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산 / 한 호철
우리나라에는 최고의 영산 백두산과 그리고 한라산, 지리산 등 유명한 산이 많다. 이들은 그가 갖고있는 고유명사와, 그 외에도 재질에 따른 빙산, 석산, 소금산, 광산 등이 있고, 어떤 유래에 따른 귀신산이나 호미산, 신발산, 여우산 등 붙이기 나름의 다양한 산이 있다. 그 중에서도 무형의 산, 의미의 산이 있으니 최근에 거론되기 시작한 아버지산이다.
이것은 항상 그림자처럼 자식을 따라다니며 뒷바라지하고, 아버지로 인하여 자식이 당하는 흥망의 영향력을 말한다. 나아서 젖을 먹고, 밥도 떠 먹여주던 어린 시절에는 절대적으로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었다. 그 후 자라서 어느 특성을 보이고, 개인의 소질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에는 아버지의 역할이 선택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같은 종목의 운동분야라든지, 같은 계열의 특성이라든지 하는 식의 부분적인 도움이 가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아버지는 자신의 가능함을 총 동원하여 자식을 키운다. 본인이 못다 이룬 꿈이라면 자식에게는 그 꿈을 실현시키고 싶어지며, 반대로 본인이 그것을 전혀 이루지 못한 꿈이라면, 자식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자식을 뒷바라지하게 될 것이다.
사실 국내에서도 알만한 운동선수들이 아버지에 의하여 훈육되어진 경우가 많이 있다. 혹독하게 훈련하며, 조금 부족해도 그냥 오로지 인내와 연습, 노력으로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한 학습방법일 경우가 많다. 나를 잘 알고, 집안의 내력을 잘 알며, 자식을 잘 알고, 집안의 조건, 형편을 잘 알기에 서로 공감하여 불평 없이 합심하여 성취해간다.
이것이 아버지의 산인 것이다.
이때의 아버지는 항상 나의 우상이고 거대한 산이며,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고, 못할 것, 거칠 것이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위대하고 아버지가 갖는 의미는 크다.
이런 아버지는 항상 채찍질을 가하고, 칭찬도 하며 정에 의한 교육을 우선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식이 힘들게 정상에 서면 이제부터 닥치는 수성의 길 또한 어렵다. 이때에도 아버지는 온갖 노력으로 수성하며, 욕심 많게도 다른 분야의 정상을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은 정상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질 못한다. 여기서부터의 수성은 자신 스스로 하여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무지이거나 초기의 무명 신인을, 정상의 대열에 서게 하는데 적합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얻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나름대로의 교과서를 만들어 내게 되었고, 그 길만이 수성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또한 두 번째 아버지산인 것이다. 수성은 이 아버지산을 넘어야 이룰 수 있다.
아버지산은 자식이 항상 넘기 어려울 만큼의 시련을 가져온다. 이른바 출발 때부터 목표와 방향이 정해지고 그것을 쟁취하는 방법을 정하게 되는데, 그 방법을 정상 도전 때나 수성 때나 같이 사용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산의 걸림돌이다.
잠자는 사자를 깨워 야성을 찾아주고 백수의 권좌를 주었으면, 이제 포용하여 연약한 짐승들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앞에서 오르는 자의 조련사와 정상에 선 뒤의 조련사는 사육방법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무명의 자식이 정상에선 것은 순전히 자신의 가르침에 의해서였다고 착각하게 되고, 수성의 방법도 아버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때 자식은 아버지를 배반하고 둥지를 떠나야 한다. 여기서의 떠남은 육체적인 가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방법으로, 아버지 산의 그늘을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아버지의 교육체계 방식을 탈피하는 새로운 방법 즉, 더 힘들고 혹독한 방법이 될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의 아이디어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아버지가 집요하게 붙잡기도 하지만, 자식 역시 다른 방법에는 익숙해져있지 않아 미지의 길에 불안한 것이다. 그냥 아버지 그늘에 있으면, 수성의 자신감에 대한 미래의 불확실성은 같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그래서 아버지산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적시에 적합한 교육방법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 방법을 아직 안 찾아서 그냥 틀린 교육방법을 사용한다면, 결과적으로는 그것 또한 적합한 방법을 못 찾은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다만 아버지 산밑에 있으면서도 본인이 스스로 터득하여 행동할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일 것이다.
아버지산은 그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는 무형의 산이다. 그래서 쉽게 넘지도 못하고, 아예 넘으려고 생각조차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타인들은 우리 아버지산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경쟁의 범주 안에 넣어주지도 않는다.
반면에 아버지산은 타인이 산에 오르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의 산 꾼 들에게 발각되어 도전을 받으면 그만 그 형상을 감춰버리는 신비의
산이다. 이 신비의 산은 목적을 달성하면 스스로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신비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그냥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평범한 뒷산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산을 넘어야 한다. 가출하여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고,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그런 것들이 산을 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록 같은 이불을 쓰고 한 솥 밥을 먹
어도, 사고의 유연성으로 시기에 맞는 적절한 대처방법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항상 같은 방법만을 고집한다면 성장할 수가 없다. 나의 방법
에 맞춰 시계가 멈추어 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