가 안고있는 사회의 불안요소들이다. 이러한 불안요소에 대비하여서라도 저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의학이 발달하면서 평균수명 연장 및 새로운 질병의 탄생 등 우리가 지출하여야 할 비용은 계속 늘어만 가는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 누려야 될 문화적인 풍요로운 삶의 비용까지를 고려하면 더더욱 많은 비용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렵더라도 참아가며 미리미리 저축을 해두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저축하는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총 저축률은 2002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26.9%로 나타났다. 이 26.9%는 소득의 상당부분을 저축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숫자의 절대적인 면보다는 저축을 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지난 88년도에는 총 저축률이 40.5%나 되었는데 이것이 점차로 줄어들어 95년도에 35.5%, 99년도에 32.9%, 2001년도에는 29.9%까지 낮아졌다. 향후에도 이런 추세로 가게되면 우리는 벌어서 그냥 다 써버리게 되며, 소득이 없는 때가되면 정부에서 주는 구호금이나 바라보면서, 사회보장제도에 기대어 살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처럼 돈을 써야 할 곳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많아지는데, 나이 젊은 층에서는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왜 소비를 줄이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안고있는 사회적 문제인 것 같다. 요즘 광고를 보면 재생산 관련 소비보다는 사용하면 소멸되는 소모성 소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다가 소득이 없는 사람은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는데, 주로 그런 연령층을 겨냥한 광고가 많다는 것이다. 유아를 둔 부모간의 교묘한 심리전으로 경쟁심을 유발한 광고, 학생이면서도 공부보다는 외형에 치중하여 겉치레 비교 우월감을 심어주는 소비광고 등도 한 몫하고 있다.
내가 안사면 문화생활에서 나만 빠지고, 미개인처럼 느껴지는 열등감을 조장하는 광고들도 있다. 전에 열심히 일했으니까 지금은 쉬어도 당당하다는 즉, 지금 못 쉬면 당신은 전에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분위기 조성도 한다. 기업에게 돈 떼이고 난 후 힘없는 가계에만 돈 빌려주는 안전위주의 대출정책도 주요 금융정책중 하나이다.
요즘 젊은 층은 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보다는 사회를 보는 시각이 그러한 방향이라는 것을 인지하여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있으면 쓰고, 나중에 벌 수 있으면 조금 먼저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주의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가계 저축률이 4년째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리의 자랑이며 큰 무기였던 근면과 저축정신이 무너져서 경쟁국인 일본과 대만보다도 낮은 수치가 되었다. 저축예금 금리가 낮아서 오랫동안 저축을 해도 이득이 적으며, 만약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은행에서 낮은 대출금리로 빌릴 수 있다는 생각이 저축감소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재의 20대와 30대 젊은 층의 저축률이 비교적 더 낮은데, 이들이 장년이 되어 돈의 소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가 되면, 그때는 원하지 않지만 예금보다는 대출이 더 많은 빚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러면 결국 국가 전체도 채권국보다는 채무국으로 돌아설 것은 뻔한 이치다.
계속하여 저축률이 낮아지고는 있으나 아직까지도 많은 국민들은 저축을 생활화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가계의 대출도 상대적으로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출에는 손쉽게 사용하는 카드대출, 마이너스통장, 그리고 정식으로 빌리는 대출 등이 있다. 2002년도에 35만 건의 신규 대출사유를 조사한 결과 주택구입으로 56.1%가 사용되었다. 또 고금리의 다른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한 저리 대출이 9.4%를 차지했다. 결국 상당수는 생활의 절박함보다는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와 사회불안정 속에서, 그래도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부동산 소유라는 이중적인 구조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비 항목중 단일 규모가 가장 큰 것은 주택 구입인데, 전부터 정부에서도 이의 해결을 위해 여러 정책들을 폈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의 여러 문화와도 무관하지 않아서 나 홀로 족의 독립세대 증가, 생활권과 주거지의 분리로 계절주택 소유발생, 주택 임대업의 등장으로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 등이 작용된다. 따라서 주택 정책 역시 여러 각도에서 분석 결정하여야 한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인구증가 속도로 보아 우리나라도 곧 인구 감소국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주택소유 희망자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독신주의자가 늘어나는 점등도 간과 할 수 없다. 이렇게 여러 가지 문화와 사회환경 등을 감안하더라도 저축은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내일 당장 어떤 문제에 봉착될지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해마다 저축유공자를 선발 포상하는데 그 시기가 되면, 우리 회사에서도 그런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한 순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친 본인의 굳은 의지가 필요하고, 주위에서도 그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자린고비나 구두쇠라는 등 깎아 내리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일본이나 미국이 우리에게 돈 빌리러 오는 날, 우리는 크게 웃을 것이다. 금융한국이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날, 그 날은 즐거운 날일 것이다. 이런 것들은 금융계, 경제계 관련자들이 다들 잘 알아서 하겠지만, 우리들 개개인이 그 일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역시 건전한 소비문화이고 저축뿐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금융강국을 만드는 일에 나도 참여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순전히 나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2002. 11. 06
년 도 |
1988년 |
1995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2001년 |
2002년/(상) |
국 민 총저축률 |
40.5% |
35.5% |
33.9% |
32.9% |
32.4% |
29.9% |
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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