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길
고등학교 선생으로 근무하고 있는 동창생과 여러 이야기들을 나눈 적이 있다. 그러던 중 어떤 때는 1월 1일과 설날, 추석날, 이렇게 1년 중 3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학교에 나가서 업무처리도 하고 수업준비도 했다고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에는 직장인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어떤 면에서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하게 표현하면 미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아무리 학교장에게 잘 보이고, 교육장에게 잘 보이려고 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1년 내내 그렇게 행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학생들이 먼저 눈치채고 반항하는 행동들을 했을 터인데, 전혀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학생들은 그 교사를 만나면 어딘지 모르게 작아지는 듯한 모습이 되고, 학생들의 장래를 위하여 걱정해주는 교사중 한 명으로 대해 주었다는 평이 많다. 좀 과하게 표현하면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기에 합당한 행동들만을 골라서 할 정도로 노력했다고 했다.
그런 생활중의 하나는 이면지 활용이다. 교사생활 20년에 이제는 제법 성숙해지면서, 일면 형식적인 면이나 남의 체면을 의식하는 행동을 할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쓰다버린 이면지를 모아 놓고 젊은 교사들을 훈시하면, 서류를 깔끔하고 멋있게 작성하려고 신품 종이만을 썼다고 하니 도대체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단다. 그깟 종이는 자기나 아낄 일이지 왜 남까지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쳐야 옳을지 많은 고민도 했다고 한다. 그 해결책으로 자기가 담임으로 있는 반의 조회 때, 학생들에게 이면지 한 장씩을 나누어주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한자및 영어, 수학공식 등 공부에 필요한 것을 가득 적고, 반드시 개인의 이름을 적어 종례시간에 제출토록 했던 것이다. 일부 젊은 교사들에게 설명해도 되지 않을 일 보다는, 저항이 덜한 학생들을 상대로 종이의 사용처를 찾은 것은 쉬운 방법만을 택한 좋지 못한 결과이기는 하다. 그래도 그 활용 가치면에서는 오히려 더욱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또한 자라나는 미래의 소비자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는 것 같아 자신도 흡족했다고 했다. 학생들이야 담임교사가 시키니 안 할 수도 없었겠지만, 학생들한테는 물론 전 국민의 표본이 되어야하는 교사들의 행동은 어렵기만 하다.
종이 한 장이야 절대가치도 적고, 상대가치로도 적어 마땅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교육방법이나 교육내용 그 자체는 비교대상이 아닌 것이다. 교육에서도 비교를 중시 여기면 학교간 성적서열, 학생간 성적서열로 단순경쟁을 위주로 교육하게 되고 만다. 그것이 현 세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원칙을 가르치고, 옳고 그름, 좋고 나쁘고를 분별하는 교육을 시켜야 옳다고 본다. 남의 나라의 자그마한 교훈을, 우리자신의 큰 교훈보다 항상 월등한 것처럼 비추고 교훈으로 삼는 것은, 사대주의 발상으로써 옳지 않다.
우리 주변에 남을 위한 희생이나 모범적인 일들을 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찾아 본 받아야 한다. 수업시간에 자기 생일날을 가르쳐 주면서, 공부에 지장을 주니까 선생님의 생일이라고 해서 특별히 신경 쓰거나 그러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돈을 거두어 케익도 사고, 자그마한 선물도 사서 그 날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었단다. 그랬더니, 생일을 챙기려면 좀 그럴듯하게 챙기지 이게 뭐냐는 식의 꾸지람성 발언을 했었다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나는 그런 사람을 선생님이 아닌 그냥 교사라고 부른다. 선생님의 생일이야 챙겨주면 좋고, 안 챙겨주면 더욱 좋고,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한다. 스승의 날이 있고, 교육자의 날이 또 있으며 근로자의 날, 노조창립기념일, 개교기념일 등이 있는데 거기다가 선생님 생일까지 챙긴다면, 불망일이 너무 많다. 아무리 인성교육이 우선이지만, 불망일 챙기는 것이 인성교육은 아니다. 학생들이 수업료 내고, 학부모가 세금 내서 봉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교사들이 학생들의 생일을 챙겨주어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국민들은 교사를 선생님이라 칭하며 존경하는 그룹에 분류해 넣고 있다. 우리 선생님들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이 있겠지만,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사명감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그 가르침을 본 받아 훌륭한 동량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앞의 그 교사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인지 모르지만, 내년에 비교적 빨리 교감발령을 받는다고 한다. 교육자의 직위 편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축하해 줄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2. 0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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