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과 인생
시골집에 가본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조금 일찍 나서기로 하였다. 그래도 거리가 멀지 않으니 한결 마음은 가볍다. 펼쳐진 많은 풍경들이 속속 스쳐간다. 넓은 들판도 지나고, 나지막한 구릉도 지나고, 마을도 지나갔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이 사람 사는 것이 아니던가 생각된다. 길가의 가로수도 이제 한 장 남은 달력만큼이나 앙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기 떨어진 나뭇잎은 부모의 허락도 없이 이리저리 마음대로다. 그 세상은 먼저 태어난 형이나 나중 태어 난 동생의 서열도 없다. 지금까지 나아서 길러준 은공도 없다. 자기 마음대로 제멋대로다. 한바탕 휘모는 바람에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것 같았는데, 힘에 겨운지 이내 휩싸여 간다. 움직이기 시작은 녀석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서로 앞 다퉈 나가려고 허둥댄다. 대처가 좋다고 울타리를 벗어난 녀석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지나는 사람들을 위협한다. 그러나 그도 한때, 쏜살같이 달려온 차에 보기 좋게 치이고 만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모두 흩어져 도망 가버린다. 아직도 세상분별을 못하는 녀석들은 복수라도 하려는 듯 기세가 등등하다. 그런 갑작스런 기세에 눌린 대형 덤프트럭이 놀라 있는 힘을 다하여 줄행랑을 친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던 녀석들도 이제는 지쳐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지켜줄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나 편하자고 아무데나 그냥 주저앉은 그들을 보고 비키라고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다. 제 몸 하나 일으켜 세울 힘도 없어진지 오래다. 뒤 따라오던 작은 차량마저 덥썩 덮쳐버린다. 작은 변화에도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그냥 몸을 맡겨 버린다. 이제 그 몸은 버린 몸이다. 재빨리 피하지 못한 녀석들은 계속하여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깡마른 체격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강인한 체력이다. 어쩌면 흘릴 피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남아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를 바라보던 나무는 자식을 잃은 아픈 마음에 온 몸을 부르르 떤다.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끝내 붙잡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나보다. 팔 다리 머리 모두를 세차게 흔들며 애타게 불러본다. 그러나 그 소리마저 차량 소음에 묻혀버린다. 손은 거칠어지고 마디가 굵어지더니 이내 풀기마저 밭아버린 앙상한 모습은 처량하기까지하다.
자기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 낙엽은 이제 더 이상 한 가족이 아니다. 그들의 관계는 그냥 나무와 낙엽일 뿐이다. 하나는 길가에 서있는 가로수이고, 하나는 그냥 제 가고 싶은 대로 굴러가는 낙엽일 뿐이다.
그들의 관계는 숱한 세월로 인하여 친족 고리가 끊어져버렸다. 그들을 묶어줄 아무런 근거가 없어졌다. 아니 근거가 있다 해도 그를 지켜줄 힘이 없다.
나는 친족관계의 고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악셀을 힘차게 밟아본다. 그리고 근거를 찾기 위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할 수 있을 때 지켜줄 힘을 연장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뛰어간다. 지켜줄 시간을 연장하기 위하여 시계를 거꾸로 세워본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케익은 달콤한 것은 맞나요? (0) | 2006.12.04 |
---|---|
타는 낙엽속에 인생도 탄다 (0) | 2006.11.29 |
남자가 김장을 하니 (0) | 2006.11.19 |
도서관이 책 읽는 곳이라고? (0) | 2006.10.22 |
붉은 달 (0) | 2006.10.18 |