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아버지 마음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8:34
 

아버지 마음 / 한 호철


  내가 아는 아버지는 한 여름날 더위를 피해 낮잠 잘 수 있던 마을의 모정이었고, 그 모정을 통째로 그늘로 만들어 덮어주던 커다란 정자나무 같은 존재였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언제든지 가서 피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항상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음으로부터 육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러나 그 후원자가 이미 후원자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에는, 벌써 할아버지로 이름표를 바꿔단 뒤이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그렇게 커다란 존재로 다가왔다가, 생활의 중심에서 뒤로 밀려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는 계속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요즈음 인터넷에서 아버지는 누구인가 하는 글이 유행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아버지는 가족에게 무관심하고 별로 소용 가치가 없는 것 같지만, 자식이 칭찬을 받고 자랑스러우면 바로 자신이 우쭐해지고 자랑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관심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큰 정자나무는 그 그늘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을 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무 그늘이 바뀌니 어떻게 옮겨가고, 어느 쪽 그늘이 좋다고 말도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팔을 더 뻗어 풍성한 그늘을 만들고, 더위를 막아 주려 애쓰는 그런 마음의 소유자가 아버지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행하며 세파의 비바람을 막아, 아이들에게는 평온한 일상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는 제대로 의사표현 한 번 못하고 헛기침만 하면서, 정녕 참을 수 없게되면 의미 없는 너털웃음 한 방으로 모든 걸 대변하는 마음이다. 

 세상에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아버지의 명성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누구의 아들로 각인되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 독립된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집안의 절대 군주요, 정신적 지주였던 가정의 교주, 아버지가 무너진 것은 IMF 이후였다.  구조조정이라는 처음 접하는 단어 앞에 부양능력을 상실하고, 인간능력을 잃고, 아버지의 위상마저 빼앗겼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히 고개 숙인 남자가 되어 어떻게 해야 될지 방황하고 있을 때, 아버지 바로 알기 운동이 일어났다.  참으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김 정현의 아버지가 그랬고, 조 창인의 가시고기가 그랬다. 요즈음의 아버지들은 머리 셋 달린 괴물과 싸우러 다닌다. 항상 피곤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끝없는 일에 도전하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상사로부터 받는 것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TV 드라마에서 아버지와 아들관계를 그린 연속극이 몇 가지 있었다.  아버지로 인하여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 것인데, 아버지가 한 행동으로 인하여 내가 어떠한 손해를 보았다거나 어떠한 이익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환경이나 일의 결과를 아버지가 저질러 놓은 행위들의 부산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고, 가치는 추락하게 된다. 그런 환경에서는 가정이 바로 설 수 없고,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막노동에 힘들게 일하면서도, 쉬는 시간에 담배한대 붙여 물고는 자식자랑이 줄을 잇는다.  `이번에 우리 아들이 반장이 되었다네'.`잘했군'. `우리도 이번에 줄반장이 되었네'. `어디 반장과 줄반장을 비교하는가?' 하면서 웃기도 한다.  이렇게 자식들의 작은 기쁨에도 힘이 솟고, 또 다시 일할 의욕을 갖는 것이 아버지이다. 내가 할 말을 다하고 나면, 몸이 약하여 몸살이라고 쉬다가, 사흘만에 나온 옆 동료한테도 말할 기회를 주는 예의 또한 잊지 않는다.  `자네는 몸이 그리 약해서 밤에 제대로 일이라도 하겠는가?' `그렇네, 나는 밤에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래서 자네들처럼 아들도 낳지 못했지만, 글쎄 내 딸년이 철이 들었는지 내 대신 일을 잘해 돈을 제법 벌어 오는 구먼'. `아니, 다니라는 학교는 안 다니고 약골인 아비 잘못 만나 벌써 돈 벌러 다니는가?'.

`아니야, 그년이 학교에 다니면서도 내 월급보다도 더 많은 장학금을 척하고 받아오지 않았는가. 아! 오늘 날씨 한 번 좋다.’   2002.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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