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국밥 그릇에 숨은 사랑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8:33
 

국밥 한 그릇

 

  부모들의 자식 사랑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끝을 잘 알 수도 없다.  동양의 유교적인 면에서는 부모를 하늘처럼 높고 거룩하게 여겼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효는 당연한 것이고, 인륜의 근본으로 삼기도 했었다.  그러니 그 부모 역시 자식에 대한 사랑이 소홀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치사랑 보다 특히 내리 사랑은 더욱 유별나다. 전부터 들어오던 말 중에 하나가 생각난다.  `나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소화가 안되고 잘 체하므로 먹을 수가 없으니, 너희들이나 많이 먹거라' 하는 말이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매일 채식만 하고, 곡기도 모자라서 풀 씨나 나무 뿌리 등으로 연명해야 했던 조상들은, 오랜만의 돼지고기는 소화하기에 당연히 부자연스러운 음식일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많은 식구가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므로 자식들이라도 많이 먹게 하고, 그것도 눈치 빠른 자식놈이 알아 챌 까봐, 지금 체한 상태라는 둥 알레르기가 있다는 둥 핑계를 댔던 것이다.

 

핑계치고는 이 얼마나 어설픈 핑계인가. 그러나 그 나이의 자식들은 모두들 그 속임수에도 쉽게 넘어 갔었다. 그 후 자식들이 성장하여, 그 당시의 부모 나이가 되면 자연히 알게되는 이상스런 비밀이었다.

 

 요즘 많이 읽혀지는 책 중에 '아버지', '어머니'라는 책들이 많다.  물론 같은 내용의 도서들은 그 외에도 많이 있고,  모두가 고귀한 사랑으로 자식을 위하여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바로 내 곁의 나의 아버지, 어머니도 책에다가 기록만 안 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그만큼 훌륭한 분들이시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1967년 그 당시에는 중학교도 입학 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추운 겨울 날 입학 시험장 교문 밖에서 시험이 끝나기를 그냥 서서 기다리신 나의 아버지께서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물어 볼 것도 없이 멀지 않은 음식점으로 향하셨다. 

농촌에서 도시로 자식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하여 날 잡아왔으니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한 시간에 한 대씩 밖에 다니지 안던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가 시험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다시 올 수도 없었으니, 당신도 무척이나 피곤하셨을 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서글픈 것은 그 곳에서 주문한 음식이 달랑 국밥 한 그릇이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둘인데 음식은 1인분이었으며,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이럴 줄 알고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와서 배고프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의 눈치 없는 아들은 그 말이 정말인 줄 알았고, 혼자서만 맛있게 먹어 치웠다. 아무리 아침을 든든히 먹었어도 점심때도 지난 시간에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당시 상황에서 여러 가지 여건을 감안하여 선택하신 결론이 국밥 한 그릇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 나이가 된 지금도 어떤 때는 국밥 한 그릇을 시키는 심정으로 살아갈 때가 있다. 그러지 말고 무리를 해서라도 똑같이 먹을 수 있도록 네 그릇을 주문하자고 다짐하면서도 정작 음식을 주문할 때면 3인분을 주문할 때가 있다.  물론 요즘 세상에 국밥 4인분 음식값이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 식구처럼 입이 짧은 사람들은 구태여 4인분을 시킬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다.

 

4인분과 3인분의 사이에서 선뜻 결정이 서지 않는 것이 부모의 심정일까? 자신보다는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인가? 그럼 나도 진정한 부모의 부류 속에 들어 갈 수는 있는 것인가? 요즘 아이들은 국밥을 싫어하므로, 가끔씩 혼자서 먹어보는 국밥은 예전처럼 맛이 없다. 

굶고 기다리시던 아버지의 몫까지 두 그릇은 먹어야만 그때의 그 국밥 맛이 살아 날 것 같다. 그러나 어거지로 두 그릇을 먹어 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때의 그 국밥맛을 어떻게 하면 되 찾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요즘 같은 입시철이 되면 다시 생각나는 그때의 국밥과 함께 부모님의 사랑이 떠 오른다. 그러면서 나도 그와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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