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그러지 마세요 / 한 호철
나는 얼마 전에 말의 실수를 저질렀다.
사실은 나의 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설명이 부족한 경우였었다.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 말이 있어 주의를 요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 와 어가 아닌 똑같은 단어를 가지고도 실수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느 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분이 일부러 찾아 와서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 부탁은 그리 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사용하지 않으면 잠시 빌려 쓰자는 것이었는데, 마침 그때는 예약이 되어 있어서 그 분에게 빌려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분의 근무처와 나의 근무처는 거리로 5㎞정도이고, 시간상으로도 승용차로 15분이면 족하다. 그 분이 찾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어려운 부탁이라고 조심스레 운을 떼셨다. 그런데 들어보니 어려운 것이 아니었고, 평소에 서로의 처지를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생각 할 정도였기에, 조건만 맞았으면 빌려 주는데도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이런 일이라면 뭐하러 여기까지 오느냐고, 다음부터는 오지말고 전화로 이야기하시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분도 잘 알았으니 그냥 돌아가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뒤 1시간도 되지 않아 전화가 왔는데, 아까는 많이 서운했는데 너무 그러지 말라는 내용을 전해왔다. 때 마침, 내가 자리를 비운사이인지라 변명도 못하고, 그 분에게 오해를 풀 기회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만약 내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면 변명이나 설명이 통하지 않고, 오히려 오해가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난 후로 나는 업무가 많이 바빠져서 한 번도 그분의 사무실을 찾아가지 못했다. 내가 전화 내용을 전해 받고, 화가 나서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실까봐 걱정이 된다.
말하는 도중에 상대방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는 누구든지, 그리고 언제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상대방 보다 자기 주장을 많이 하는 편에서 그럴 확률이 더욱 높다. 내가 한 말 중에서, 위의 내용말고도 그 분이 오해 할 수 있는 다른 부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본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정말 오해였다고 꼭 전해 드리고 싶다. 혹시 그 분이 이 내용을 보게되면 오해가 풀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말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 상대방에게 말을 시켜놓고, 그것을 많이 들으며, 나의 이야기는 적게 하는 대화의 정석을 더욱 실천할 것을 되새겨본다. 모든 것을 헤아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상대방이 원하는 내용이 무언인지를 생각하여 대답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02. 0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