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나의 주변 이야기

학비에 보태고 취업도 하려고

꿈꾸는 세상살이 2006. 10. 2. 22:38

그러던 아들녀석이 입학하여 기숙사에 들어갔고,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집에 다녀가는 생활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주일마다 연거푸 집에 오더니  군장학생에 신청을 하겠다고 한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별다른 뜻은 없었다.

요즘처럼 취업하기 힘든 세월에 취업이 보장되고, 학비까지 지원되니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나는 군장학생에 찬성을 하였다.

 

높은 계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육군 장교출신으로 제대하였던 것을 생각하니, 찬성에 다른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가 간호학과이기때문에 의정장교를 하면 나중에 제대를 한 후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니 잘하는 결정같아 보였다.

 

그리고  신청서를 작성하였다. 신청서를 받은 날로부터 마감일까지는 그리 많지않은 기간이라서 심사숙고하면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촉박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었다. 더구나 초중고생들처럼 모두가 집에서 다니는 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 학생들이 객지로서 타향살이하는 것을 감안하면 바람직한 행정의 방향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시험은 별도로 치르지 않았지만 수능성적과 인성 그리고 체력을 측정하였다. 당시 ㅇㅇㅇㅇ에서 전체 15명? 정도가 합격하였는데 이 학교에서만 4명이 합격하여 국방부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있었지않나 하고 현지 방문을 할 정도였었다. 물론 수능성적이 중요한 변수이긴 하였지만 상위권 학생부터 차례대로 모든 학생이 지원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 성적순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공부는 잘하지도 못하고 그런대로 하면서, 돈이 없어 학비가 부담이 되고, 졸업후 취업도 자신이 없는데다가 가업으로 물려받을 기업이 없는 필부의 자식들만 선택하는 것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해서 군장학생 생활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툭하면 불러서 체력측정하고, 툭하면 불러서 신체검사하고, 툭하면 불러서 정신교육을 시켰다. 솔직히 처음에는 장학금을 주니 이 정도는 부르면 부르는대로 와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인상을 받기도 하였었다.

장학금 규모는 학교에 납부하는 공납금의 전액을 받는 것이라서 별도의 공식 학자금은 필요하지 않았으나, 개인 용돈이나 기타 비용은 어쩔 수 없이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지출하였다.

 

그런데 이 교육이 학교의 형편을 고려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차질을 빚을 때가 많았다. 학교 정규 시험 기간 중에 불러내서 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고, 갑자기 2일 전에 연락하여 소집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과목은 학고 시험 중에 군장학생 소집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나중에 재시험을 치르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그럭저럭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군장학생 선배들로부터 간호학과를 나와도 의정장교로 선택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들었다며 걱정을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간호학과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배우고 어떤 실습을 하는데 어째서 의정장교가 되지 못한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처음 신청서를 작성할때부터 특수병과는 특수 학과 학생들이 신청하고, 거기서 그들끼리만 경쟁시킨 후 결정하는 것이라고 굳게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