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신문 읽기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9:09
 

신문 읽기 / 한 호철


 우리나라의 미성년자는 국민의 기본 권리 중 투표권이 없다.

 이는 선거법에서 20세 이상의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었기 때문인데,  그의 근거는 민법에서 성년을 20세로 정한데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대학생이 되어야 선거권이 주어지는데,  지난 2002년의 대선에서는 투표권을 가진 학생들이 선거의 참여에 대하여 공론화 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학교 내에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하자는 것 등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보다 성인 훨씬 이전인 만 17세가 되는 달의 다음 달에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이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연령에 있으며, 어느 일을 행할 수 있고 없는지를 대체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 주민등록증을 가지게 되는 사람은, 드디어 대한민국의 분명한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자신이 다 커버린 착각 속에, 자칫 행해서는 안 되는 금기 사항들을 잘못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주민등록증을 신청하는 사람에게 어떠 어떠한 일들을 언제부터 행할 수 있는지,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르쳐주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니면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집에 가서 어느 법전을 찾아보고 공부 좀 하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이나 도서, 잡지 중의 미풍양속을 저하시키거나, 불건전성 부분에 대하여는 만 18세 이상부터 허용하는 것을 모르고 범하기 쉽다.     이것은 공연법이나 음란 비디오물 및 게임에 관한 법률에서, 미성년자를 만 18세 미만으로 정해놓은 것을 알려주는 것에 소홀한 때문이다. 이것을 알려주는 것과 알려주지 않는 것은 과정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으나, 사실 결과에서는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법에서 금했다는 것을 알고 강제적으로라도 금하면,  결국은 범법자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매개체에서 쉽게 접하는 음주나 흡연에 관해서도 법으로 정해 놓은 기준이 있는데, 이것은 만 19세부터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식품 위생법이며, 청소년 보호법이다.

 우리 대학생들이 같은 반 친구들과 같이 다니다가 음주, 흡연 등으로 적발되었을 때, 어느 누구는 법으로도 허용하지만,  어느 누구는 법으로도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반대로 이를 악용하여 같은 술을 먹어 놓고 나서, 만 18세가 안되었는데 왜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고, 담배를 팔았느냐고, 업주를 고발하겠다고 협박하여 무전 취식하는 사례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정도다.

 이런 경우는 그래도 약간은 나은 정도다.  이렇게 정해 놓기라도 한 경우는 하든 안 하든 따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조심은 할 수 있고,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길은 있으며, 그 길을 어떻게 부작용 없이 진행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과제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아예 규제를 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텔레비전에서 폭력성이나 선정성이 농후하여 주의 판정을 받은 경우는, 시청에 관한 주의 표시를 하기도 하지만, 아예 그것조차 못하는 것도 있다. 각 가정에 보급되는 신문이 그것이다.  전에는 흥미 위주의 주간지나,  연예 오락위주의 스포츠 신문이 그 주요 제재 대상이 되긴 했었지만, 요즈음은 아예 보통의 일간 신문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몇 년 전부터 대학 입학시험에 논술이 추가되면서, 고3 수험생에게 신문의 사설을 읽으라고 공공연하게 권장해 왔다. 그리고 이 신문은 집에서 부모를 포함하여 학생들과 어린 아이까지 모두 읽게 되는데,  부모된 입장에서 뉴스도 읽고, 사회문제도 읽고, 물론 논설도 읽으라고 권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신문의 한 곳은 항상 성인들만 위한 곳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연재 소설이다.  각 신문마다 연재 소설을 싣고 있는데,  역사성이나 고전 등을 주제로 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흥미 위주의 오락성이 많이 실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때의 신문 소설은 어느 잡지의 기사 내용보다도 더 흥미 위주이고, 위의 법에서 규제하는 나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무방비 상태로 접하게 되는 그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내용들이다.

  폭력성은 보통이고 잔인성, 학대, 음란성, 차마 부모가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가르치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고 이런 이유로 자녀들에게 신문을 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중고등학생 자녀에게 어린이 신문을 보라고 할 수도 없으니 참 답답할 뿐이다.

  우리 사회가 어느 면에서나 개방적이고 자녀들 또한 성숙하여,  모든 것을 다 걸러서 흡수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리 걸러서 흡수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필터를 오래 사용하면 닳아서 못 쓰게 되든지,  고장이 나서 고쳐야 되는 현상도 초래하게 된다.

  내 자녀들이 벌써 고쳐 써야 되는 필터라면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본인이 직접 닥쳐보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쉽지않다. 이러한 신문은, 이제 막 한글을 배운 다섯 살 박이 유치원생도 부모와 같이 읽는 최고의 교양서이고, 진리의 전달체인 것이다.  세상에 어느 매체가 이만큼 다양한 독자를 가지고 다방면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이제 신문도 변해야 한다.  2003.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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